구약 편을 읽어 보신 분이라면 "네가 뭔데~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 사람이 선악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말하냐고~" 화가 나셨거나 읽기 불편해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선한 것이 무엇인가요? 악한 것이 무엇인가요?물으면 바로 떠오르는 것들이 모두에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들일 것이라 예상합니다.
지하철에서 천 원에 껌을 팔고 있던 할머니가 있습니다. 어떤 한 착한 여성분이 돕고 싶은 마음에 만원을 드리며 껌은 괜찮습니다.라고 했더니 할머니가 화를 내시며 "내가 하는 일을 무시하느냐며 껌을 사든지? 말든지? 해라~"고 꾸짖으며 기분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선은 어디에 있고 악은 어디에 있나요?
두 명의 프로 복서가 링에서 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명은 재능이 뛰어난 천재복서였고, 또 한 명은 노력과 반칙을 하며 챔피언 자리에 오른 복서가 있었습니다. 챔피언은 역시 반칙을 하며 상대를 교란했고 오랜만에 복귀한 천재 복서는 홈 그라운드에 분위기와 반칙에 멘털이 무너졌지만 집중력을 발휘하여 KO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KO승을 한 천재복서는 과거에 스파링 상대를 기절시켰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상대선수가 걱정되어 대기실에 찾아가 상대의 몸 상태를 걱정해 주었습니다. 상대선수는 매우 기분이 나빠했으며 "나는 프로선수이고 최선을 다해 싸운 상대에게 걱정이나 위로는 한 것이 아니다."라고 꾸짖습니다.
선은 어디에 있고 악은 어디에 있나요?
마가복음 10장
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예수님께 어떤 한 사람이 "선한 선생님이여~"라고 말하니 바로 꾸짖는 장면이 있습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선한 선생님~"하고 극존칭으로 불렀는데 화를 내는 상황이 이해가 되시나요?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텍스트만 보면 하나님 한 분만 선하시고 모두 악하다는 거예요?라고 볼 수 있지만 하나님만이 선하신 분이라는 뜻이 나머지가 악하다는 말이 없는 데 사람은 이렇게 해석을 하는 생성형 지능을 가졌습니다. 그 지능을 잠시 빼보면 "하나님만 선하신 분이고 나머지는 글쎄~ 모르겠네~" 이렇게 해석해야 빼는 것도 넣는 것도 아닌 것이지요.
그래서 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선한지 악한지 모르는 것이네~라고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이고 확실하게 설명까지 해주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무 명확하고 확실해서 더 설명을 해야 할 필요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분명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선을 베풀고 있으면서 선이라 말하겠냐고 하시는 것이죠. 악한자들은 못하겠느냐 오히려 더 잘한다는 뜻도 성경에 있습니다.
그럼 반대로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에게 선을 베풀면 선하다고 했나요? 아니죠. 칭찬받는다고만 하지 선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칭찬받고 싶은 욕구가 칭찬받는 것이 쉽나요? 어렵나요?
선한 지도 악한지도 모르는 사람끼리 모여 서로 칭찬을 주고받으니 칭찬받는 줄 착각하는 것이죠. 악한자들도 그러하기때문에 칭찬이 될 수 없습니다. "칭찬받는 게 뭐 대단한 건가요?"
칭찬을 듣고 나면 기분이 좋지만 오래가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라지지 않을 보상을 바라게 됩니다. 그런데 칭찬에 의미에 대하여 성경적 의미를 설명드리기 전에 선하신 하나님의 바람을 말씀으로 해주십니다.
이사야 40: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의심이 들면 하늘을 보라고 하셨고, 하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5장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이상하죠? 분명히 구약시대에 이집트 땅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지역에만 우박을 내리시지 않았고, 여리고가 무너질 때 기생 라합의 집만 구원하시며 구별하신 하나님이 갑자기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하겠다고 하신 것이죠. 이것이 신약입니다.
(구약)지나온 약속을 넘어 새로운 약속(신약)을 주셨는데, 신약은 이전 약속을 다 지우고 새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 추가하거나 변경을 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인데 왜 약속을 바꾸시나요? 약속 시간이 되기 전에 얼마든지 약속을 추가하고 변경할 수 있습니다. 이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의라고 말하며 선한 뜻이기도 합니다.
태양을 비추시고 비를 내리심이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주신 은혜이며 자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구별하지 않고 모두에게 주셨으니 너희도 구별하지 말고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칭찬받을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는 데 "대체 칭찬이 무엇이길래~" 대단한 것도 아니잖아~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하신 일들을 보시면 칭찬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누가복음 24장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성경을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판단하면 몸이 썩어 죽으면 몸이 없는 영혼이 떠도는 이상한 세계를 혼자 상상하며 단정 지어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각은 자유이지만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대단하며 약속하고 보증하실 수 있습니까? 자신 있으십니까? 잠언서에 보증을 서지 말라고 배운 것이 이 이유 때문입니다.
에스겔 37:5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성경은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영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있다. 그리고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이 말뜻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무슨 말인가요?
부활의 몸이 되어도 이 땅에서 고생 한 손과 발이 그것이 나임을 뜻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과 발에 남은 것은 칭찬의 기쁨입니다. 부활의 몸이 그대로 내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고 눈물을 웃음으로 바꾸시고 칭찬하시는 기쁨이 영원히 내 몸에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리뭉실한 것을 믿으라고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라고 하시지 않으며 직접 만져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렇다면 그리고 성경이 사실이라면 칭찬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린도전서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마무리]
지금은 신약을 주신 세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지 않고 주시는 은혜와 자비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날 한 번에 심판과 평가를 하시는 것으로 약속을 변경하셨습니다. 그것은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의인 것이죠.
아직도 구약만을 믿고 있는 유대인 이스라엘 민족들이 있습니다. 구약은 명확하게 하나님이 포기하시고 원수 맺고 끝나버린 약속입니다. 그 말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어버린 것이죠. 이렇게 끝난다며 뭔가 찝찝하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화해를 시도해야 관계가 연결이 되죠. 저도 살다 보니 원수 맺고 관계가 끊어진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화해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죠.
그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직접 화해를 시도할 수밖에 없어 신약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화해를 해야 하니 구체적이고 분명해야 하며 변화가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신약이며 화해를 위한 약속인 것이죠.
그 방법이 직접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지난날의 약속을 오해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오로지 한 가지였습니다. 기적을 베풀러 오신 것도 아니고, 은혜를 주려고 오신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오해와 화해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믿습니다.
복음서를 자세하게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하시는 일이 구약 성경 마스터들과 매일 싸우시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오해가 풀려야 화해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구약 성경의 뜻을 설명해 주기 위해 비유로 말하기도 하시고, 기적을 보여주시기도 하셨고, 직접 하늘을 열어 보여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오직 구약의 본질적 의미를 설명해 주기 위해 노력하셨고, 앞으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한 약속으로 변경하시며 오해와 화해의 약속을 완성시키신 것입니다.
결국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은 한가지는 화해의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에 속한 백성은 구원해 주시겠다는 구약에서 보여 준 구원과 같은 것이지요.
하나님이 선택하여 하나님께 속한 선과 악을 모르는 모든 백성을 선하신 하나님을 보고 선하다고 보겠다는 약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