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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파이 Feb 15. 2024

옆집에 호텔셰프가 산다

초심자를 만난 고인물의 시선?

파이집시작하기 전에 집에서 호두파이 구워 팔던 시절 일이.
오전엔 제과학원 다니고 오후엔 8살, 5살 애들이랑 씨름하다가 밤이 되면 호두파이를 구웠.
그 무렵엔 얼마나 동동 거리며 살았지 모른다.


애들 키워본 엄마들은 알 텐데 8살 즈음 아이들에겐 병이 있다.
바로 엄마 말이 안 들리는 병이다.
허공에 대고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엄마 말에 대꾸나 반응을 안 해준다. 못 듣는 척하는 거다.

첨엔 좋게 좋게 말로 하다가 점점 목소리가 올라가게 되어있다.
그때 깨달았다. 나도 사자후를 할 수 다는 것을....
단전에서 끓어오른 분노를 소리로 내지르는 기술이 생겼다.

어느 날은 퇴근해서 들어오던 오빠야가 물었다.
"너 혹시 방금 소리 질렀어? 1층에서 니 목소리 다 들려~"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리 집은 9층이었기 때문이다.


............


우리 옆집 아저씨는 이상하게 대낮에 자주 보였다.
월급쟁이 남편과 살다 보니 낮에 자꾸 다니옆집 아저씨가 이상해 보였다. 저분은 자영업을 하시나 그냥 백수신가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어느 날은 엘리베이터에서 옆집 아줌마아저씨를 만났다. 그때 아저씨가 나에게 슬쩍 말했다.

"화장실 통해 소리 잘 들려요."

옆집하고는 거실 화장실이 서로 붙어있는 구조였는데 화장실 방음이 잘 안 되어서 우리 집 음이 잘 들린다는 얘기였다.

곁에 서있던 옆집 아줌마가 화들짝 놀라며 남편 말을 막았다.

"애들 키우는 집은 원래 그런 거야! 우리도 다 그렇게 키웠어!!"

그러 아저씨를 끌고 으로 들어가셨다.

다음부터 애들 혼내기 전화장실 부터 닫고 애들을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

여하튼 그 이후로도 아저씨를 종종 마주쳤는데 아저씨 늘 나에게 호기심이 많다.
어느 날은 집에서  하길래 맨날 빵냄새가 나냐고 었다.

밤부터 새벽까지 매일같이 호두파이를 구워대고 있었으니까 그럴 수밖에.

매일 냄새만 피워서 죄송하다고 하면서 호두파이 한판을 포장해서 옆집에 갖다 드렸다.

며칠 뒤에 호두파이 배달하려고 싸들고 나서다가 또 옆집 부부를 만났.
역시나 아저씨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호두파이 굽는 건 어디서 배웠냐, 이런 파이 박스는 어디서 샀냐, 스티커랑 비닐백도 다 산거냐 묻는 거다.

옆에 있던 아줌마가 또 당황하며 아저씨를 막아섰다.

"이런 거 다 인터넷에 팔아!!"

"이 양반이 그날 호두파이를 맛있게 먹어서 래요~마워요. 맛있게 먹었어요."

렇게 인사를 하고 또 아저씨를 끌고 들어셨다.

그러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옆집 따님을 만났.
그 댁도 딸만 둘인데 중학생이었다.

나보고 인사를 했다.

"아줌마, 집에서 호두파이 구워요? 지난번에 주신 파이 맛있게 먹었요!"
그래서 짧은 대화를 이어갔.

아빠가 나한테 궁금한 게 많으시더라 하고 웃었더니 아이가 그러는 거다.

"아! 아빠가 셰프라서 그래요!"

나는 깜짝 놀랐.

"으응? 셰프? 어디서 일하시는데?"

"롯데호텔 양식 셰프세요"

"롯데호텔??"

"네!"

"소공동 본점???"

"네!"

오 마이갓...
나까짓게 롯데호텔 양식 셰프한테 패기 넘치게 호두파이를 갖다 준 .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
먹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 와중에도 맛은 있으셨을까 궁금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이집을 차리고 우리 가족은 그 집에서 이사를 나왔다. 10년도 넘은 이야기이지만 나에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다.


아파트 주거 환경이 늘어나면서 층간 소음으로 이웃 간에 불화가 생기종종 뉴스에 나올 사건이 발생하곤 한다.


예전엔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자주 썼던 것 같은데 시대가 변해서 그런 걸까. 한 건물에 사는 아파트인데도 나 역시 이웃에 대해  모르는 것 같다.


마을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내 가족, 내 공간, 나 자신만이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다 보니 이웃에 대해서 생각해 줄 여유가 없다.


어쩌면 나도 무개념한 이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이들 키우는 집이라고 음도 양해해 주시고, 파이 굽는 냄새를 매일 풍겨도 이해해 주신 덕분에 가 파이집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새삼 감사한 마음이 피어오른다.

삭막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배려해 주는 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었다.

"셰프님~ 그때는 애들도 어리고 저도 뭘 몰라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옆집에 사는 베이킹 초심자를 너그럽게 양해해 주신 덕분에 저도 성장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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