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3-
늦은 7월 주말, 어머니는 일 때문에 기숙사로 못 오시는지라 혼자서 땀에 전 옷가지와 몇 권 책을 욱여넣은 가방에 질질 끌려 정류장으로 갔다.
어디로 가는지 모를 인파로 북적이는 정류장은 세탁기에서 갓 꺼낸 허물들처럼 눅눅했고, 그만큼 쇠고리 심줄 같은 가방끈이 우악스럽게 어깨를 파고들었다.
수원역까지 가는 길은 매번 다시 같지 않을 좌석과 익명의 기사와 승객들, 공기와 풍경 하나하나 낯설었고, 창밖으로 대낮에 눈을 번히 뜬 어둠이 건물들 사이로 훅 스쳐 지나갔다.
어찌저찌 역전 노천터미널까지 사람 물결을 헤쳐가며 도착한 안산행 플랫폼은 평소와 달리 이상할 정도로 줄이 길었지만, 그 줄 맨 끝으로 섞이는 방법밖엔 없었다.
10분쯤 지나 수원역 부근이 불볕더위에 발악하고 있을 때, 가까운 곳에 회쪽빛 승복과 누런 삼베 바랑 하나를 걸머지고 둥근 안경을 걸친 노스님이 한 분 눈에 들어왔다.
나름 경건한 향을 풍기는 그 스님도 또 어디로 가야만 하는 품인지라 이쪽저쪽 둘러보며 길을 찾다가 내 옆의 장벽 같은 버스노선도 앞으로 섰다.
한참이 지나도 눈을 못 떼는 스님 뒤로 장안 영통 매탄 수지 동탄 용인 정자 분당 장곡 부천 상록 반월 고잔 정왕 버스들이 오명가명 괴성을 내지르고 멈춰 서서 사람들을 게웠다 다시 집어삼키고 1번부터 7000번까지 색색의 차량이 엇갈리는 와중에도 정작 타고 갈 차는 없었던 모양인지, 스님은 열심히 노선 번호와 정거장 이름들을 뜯어보고 있었지만, 길들의 홍수가 버거운 것인지 아무 데나 섞여들어야 한다는 것이 두려운 것인지, 칸딘스키의 그림보다 이지러져 목적지가 안개처럼 흐려지고 마는 그 터미널에서 스님은 우두커니 미아가 되어갔다.
내가 버스에 탈 때까지 한 점 회색으로 거기에 꽂혀있었던 노스님의 마지막 얼굴은 아까까지의 경건함이 아닌 공포와 당혹감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마치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지축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기라도 할 것처럼, 그의 함(喊)이 소리 없이 귓전에 울려 퍼졌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