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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 포굿: 영상으로 빛과 감정을 그리다

by 김바다


강렬하게 키스해줘, 나를 꽉 안아줘.
네가 오늘 밤 나와 함께라는 걸 믿게 도와줘.
가장 강렬한 꿈조차 그려볼 수 없었지
네 옆에 누워 네가 날 원하며
이 순간만이라도

“As long as you’re mine-Cynthia Erivo, Jonathan Bailey 중”


이 말을 하는 엘파바의 명랑하고 맑은 목소리, 그리고 초록색 피부에 진실한 눈. 얼마나 꿈조차 꾸기 어려운 일을 두고 있는지, 그 설레고 벅차는 감정을 잘 표현했다. 엘파바는 피에로를 사랑한다고 믿는 것에서조차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멋진 남자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 엘파바는 황홀한 감정에 빠져 있다. 강렬하게 키스해줘, 나를 꽉 안아줘, 라는 여자로서 하는 엘파바의 수줍고 당돌한 말이 왠지 아리고 사랑스럽다.

그 말에 화답하는 피에로의 노래도 굉장하다. 피에로가 maybe I’m brainless라고 노래를 시작할 때, brainless를 채우는 감미로운 가성이 채 감동을 퍼뜨리기도 전에, maybe I’m wise가 나와서 정신을 잃게 만든다. 가볍게 숨을 내쉬는 듯한 wise, 그 한 단어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힘을 약하게 빼고 소리를 실었는데도 풍성한 느낌이 든다. 나는 그 발음이 끝나는 순간에 아쉬움을 느꼈다. 피에로의 높은 콧날과 뚜렷한 얼굴의 윤곽에 빛이 비쳐들면서 명암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밤의 사랑이 만개하였다.



어쩌면 나는 정신을 잃은 건지도, 아니면 현명한 걸지도 몰라
하지만 너는 내가 다른 눈을 통해 보게 만들어.
내가 너의 마법의 주문에 빠졌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나는 내가 떨어지는 곳 어딘가에서 비상하는 걸 느껴

“As long as you’re mine-Cynthia Erivo, Jonathan Bailey 중”


피에로가 마법의 주문에 빠진지도 모른다고 할 때, 엘파바가 미소를 지었다. 실제로 마법을 쓸 줄 아는 엘파바이기에 그 웃음이 더욱 미묘하게 다가왔다. 떨어지는 곳에서 비상한다는 게, 참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이다.



마지막 즈음에 글린다가 하는 노래의 가사도 무척 아름다웠다.

나는 어디선가 들었는데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우리의 삶에 우연히 온대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하는 걸 가지고서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가장 많이 성장하게 하는 사람에게로 이끌린대
만약 우리가 그들이 그렇게 하게 하면
그리고 그들에게 보답하여 도와준다면

“For good-Cynthia Erivo, Ariana Grande 중”



영화 내에서의 번역이 더 좋았다. 사람들을 어떤 이유로 우연처럼 오고 우리는 그걸 운명으로 찾아간다, 는 내용으로 의역을 했던 것 같다. 그 말이 너무 울림이 강해서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었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대사를 다시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내 기억이 완전하지가 않아서 우연과 운명으로 연결해놓은 가사를 더듬더듬 찾아가고 있을 뿐이다.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의 아름다운 얼굴에 비쳐드는 빛이 신성하고 숭고하게 보였다. 이런 노래를 부르는 글린다의 표정은 계속해서 바뀌었고, 그 표정의 변화는 감정선을 선명하게 드러내었다.

뮤지컬과 조금 비교를 해보자면, 빠르게 지나가면서 화려하게 볼 거리가 많고 지루하지 않다는 측면에서는 뮤지컬이 조금 더 좋았다. 위키드 영화 1편에서는 사실 지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장면들이 길었는데, 그 와중에도 댄스 파티에서 엘파바와 글린다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에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왜 울었냐고 한다면 그때가 엘파바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글린다는 엘파바를 사람으로서 존중하고 너는 거기에 서 있을 수 있다, 라는 말을 온몸으로 표현해주었다. 그런 진정성 있는 장면에 나는 크게 감동을 받았다.

2편 포굿은 1편보다는 러닝타임이 짧았다. 훨씬 압축적으로 사건 전개를 해나가면서도 장면 장면에 대한 이해도가 좋았다. 어떻게 감정 변화의 깊이를 살려야 할지 감독이 치밀하게 고민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풍부하게 그려내면서도, 늘어지지 않게 깔끔하게 처리하는 존 추의 실력이 놀라웠다.

결과적으로 위키드 포굿은 1편보다도 훨씬 좋고, 뮤지컬조차도 뛰어넘을 정도로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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