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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CHOI Aug 20. 2024

이성으로의 도피

20대 땐 지극히 감정적 유형의 사람이었다. 공상도 많았고, 허영심도 많았다. 무언가 바라는 게 있으면서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저 앉아서 무언가 바라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싫었다. 능동적으로 살기를 원했으며, 좀 더 열정적으로 이성적으로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태생이 이렇게 태어난 인간이기에 이성과 감정은 내가 원할 때마다 슬롯 교체하듯이 그렇게 바꿀 수 없다 생각했다. 얼마나 감정적 유형의 사람이었던가. 너무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 

하지만 30대로 접어들고 서서히 이성적 유형의 사람으로 바뀌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그렇게 된 건지 잘 모르겠다. 20대 중후반부터 의식적으로 게으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었다. 그래서 아침 5시에 일어났다. 신문을 읽고, 글을 썼던 것 같다. 신문과 글은 당시에 목적이 있었던 행동이어서 그렇다 치더라도 아침 일찍 일어난 행동은 특별히 설명이 안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찍 일어나면 뭔가 게으른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그랬던 건 같다. 자기만족이었던 것 같다. 일찍 일어나면 뭔가 뿌듯했다. 일찍 일어나서 뭐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스스로 다짐하고 실행하고 그것을 이뤘다는 것 자체가 뿌듯했던 것 같다. 그만큼 이런 사소한 일에 뿌듯한 감정을 느낄 만큼 목적의식이 없었다. 목적 없이 일찍 일어났던 행동이 나비효과를 자아낸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작은 행동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큰 결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30대를 지나 일정 시간을 정신없이 달리고 나서 정신을 차려 보니 완전한 이성형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감정적 유형의 나를 혐오했다. 그것이 내 인생에 큰 방해라 생각했다. 그래서 변하고 싶었다. 감정에겐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성으로의 도피를 바랐던 걸지도 모른다. 이성의 영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확실히 많았다. 주도적으로 진취적으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잃는 것도 많았다. 이따금씩 잃었다는 상실감에 사로잡혀 감정의 아픔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성의 영향력이 강해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내가 또 싫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흐르는 강물의 흐름을 바꿀 수 없듯이, 인생의 복잡함 속에서 나의 감정과 이성도 나무색에 맞춰 변하는 카멜레온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인간적인 모습이 느껴지지 않았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나의 일관적이지 않은 모습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나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사실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기도 하다. 겸허하게 한계를 인정하며 무릎을 꿇고 다시 새로 불어올 바람을 기다리며 바라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로운 바람이 나에게 당도했을 때 그 바람에 맞춰 다시 걸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나의 작은 행동들이 항상 올바른 것이길 바라며, 그 작은 행동의 동기가 치열한 고민으로 나온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성이든 감정이든 무언가로부터의 도피는 이제 없다. 나의 나 된 모습을 순간순간 인정하고 때론 하찮게, 때론 고결하게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나의 모습을 사랑까진 아니더라도 불쌍하게 보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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