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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Oct 26. 2024

선택의 기로에서

어른에게 화해란

 아이가 어른보다 낫다. 적어도 화해하는 방식은 더 쿨하다. 사회생활을 하다 틀어진 사이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그 일 이후로 난 차라리 투명인간이 되길 바랐다. 부장님은 아랑곳 않고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아래위로 눈을 흘기는데, 그 시선 세례가 참 어려웠다. 이런 모습을 목격한 다른 이가 무슨 일이냐며, 원래 저렇게 보냐는데 일일이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것도 곤욕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또 다른 일이 터졌다. 도서관 활용 수업을 위해 도서관에 간 날이었다. 아이들에게 가을 또는 세시 풍속과 관련된 책을 찾아 읽어보라고 얘기했다. 얼마 전에 들어온 자료 검색대를 활용해 도서관 자료를 검색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한 여학생이 사서 선생님께 찾아 달라고 부탁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사서 선생님은 평소와 같이 상냥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지금 대출해 달라는 학생이 많아서 어려울 것 같으니 검색대를 활용해 찾아보라는 말씀이었다.


 그 학생은 사서 선생님의 면전에 “죽으세요.”라고 대꾸했다. 모든 게 너무 벅차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잠깐이라도 여기서 벗어나야 살 수 있겠다 싶었다. 겨우 추석 연휴를 끼운 며칠이었지만.    




 학교에 다시 돌아가는 길이 참 끔찍했다. 우리 반을 대신 맡은 기간제 선생님은 이틀 만에 도망쳤다는 소문이 들렸다. 학급에서 다툼이 있었는데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팔뚝을 물었다고 한다. 덩그러니 남아 있을 아이들이 눈에 밟혀 돌아가자니, 내 앞에 닥친 현실에 눈앞이 깜깜했다. 내가 떠난 다음 날 부장님은 다른 반 선생님들을 불러 모아 본인 잘못이냐며 넋두리를 하셨다는 얘기도 들렸다. 입장이 난처했다. 그렇게 공공연히 내 몫의 일이 아닌 건 시키지 말라고 했으니 적어도 내가 맡은 일은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도 들었다. 학교를 벗어났지만, 내가 있는 모든 곳이 학교인 냥 끊임없이 이야기가 들렸다.   

   

 그럼에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떳떳한 선택을 해야 했다. 미우나 고우나 학생들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교감 선생님께서 수업을 들어가신다는 소식도 한결 마음을 무겁게 했다. 온전히 아이들만 바라봐 줄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나로 인한 공백이라는 생각에 발목이 잡혔다. 그리고 사회생활 중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몇 회기의 상담을 받으며 마음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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