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동생이 두 명 있다. 여동생과 남동생 중에 오늘은 여동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 여동생은 순하다.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야무지게 자기 할 일을 잘 하고 착하다. 그런 동생을 어릴 때부터 괴롭히고 상처준 건 나였다. 생각해보면 동생은 나에게 상처를 준 적이 없었다. 아주 어릴 때 같이 걸어가다가 내가 빨리 뛰어서 골목 뒤편으로 사라지면 여동생은 크게 울었다. 무섭게 남겨지고 버려진 것 같아서 그랬을 것이다. 나는 하나도 안 무서운데 왜 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렇게 동생을 곯려먹는 게 재밌어서 그런 행동을 자주 했다. 그리고 동생이 얼굴이 예쁜 편인데 얼굴이 네모나게 생겼다고 네모공주란 별명을 붙여 부르기도 했다. 얼굴 마사지를 한다고 하고 얼굴을 잔뜩 흔들거나 주무르면서 장난을 치기도 했다.
이런 것들도 미안한데, 다 커서도 나는 여동생에게 미안한 행동을 많이 했다. 나와 여동생, 남동생이 같이 사용하는 장보기 비용을 내가 내는데, 그거 내기 싫다고 동생들 먹는 거 책임지기 싫다고 안 낸다고 자주 그랬다. 그리고 실제로도 돈을 내지 않았다. 내가 쓰면서 낭비하는 건 생각도 안 하고, 동생들 먹는 게 아까웠던 것이다. 이게 너무 미안하다.
내가 사용하는 블로그에 몇년 전에 쓴 것들이 같은 날짜에 올라오는 기능이 있는데, 나는 3년 전 글을 읽고 놀랐다. 여동생이 귀엽다고 적어놓은 것인데, 내용이 나에게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언니 초코우유 먹을래?”
“아니? 너가 그런 거나 먹으니까 배가 아프지.”
“언니가 돈을 안 줘서 그렇지.”
“언니, 나 샤인머스켓이랑 바나나랑 매실 사다줘.”
“나 돈 없어. 이번에 학원 애들 13명 음료수 사주기로 했어.”
“나는?”
이게 우리가 실제 한 대화였는데 나는 이걸 당시에 귀엽다고 적어 놓았고, 이제 와서 다시 읽히는 감정과 내용들로 인해 슬프고 마음이 아팠다. 여동생은 나를 생각해서 초코우유를 주려고 했는데 나는 그걸 거절했다. 그리고 내가 장보기 비용을 내지 않아서 여동생이 얼마 안 되는 알바비로 좋지 못한 음식을 계속 사먹다가 배가 아픈 적이 있었다. 아주 심하게 아픈 적도 있었고 대학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학교 과제를 밤새서 하고 장에 문제가 생겨서 그랬던 것인데, 하필 그때가 내가 돈 내기 싫다고 했던 시기였다. 여동생이 너무 아파서 죽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병원에서도 염증 수치가 내려가지 않는다고 하고 이렇다 할 치료법을 찾지 못했다. 나는 그 때 다짐했다. 반드시, 반드시 너 낫기만 하면 네가 먹는 거 내가 꼭 낸다고 이렇게 다짐했다. 그러고 나서도 나는 최근 몇 개월 전에 또 돈 모으고 싶어서 돈 안낸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다짐해놓고도.
내가 돈을 안 줘서 여동생이 건강하지 못한 걸 먹었고, 또 샤인머스켓이랑 바나나, 매실이 먹고 싶었는데 내가 그걸 거절했구나 하는 걸 이제 알게 되었다. 밖에서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으면서 내 여동생이 먹고 싶은 거 하나 안 사다줬구나. 이런 대화를 그 당시에 귀여운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렇게밖에 생각 못한 내가 너무 원망스럽고 안타깝다. 돈이 뭐라고, 모으면 얼마나 모은다고 동생 먹는 것도 잘 못 챙기고 나만 생각했을까. 동생은 알바 해서 겨우 겨우 벌어서 사는데 나는 훨씬 쉽게 많이 벌면서 반찬같은 거 사주는 것도 어려웠을까. 나는 왜 그렇게 나만 생각했을까.
그렇게 나만 생각하면서 살던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나는 요즘에 청소를 매일 한다. 나는 청소를 싫어했다. 귀찮아하고 집안일 할 시간에 공부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일하고 공부하는 데 집중하는 동안 집안일은 모두 가족 차지가 되었다. 그렇게 이기적으로 굴어 놓고, 이제야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서 함께 살아가는 걸 하고 있다. 가족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청소도 매일 하고, 반찬도 떨어지지 않게 사다 놓고, 크리스마스 시즌이니까 양말에 간식도 챙겨 넣고, 과일도 좋아하니까 떨어지지 않게 사놓고 있다. 이제야 사람다워지는 것 같다. 한때는 나만 생각하는 게 이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남들을 다 이기고 나만 성공하는 게 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같이 살아가는 걸 배워가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잘해주는 것도 배우고 있다. 사회적 인간관계에서도 두려움 없이 관계를 맺고 잘 해나가고 있다. 농담도 잘 던지고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있다.
이런 걸 보면 사람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지는 게 얼마나 필요한지 알 것 같다.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이었는데,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사람에게는 평생이라는 세월이 주어지기 때문에, 항상 나쁘게 살다 가지 않는 사람도 있다. 좋은 쪽으로 바뀌어가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언제나 기회가 필요하고, 희망도 있어야 한다. 사람을 믿어주는 것도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 아주 선한 생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세월이 지나고 좋은 사람으로, 배려하는 사람으로 변할 가능성은 누구나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