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토토에게
우리 모두가 자신의 영화 속 토토임을 잊지 않기를
<시네마 천국 전시 중>
안녕, 어린 시절.
블랙핑크의 로제가 MTV VMA에서 상을 받으며 한 수상 소감이 인상깊더라. 로제는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이 상을 바친다고 했어. 꿈을 꾸고 멋있고 싶었던 열여섯 살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그 꿈을 이룬 지금 감사하다고 했어.
나는 어린 시절보다 나이든 지금이 더 당당하고 멋있어졌다는 생각을 했거든. 로제도 분명 열여섯보다 지금이 더 멋지게 빛나고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그 열여섯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참 나에게 신선하더라. 어린 시절에게 떳떳하고 싶은 마음은, 그때 스스로에게 당당했고 멋진 꿈을 꾸는 자신을 아주 선명하게 그리며 꿈에 가기 위해 정말 애썼기 때문에 현재까지 존재하는 게 아닐까? 로제의 말을 들으니 로제의 열여섯이 부럽더라. 아주 선명하고 깨끗하게 꿈을 꾸는 소녀, 그 소녀를 기억하고 아주 빛나는 지금에도 그녀를 기억하고 있기에 로제는 참 행복하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있는 사람 같아. 어린 시절을 부끄럽다고 여기는 게 아니라, 어린 시절에게 지금이 부끄럽지 않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오히려 더 깊고 성숙한 것 같아. 얼마나 순수하고 열정이 가득했으면 그 열여섯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큰 상을 그 열여섯에게 보낼까. 너무 멋있더라.
나는 내 열여섯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생각해봤어. 나도 열여섯살 때 꿈을 많이 꿨지. 영어를 정말 잘 하고 싶었고,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어. 그런데 나는 말이야, 솔직하게 말하면 내 열여섯에게 지금이 부끄러워. 이룬 게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시니컬한 어른이 된 사실이 말이야.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했는데, 대학도 잘 들어가고 졸업했고, 돈도 열심히 벌고 있는데 그 열여섯 때만큼 기쁘고 스스로에게 자랑스럽지가 않다?
내가 아주 빛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어느새 그 빛이 꺼져버렸어. 너무 힘들어서, 여기까지 오는 과정 자체가 너무 험난해서 나는 내가 가지고 들고 있는 것에 감사하기는 커녕, 이 정도는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이 정도 얻은 건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런 거..
다르게 생각해보면 열여섯때야 적당히 노력하고 적당히 이루면서 기뻐하느라 밝았을지도 몰라. 그런데 나는 현실이 적당한 게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 남들 다 가는 대학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거 가는 것도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지. 아주 피나게 노력했어야 했어. 너무 무서웠어. 또 실패할까봐. 또 실패하면 죽을 생각이었어. 죽을 각오로 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끝장내려고 했지. 그건 정말 살벌한 생각이었어. 내 모든 게 내 모든 가치가 성적 하나에 달려 있는 거 말이야. 다행히 시험도 잘 보고 대학도 합격했지만, 나는 적당한 노력이 아니었다? 모든 걸 걸고 덤볐고 겨우 겨우 한 거야. 그래선지 나는 시니컬해지고 말았어. 마음이 열정이 아니라, 아주 멀리 떨어져서 모든 걸 바라보는 상태가 된 거야.
그래 솔직히 말하면, 열정 그거 하나로 뭔가 이루기는 어렵더라. 아주 똑똑하게 생각해야 하고, 계산해야 하고, 머리를 많이 써서 살아야 해. 살아간다는 게 그렇더라고. 남들 하는만큼 하는 것도 대단한 거야. 남들 하는 거 이상으로 뭔가를 잘 해내려면 뒤에서 더 노력해야 하지.
그러다 보니, 어릴 때 열여섯의 열정이 나는 너무 초라하게 보이는 거야. 겨우 중학교에서 상 많이 받았다고, 세상 모든 걸 다 이루고 멋지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꿈을 꾸던 내가 너무 안타까울 정도가 된 거야. 그런 게 아닌데. 그게 다가 아닌데. 넌 너무 순수했어. 세상을 모를 정도로 말이야.
이건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이라기보다는 막 내 안에서 터져나와. 자연스럽게 열여섯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돼.
그래서, 미안해. 열여섯. 로제처럼 이루지 않아서 미안한 게 아니야. 로제처럼 당당하고 열정이 없는 내가 열여섯에게 미안해.
나는 말야. 이렇게 미안해하고 있지만 언젠가 너만한 열정을 다시 찾고 싶어. 너처럼 그렇게 좀 더 반짝이는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 너처럼 그렇게 뭘 모르면서 용기있고, 도전하고, 우당탕탕 부딪치면서 조금씩 이룬 것에 소중해하는 그런 마음을 되찾고 싶어. 언젠가 내게 오길 바라.
그때보다 좀 더 능력있는 나에게 너만한 열정이 돌아온다면, 아주 무거운 마음에 시니컬한 생각에 조금 더 희망이 생길 것 같아.
열여섯, 너 정말 대단했어. 그렇게 열정가득한 너, 부러워. 아주 부러워. 내가 그때보다 똑똑하고 행복하고 잘 살고 있지만 뭘 모르던 너 정말 귀여웠다.
열여섯! 사실 네가 있어서 지금 내가 있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