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삼대목 84-
그녀는 마스크를 끼고 남자화장실에서 똥 묻은 휴지를 치웁니다
목덜미에 연녹색 목줄이 걸려 대롱거립니다
나는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장갑 끼지 않은 손을 씻습니다
물이 마르면 무채색 외투가 더 두꺼워집니다
책을 읽지 않는 나라의 일번지는 서점입니다
서점 주인은 평생 몇 권의 책을 읽을까요
그녀는 세면대 밑에서 새 휴지를 잔뜩 꺼내 디스펜서에 채웁니다
라텍스 장갑이 타고 남은 피부처럼 하얗습니다
오래 붓을 꺾어두었던 시인은 숯덩이가 되어 발에 차입니다
사람을 닦아내려면 수많은 종이가 필요합니다
그녀가 떠난 화장실은 고요로 향해갑니다
변기는 어느 시점에 복도로 역류하기 시작할까요
누우나 서나 넘쳐나는 세계를 한 글자도 읽지 못한 채 밤을 새웁니다
비닐에 쌓여있다고 더 비밀스럽지는 않습니다
소망하지 않기를 소망하는 사람과 소망하기를 소망하는 사람이 겹칩니다
봉투에 담긴 종이의 가치는 모두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