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5일
담임 없는 티
마음의 정화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글을 쓴다고 얘기했었다. 얼마나 허울 좋은 답변이었던가. 지난 한 학기 동안 글을 쓴 날을 손꼽자니 까마득하다. 정말 힘드니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이번 학기를 돌아보면 ‘버텼다’는 말이 떠오른다. 22명의 아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화가 나서 화장실 문을 잠그고 40분씩 앉아 있는 아이도 있었고, 쓰레기통을 비운 뒤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아이도 있었다. 오전에는 수업과 소소한 갈등을 해결하느라 바빴고, 오후에는 상담과 수업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평년보다 학급경영에 더 공을 들였던 한 학기였다. 혹여나 결혼 준비 때문에 학급 경영에 소홀해 보일까 더 열심히 했다.
본식 한 달 전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고, 그제야 ‘워워’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혼여행으로 딱 5일 간 자리를 비웠을 때 일이 터졌다. 현장체험학습 다녀오는 길에 기분이 상한 두두(*)는 학교 밖으로 탈출을 감행했고, 상대방을 곧바로 117에 신고했다. 쓰레기통에 들어가거나 벽에 머리를 박곤 했던 쭌(*)이, 이번에는 친구에게 쓰레기를 뿌리고 통을 던졌다. 그리고 하하(*)는 임시 담임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녹음을 했다고 한다.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이런 얘기를 듣자 어안이 벙벙했다. 평소 같았으면 안부 인사 차 편하게 들렸을 교장실 문이 그날따라 무거워 보였다. 세상 머쓱하게 인사를 드렸다. 신행은 잘 다녀왔는데, 지난 한 주 참 다사다난했던 것 같다고. “담임 없는 티를 낸 거지” 교장 선생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교장 선생님은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다. '담임이 없으니 마땅히 그런 일이 생기지'가 아니라, '그만큼 선생님이 잘해오셨던 거지요.'라는 격려임을 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얼굴이 뜨거웠다.
맞다. 내가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여태 내게는 명품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나와 함께 하는 아이들이 곧 내 얼굴이고, 학교에서 나의 입지라 믿었다. 그런데 내가 지도한 학생들이 다른 사람을 힐난하고 공격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다니. 올해 무엇을 놓쳤던 것인가 하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했다.
완벽한 톱니바퀴
남 탓을 하고 싶기도 했다. 그간의 시간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이 사태를 순순히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면서 혼자 긍정회로를 돌렸다. 이제 겨우 세 달, 그것도 하루 5시간만 함께 했으니 부족했던 거지 잘못된 게 아니라고 위안 삼고 싶었다. 각자가 보내는 19시간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믿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결국 도움이 되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나는 학생들을 통해 나를 봐.
매년 학생들이 내게 시사하는 바가 있어.”
옆 반 선생님께서 종종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올해 우리 반 학생들이 내게 알려주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지, 스스로 어떤 면을 살펴야 할지 고민했다.
나는 다행히 노력에 따라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는 삶을 살아왔다. 계획을 세우는 게 가장 쉬웠고, 그다음 쉬운 건 계획대로 사는 일이었다. 계획은 상시 수정되기도 했는데, 이를 위해 삶을 돌아보는 과정도 즐겼다. 이런 능력은 물론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 자기 조절 및 관리 능력은 급변하는 시대에서도 놓칠 수 없는 미래 역량인 것도 확실하다. 하지만 3학년 학생들, 특히 우리 반 학생들에게는 그보다 앞서 다른 가치를 지도해야 했다. 자기중심적으로 사고를 하고 인정 욕구가 강한 학생이 많기에 무엇보다 남을 비난하지 않고 실수를 인정하는 등 유연하게 넘어가는 법을 알려줘야 했던 것이다.
나는 우리 반을 완벽한 톱니바퀴로 만들었다. 그러니 톱니 하나가 빠지자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멈춰 서고 말았다. 저경력 교사가 빠지기 쉬운 함정 같기도 하다. 반이 잘 돌아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학급에서의 규칙을 공고히 쌓은 것이지 변화에 따라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을 쌓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말이다. 아직 한참 부족한 내가, 여전히 미숙한 존재들과 함께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아니,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