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수집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미술에 있어서 현대적 의미의 수집의 역사는 르네상스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요.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에서도 미술 작품을 사고 파는 일, 흔히 ‘아트 컬렉팅’이라고 하는 분야가 무척 활성화되고 확장되고 있습니다. 국내외 아트 페어 행사도 다양해졌고, 작품을 관람하거나 구매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지요. 과열된 양상 속에서 시장의 논리에 따라 어쩌면 당연한 수순으로 미술 작품을 투자 상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급격히 늘어났어요.
명성 있는 컬렉터 중에는 막대한 재산으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미술 작품을 수집하는 일은 특별한 부자들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세계적인 부부 컬렉터인 허버트&도로시 부부(Herbert & Dorothy)의 보겔 컬렉션(Vogel Collection)은 이와는 다른 방식을 보여줍니다.
1962년 결혼한 허버트 보겔과 도로시 보겔은 평범한 우체국 직원과 사서였습니다. 보겔 부부는 미술 작품을 보는 즐거움이 크다는 것을 깨닫고 월급을 아끼고 모아서 작품을 사기로 결심합니다. 보겔 컬렉션의 첫 번째 소장품은 결혼 두 달 후 구입한 존 체임벌린의 작품 <무제>였어요. 체임벌린이 유명해지기 전 그의 작업실을 찾아가 구입한 것으로 금속을 찌그러뜨려 놓은 작은 크기의 작품이었지만 그 안에서 큰 에너지를 느낀 보겔 부부의 첫 번째 선택이었지요. 보겔 부부의 연봉이 높지 않았기에 이처럼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 위주로 구입하면서 비용을 할부로 나눠 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보겔 부부는 이후 수십 년에 걸쳐 5000점이나 되는 방대한 작품을 수집한 컬렉터가 되었지요.
보겔 부부의 컬렉션에는 특별한 기준이 있었어요. 대중교통으로 운반할 수 있는 크기, 자신의 아파트에 설치가 가능한 작품, 감당 가능한 가격의 작품을 컬렉팅 했어요. 작품이 아무리 좋아도 이 기준에서 벗어나면 포기했지요. 부부가 함께하는 컬렉팅이니만큼 각자의 개인적 취향 및 기존 컬렉션과의 연관성도 중요하게 생각했고요. 보겔 부부가 가장 즐거워했던 것은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해서 대화를 나누며 작품을 잘 이해하게 되는 일이었어요. 미술 작품을 좋아하고, 깊이 알고자 하고, 그러면서 작가와 작품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그 모든 과정을 즐기고 좋아했던 부부였다고 할 수 있겠죠.
보겔 부부는 미술 작품 수집을 통해 재산의 가치를 높이는데 전혀 관심이 없었고, 한 번 구입한 작품은 절대 팔지 않았어요. 부부가 당시 소장했던 거의 모든 작품들을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에 기증했죠. 미술관의 관람료가 무료인 점, 어떤 경우에도 소장 작품을 팔지 않고, 상설 전시장에 영구 전시하도록 한다는 조건으로요. 그 이후에도 계속 작품을 사들인 보겔 부부는 미국의 여러 미술관에 소장품을 기증했습니다.
예술가를 사랑하고, 미술 작품을 사랑했던 보겔 부부의 컬렉션은 작가도, 작품을 향유하는 관람자들도, 무엇보다 그 자신들도 모두 행복하게 만든 것 같죠? 월급쟁이 컬렉터 부부의 미술 사랑법, 여러분도 한 번 해보시겠어요?
(참고 도서: 채민진, 「컬렉팅 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