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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범이 된 친구

-엽편소설 2-

by 김병주

“남극으로 가야겠다.”



프랑스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를 보다가 후반부에서 문득 친구가 내뱉은 말이다.



으레 하는 농담인 줄 알고 “너는 요리사도 아닌데, 가면 뭐 물범 밥이라도 되어줄 거냐”고 말했지만, 친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피자에 맥주를 두어 잔 걸치며 영화 주인공 이름이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오르탕스’ 부인과 의도적으로 같게 지은 것일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느 때처럼 직장생활과 여자친구 이야기로 빠졌고, 또 여느 때처럼 서로 내가 계산하겠다고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고 각자 집으로 들어갔다.



정확히 2주 뒤, 그 친구가 한밤중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종적을 감췄다고 다른 친구를 통해 전해 들었다.



소식을 전해준 친구는 지금 아무도 연락이 닿지를 않는 상태라며 당황을 감추지 못했고, 나에게 “걔가 평소에 힘들어하는 건 없었냐, 혹시 짐작 가는 바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불현듯 “남극”이라고 말을 하려다가, 그 단어가 이 분위기에는 영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친구와는 연락이 닿질 않고, 계절은 바뀌고 있었다.



그러던 어제 여느 때처럼 야근을 하고 돌아와 불편한 잠자리에서 뒤척이다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여름을 맞은 남극에서, 물범 한 마리가 아무 근심 걱정도 없이 해변에서 햇빛을 쬐며 늘어져 있는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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