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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파이 Feb 21. 2024

돈 2만 원

소액의 배움

작년 여름 끝자락이었다.
어떤 젊은 청년이 파이집에 들어섰다.
20대 중후반으 보이는 키도 크고 캐주얼하게 입은 멀끔한 청년이었다.

청년은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차비가 필요하단다.
너무 올드했다.

할머니 댁 동호수를 대면서 며칠 뵙고 가려고 왔는데 갑자기 급한 일로 돌아가게 됐단다.
알바비가 내일 들어와서 지금 돈이 하나도 없다면서 차비 1만 8600원을 빌릴 수 있겠냐는 거다.

할머니가 노인이셔서 인터넷 뱅킹도 못하시고 자기가 지금 사정이 너무 급하다. 3일 뒤에 다시 올 건데 꼭 갖다 주겠. 혹시 못 오면 입금을 해주겠다며 내 연락처를 달라고 해서 본인이 문자까지 남겼.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웠.

1층 상가인 파이집에는 숱한 잡상인과 종교인이 방문다.
불우이웃 돕기를 하라거나 뭘 사달라거나 때론 구걸을 하기도 다. 언젠가는 가출 청소년이라며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런 경우는 여지를 주면 안 나가거나 다시 방문할 거 같아서 가차 없이 바로 돌려보다.

청년의 경우는 사기라면 올드한 방법이긴 한데 사정이 딱했.
결국 2만 원을 내줬.


............


어떻게 됐까?
예상대로 돈을 결국 못 받았다.

3일 뒤에 청년은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청년이 남긴 문자에 답문자로 어찌 된 건 물어봤.

"죄송합니다ㅜㅜ 제가 아직 못 내려가서... 돈이 월요일에 나온다 해서요. 혹시 월요일에 계좌로 보내드려도 될까요?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답장이 왔.


다시 월요일에 문자가 왔.

"죄송합니다. 돈이 계속 안 나와서 제가 수요일날 마무리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ㅠㅜ"


어떻게 해야 할까?

사기일까? 진짜 사정이 있는 걸까?

사실 그 기간 동안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2만 원이 자꾸 내 머리에 떠올랐.

과연 청년이 정말 딱한 사정인 걸까.
아니면 순진하게 믿었다가 사기를 당하는 것일까.

청년의 사정이 딱한 거라면 그깟 2만 원 정도 도와주는 셈 치고 잊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사기라면 이 돈을 신고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인가...

너무 소액인데?


................


돈이라는 건 참 우습고 대단다.
내 주머니에 있을 때는 내가 갑인데 내 돈이지만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순간 나는 을의 위치가 다.

이제 내 돈을 달라고 요청하고 기다려야 한다.
줄지 말지는 그 청년의 마음에 달렸.
렇다면 청년이 갑인 거지.

희한하다. 내 돈인데 내가 갑이 아닌 거다.

이래서 돈거래는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는구나를 단돈 2만 원로 배웠다.

단 일주일 만에 그깟 돈 2만 원으로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경험을 해봤.
깨달음의 값으로 그 돈은 포기하기로 했.

담담한 마음으로 청년에게 문자를 보냈.

"혹 상황이 안 좋으신 거면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학생이신 거 같은데 저한텐 큰돈이 아니지만 돈없을 때는 2만 원도 큰돈이니까요. 
동네 동생한테 밥 한번 사준 걸로 쳐도 저는 괜찮으니까 혹시 수요일까지도 어려우시면 그냥 그런 걸로 해요."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런 문자를 받았을 때  답문자 지 않을까?
감사하다거나 꼭 갚겠다거나...

청년에겐 더 이상의 연락이 없었.

계절이 몇 번 바뀐 지금까지도.


.............


이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하지 않았.
소액 사기를 당한 게 부끄러웠 때문이다.

2만 원...
나에겐 어쩌면 작은 돈이고, 어쩌면 큰돈이다.
4500원짜리 미니 파이를 4개 팔고도 2000원이 모자란 돈이까.

그때 청년은 혹여 내가 돈을 빌려주지 않을까 싶었는지 할머니댁에 가끔 방문하면 이곳에 들러 파이를 샀었다고도 했.

그래서 내 마음이 더 갔는지도 모른다.

그 청년은 어쩌면 지금도 동네 작은 가게들을 기웃거리며 2만 원씩 얻고 그 연락처를 남기는지도 모르겠.

청년의 연락처가 내 에 저장되어 있다 보니 카톡 프로필 뜬다. 아무것도 등록되어 있지 않은 깡통 프로필.

한편으론 괘씸하고 한편으론 딱하기도 하다.

아직 젊은 그는 그렇게 사는 게 정말 부끄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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