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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네 컷을 남긴다면

by 김바다

책상 앞에 붙어 있는 네컷 사진들을 보았다. 생각을 이어갈 즈음에 문득, 인생네컷이라는 단어가 다르게 다가왔다. 내 인생에서 남기고 싶은 네 컷의 장면을 고를 수 있을까? 아주 먼 시간, 평생 동안에 내가 딱 네 가지 사진만을 고른다면 뭘 골라야 할까. 나는 고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이 명료해지기 전에 아른거리면서 장면 몇 개가 두둥실 떠올랐다. 어떤 장면은 그래, 이건 바로 넣어야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고 다른 장면은 대체 왜 이게? 하며 망설이게 했다. 그리고 큰 고민을 이어갈 새도 없이 내 머릿속에서 네 컷의 장면들이 구성되었다. 두 가지는 엄마로부터, 두 가지는 아빠로부터 만들어진 기억들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기억은 엄마와 아빠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기억은 엄마가 산에 가서 산딸기를 따준 것이다. 관악산 들어가는 초입에 등산객들이 많이 지나다니는데도 초여름이면 산딸기 몇 알이 남아있었다. 엄마는 영근 산딸기를 따서 내 손 위에 올려주었고, 어떤 건 초록색이 섞여 있었고 또 다른 건 작았다. 큰 건 운이 좋아야 먹을 수 있는 거였다. 오독 오독 씹는 알알이 사이로 과즙이 터지면서 산딸기 향이 퍼져나왔다. 엄마 손을 잡고 산에 오르는 것도 좋았고, 산이 주는 선물도 있으니 어린 나이에 이보다 좋은 기억은 없을 것이었다. 아마 어린 시절 2-3년 동안인가 산딸기 따러 가자를 봄이 지날 때면 부르짖다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찾지 않게 되었다. 엄마는 그 해에도 산딸기 따러가자고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친구와 놀아야 한다든가 텔레비전을 본다든가 하면서 거절했겠지. 그렇게 산딸기 추억은 먼 뒤로 사라졌다.

다른 기억은 호일에 싸인 바나나 아이스크림이다. 나는 집에서 황급하게 달려 나가고 있었는데, 엄마가 따라 뛰어오면서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나에게 건네 준다는 것이 은박지 호일에 싸인 얼린 바나나였다. 내가 어릴 적에 엄마와 아빠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자주 사주지 않았다. 내가 몰래 불량식품을 많이 사먹기는 했어도 엄마와 아빠는 그런 음식들에 엄격하게 굴었다. 그때 엄마가 얼린 바나나를 주었을 때, 내 안에 든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왜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멋있게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을 수 없을까. 왜 나는 유치원 때 현장학습을 갈 때조차 음료수 사이다를 부탁해서 겨우 싸간 걸까. 이젠 알고 있지만, 내 건강을 생각해서 그렇게 먹인 거라는 걸 알지만 그 당시에 나는 그런 건강한 음식들이 부끄러웠다. 친구들과 달라서 그랬나보다. 그 부끄러움이 이렇게 오래도록 나를 슬프게 한다.

세 번째 기억은 햄버거이다. 음식에 더 엄격했던 엄마와 달리, 아빠는 가끔 아빠 일하는 곳에 놀러가면 나에게 햄버거를 사주었다. 롯데리아의 새우버거였다. 아마도 이게 고기보다 더 나을 것 같아서 이것만 사주신 것 같다. 아마 더 저렴해서 일수도 있고. 그런데 나는 그 새우버거가 무지하게 맛있었다. 콜라와 감자튀김까지 먹을 수 있어서 참 기쁘고 좋았다. 인스턴트의 맛이 짜릿하게 내 몸을 채우면 나는 행복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새우버거를 찾아 먹는데, 그럴 때면 아빠가 가장 커 보이던 그 때가 그립다.

네 번째 기억은 2002년 월드컵 붉은 악마이다. 레드가 적힌 빨간 티셔츠를 입고 아빠 손을 잡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광화문 거리를 걸어다닐 때였다. 희미한 그 기억은 내가 태어난 우리나라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하였다. 한국, 대한민국 그 말을 하면서 내가 태어난 이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었다. 축구를 잘 몰라도 사람들이 열광하고 모두가 들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빠는 나를 데려가서 그 순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셨다.

이렇게 네컷 사진을 채운 데에 후회가 생기지 않는다. 그만큼 소중한 기억이라서 그런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기억은 어린 시절에 만들어지나 보다. 그 시절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그 기억이 흐릿해질 정도로 먼 시간이 흘러 빛이 바래도 잔잔하게 행복하게 만드는 게 소중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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