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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 Nov 25. 2024

2호선 사당역의 포옹으로부터

다들 외롭다고, 그래서 아프다고. 우린 서로 들어주자고.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TV로 뉴스를 보다 속이 답답해져서 껐다. 누군가를 해하고 망가뜨리는 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된다. 금수만도 못하다는 표현도 이젠 금수에게 미안할 지경이다. 인간이 점점 인간답지 않아져서 세상에 정이 떨어진다. 차라리 보지나 말지 싶어서 전원 버튼을 눌렀다. 아, 지구 이거 리셋 안 되나. 손가락을 놀려 인구를 반으로 줄인 타노스가 이해되는 시점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기 참 어려운 시대다. 섣불리 사랑했다가 상처받을까 차라리 외면을 택한다. 다치기 싫어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때로는 상대를 먼저 찌르기도 한다. 가시 돋친 언어들이 말소리를 따라 흐른다. 세상은 너절한 것으로 가득 차 조잡하기만 하지, 실상은 텅텅 비어서 지겹다.


 찌르고 또 찔리고, 찔리고 또 찌르고. 나 스스로 가시투성이 고슴도치가 된 것만 같을 때마다 유튜브에서 찾는 게 있다. 명상이나 잔잔한 노래 같은 건 아니고, 엉뚱하게도 2호선 사당역 취객 영상이다. 1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저화질 영상.


 영상에선 얼큰히 취한 아저씨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경찰의 제지를 받는 소란스러운 와중이다. 그는 경찰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몸부림을 치며 계속 반항한다. 그 옆으로는 핸드폰을 하며 그런 모습을 힐끗거리는 행인들. 몇몇은 그런 아저씨의 모습을 촬영했다. 나였어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 아저씨에게서 멀리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며 친구들한테 카톡이나 보내지 않았을까. ‘아 퇴근하는데 술 마신 아저씨 난리 피우네; 빨리 집 가고 싶다.’ 정도의 내용으로 말이다. 그러곤 짜증스럽게 이어폰을 꺼내 양쪽 귓구멍이 꼭 막히도록 눌러 끼웠겠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아주 깊숙이.


 아저씨가 흔한 2호선 취객 빌런으로 남는 듯했던 그순간, 근처에 있던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나로서는 상상치도 못할 행동을 했다. 청년은 포옹했다. 술에 취한 채 발버둥 치는아저씨를 꼬옥 안았다. 아저씨는 당황한 듯 몇 번 뒷걸음질 치더니, 이내 그를 토닥이는 청년의 왼쪽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그러고는 흥분한 탓에 가빠진 숨을 고르며 겨우 내뱉은 말. ‘제가요. 저번 주에 있잖아요…’


 아저씨가 피를 토하듯 외친 것은 주정이 아니라 사정이었나보다. 억울하고 속상하고 비통한 사정. 그리고 그 누구도 그 사정을 궁금해하지 않아서, 들어주지 않아서, 그게 사무치게 외로워서 잔뜩 취한 채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고래고래 외쳤나 보다. 모두 찡그린 표정으로 아저씨를 비난할 때, 자리에서 일어나 그 품을 안아준 청년은 그와 같은 외로움을 겪어본 사람이었을까.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었을까. 사실 다들 다정한 포옹 한 번이 간절해 이리 발버둥 치고 있는 걸지 모르겠다.


 나 하나 살기도 어렵다는 핑계로 너무 쉽게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있었다. 듣기 싫은 소리를 피한다는 핑계로 들어야 하는 소리조차 외면하고 있었다. 더 이상 나 아닌 누군가의 사정이 궁금하지 않다는 것이 슬프다. 그렇게 한 명씩 고립되고 고립되다 세상이 여기까지 왔나. 뉴스를 틀면 아픈 소식이 가득한 이때까지 왔나.


 청년이 아저씨를 안아주는 영상을 백 번은 봤다. 나 또한 그 청년에게 백 번은 안겼다. 뾰족해진 마음을 포옹으로 뭉개며 다시금 생각한다. 다들 외롭다고, 그래서 아프다고. 우린 서로 들어주자고. 너무 힘들어하지는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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