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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by 김바다

어제 아빠가 오셨다. 우리 아빠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서울에 올라와서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신다. 어제는 만족오향족발에서 족발과 매운 족발을 먹었다. 나는 별로 족발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남동생이 족발을 먹고 싶다고 해서 간 것이었다. 먹고 보니까 맛이 괜찮아서 큰 불만 없이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남동생이 영풍문고 간다고 해서 따라가서 잠깐 구경했다.

그 다음에 나는 아빠와 페니힐스 커피스테이션으로 갔다. 나는 토지 책도 읽고 발레리나 소설도 썼다. 처음에는 쓰기 어려웠는데 막상 하니까 생각보다 잘 써져서 좋았다. 토지 책은 정말 재미있다. 15권을 읽고 있는데 근대화되어 가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한국문화와 일본문화와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꾸며진 카페 소파에 앉아서 글도 쓰고 책도 읽으니까 행복했다. 좋은 노래도 나오고, 눈이 흩날리는 겨울 장식도 있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브라우니를 먹었는데 브라우니는 부드럽고 촉촉했다. 브라우니를 잘 만드는 가게가 적은지 다른 곳에서는 딱딱하거나 건조한 브라우니를 먹은 적이 많았는데 이곳은 폭신하고 겉은 잘 구워져 있어서 맛이 좋았다. 바닐라 아이스크림도 차갑고 달콤해서 브라우니와 같이 먹으니 잘 어울렸다.

그 다음에 일하러 갔다. 일하러 가서 애들 봐주고 틀린 걸 아이들에게 물어보면서 확인하고 점검했다. 내가 설명만 하지 않고 아이들이 직접 말로 해보게 하고 해석하게 시켜봤더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아이들이 직접 머리를 쓰는 게 좋다. 그러고 어머니들께 전화 드렸는데 열심히 봐주고 주말에도 보충한 만큼, 고마워하시고 애쓰셨다고 해주셨다. 시험 준비가 잘 되어가고 있으며 그래도 시험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라서 끝까지 잘 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기분 좋게 이야기를 들어 주시고 고마워하시는 마음이 느껴졌다. 점점 이 학원에 적응해가고 잘 맞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밤에 아빠에게 드릴 크리스마스 편지를 썼다. 내 사진도 하나 넣고 예쁜 카드에는 공간이 부족해서 편지지 하나를 더 사용해서 적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편지를 적으면서 행복했다. 아빠가 다음에 오시는 건 크리스마스 지나고 나서라 미리 준비했는데 잘한 것 같다. 카를로 로벨리의 책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책도 챙겼다. 아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드리기 위해서였다. 내가 흥미롭게 읽은 양자물리학 책이었다. 샴푸도 넣었다.

9일 오늘은 아빠를 10시 반에 사당역에서 뵈었다. 샴푸는 필요없다고 하셔서 나머지를 선물로 드렸다. 우리는 석촌호수로 향했다. 가는 길에 아빠는 책을 읽으셨다. 노안이라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하기는 하셨다. 그래도 책을 계속 읽으셨다. 물리학 책인데 소설처럼 쓰인 것 같다고 하셨다. 내가 본 아빠는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잘 맞을 것 같다고 고른 것인데 생각보다 재밌게 읽어 주셨다.

잠실역에서 내려서는 아빠가 알아서 길을 찾아 가셨다. 지도도 보지 않고 이 방향이면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지하철 안인데 남쪽을 찾아서 가셨는데 그게 맞는 길이라서 신기했다. 아빠는 지하철이 오는 방향을 생각해보면 방위가 보인다고 하셨다. 공간을 시뮬레이션 해보고 하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하셨다. 밖에서는 해가 뜨는 방향이 동쪽이니 팔을 벌리면 남과 북을 알 수 있다고도 하셨다. 나는 그런 감각이 없었다.

석촌호수를 조금 걷다가 돌아와서 교꾸스시로 갔다. 12시에 만나기로 한 남동생이 전화를 걸었다. 거의 앞이라고 답하고 들어갔다. 교꾸스시는 참 맛있다. 먹자마자 기분이 좋았다. 남동생이 다른 데는 가격이 다 올랐는데 여기는 덜 오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여기도 원래는 13000원 정도 하는 가격이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남동생이 햄버거 세트 가격이었네, 했다. 물가 오른 게 체감이 된다고 했다.

아빠랑 커피스테이션 카페 와서 바나나 푸딩이랑 호주 케이크인 레밍턴 케이크를 먹었다. 아빠는 카푸치노를 드셨다. 바나나 푸딩은 익숙한 부드러운 맛이고, 레밍턴 케이크는 스펀지 케이크로 되어 있었고 라즈베리 잼이 들어가 있었다. 겉부분 초코 코팅 위에 코코넛 가루가 발라져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평화롭게 앉아 있다.

그런데 옆자리에 두 여자가 있고 한 사람이 다른 여자를 상담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사이비 같다. 병원도 아니고 카페에서 상담을 해주는 건 사이비가 분명한데, 이렇게 마음을 알아주고 상담해주는 척 하면서 결국 같은 길로 끌어들이는 게 요즘 사이비의 수법이다. 얼굴도 멀쩡하게 생겼는데 이렇게 사람 속여먹는 짓이나 하다니. 당하는 여자는 좀 억눌린 게 있는 것 같고 자기 마음을 이해받고 싶은 생각이 있나 보다. 사이비 상담자는 엄마에게 받지 못한 사랑이 있다고 하며 그걸 다른 것과 연결시키고 있다. 그러자 상담 받는 사람은 맞는 것 같다고 동의한다.

우리 세상에서 내 마음을 다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내 마음을 이해해주려 한다면 그건 십중팔구 사이비다. 당하는 사람도 바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삶이 외롭고 팍팍하면 저런 달콤한 말에 넘어갈까. 믿어야 할 사람은 부모님의 말이다. 물론 요즘 세상에는 믿지 못할 부모를 둔 사람도 많은 것 같지만.. 결국 내가 단단히 서야 저런 허툰 수작에 당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은 부딪쳐보고 세상을 깨우쳐야 하고, 그러면서 결국 단단하게 설 수 있다. 모르면 당할 뿐이다.

나는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을 것이다. 두 여자의 소리가 듣기 싫어서 이어폰을 꼈다. 지나가는 내가 도움을 준다 해도 받지 않을 것이고 자기 삶 자기가 꼬아 가겠다는데 그런 것에 끼어들었다가 괜히 엮인다. 각박한 세상이지만 나는 이런 세상이 더 편리하다. 정이랍시고 너무 많이 서로에게 개입하는 게 더 부담스럽다. 아무래도 나는 확실히 서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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