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
"한 달은 누구나 한다" 지난 일요일 <건율원> 인문학 라이브 강의에서 들은 말이 떠오른다.
새벽독서가 한 달이 가까워지며 나름 뿌듯해하고 있던 나였는데...
네??? 한 달은 누구나 한다고요?
내가 망설일 때, 고민할 때, 느슨해지려고 할 때, 그때마다 채찍질하는 한마디의 말과 한 문장의 힘은 크다.
오늘은 새벽독서 31일 차, 정신 바짝 차리고 책상에 앉았는데 31일 차 연재 글을 쓸 수 없었다.
<독서처방과 밑줄프로젝트> 브런치북이 어느새 30회 발행이 되면서 연재가 끝난 것이다.
아, 맞다. 브런치북 한 권에 연재가 30회까지 밖에 안된다고 했지...
처음이다. 이렇게 30회를 채운게.
첫 경험이다. 짜릿하다!!
새롭게 <독서처방과 밑줄 프로젝트 2> 연재북을 만든다.
사진첩에서 내가 그려뒀던 그림을 표지로 설정하고 소개글도 다시 쓴다.
봄이니까 엄청 화려한 그림으로 브런치북 표지를 만들었다.
요즘 그림 그리면서 자꾸 브런치북 표지로 쓸 생각을 한다.
덕분에 그림 권태기를 벗어나고 나름의 내 그림체를 찾아가고 있다.
붓질이 거칠어도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게 내가 추구하는 그림이다.
매달 한 권의 브런치북이 발행되니까 1년에 12개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내가 그린 그림으로 브런치북 표지 만들기. 또 하나의 재미이자 나만의 프로젝트다.
"내 것이라고 침을 뱉어라!". 지인 작가의 말처럼 나도 퉤퉤 침을 뱉어 볼까?
(브런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 선두로 발을 뻗는 것, 예를 들어 매일 발행 시간을 고정해서 이 시간은 내 글을 발행하는 시간! 이렇게 공표하는 것처럼)
"새벽독서와 매일글쓰기"는 늘그래 거다~~~~
근데 차마 당돌하게 침은 못 뱉을 것 같고 달콤한 아이스크림 뺏기기 싫어 침 바르듯 <새벽독서>, <매일 쓰기>에 살살 침을 발라본다.
역시 새벽독서와 글쓰기는 달구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_숲 속의 소리들>을 이어서 읽는다.
소로는 집안일이 유쾌한 소일거리라고 한다. 나랑은 정반대다.
나에게는 엄청 중노동이고 하기 싫은 일인데.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더러워진 마루를 청소하기 위해 오두막 밖으로 가재도구를 모두 집 밖의 풀밭으로 끌어내 청소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아침부터 부지런히 청소를 하면 소로의 오두막은 아침 햇살로 충분히 말라서 다시 안에 들어가 명상을 계속할 수 있다고 한다.
주변이 정갈하면 글쓰기 집중도 잘 될 텐데 나의 책상은 왜 이렇게 복잡한가.
전업 작가도 이렇게 책상에 책을 잔뜩 쌓아두진 않을 듯하다.
분명 한 권 읽고 올려두고 다른 책을 읽었던 것 같은데 왜 한 달 동안 책 탑을 이렇게 높이 쌓았나?
병렬독서라서 완독 한 책은 한 권도 없음 주의.
"살림살이가 모두 풀밭에 나와서 마치 집시의 봇짐처럼 작은 무더기를 이루고, 책과 펜과 잉크가 그대로 놓여 있는 세발탁자가 소나무와 호두나무들 사이에 서 있는 광경은 보기에도 유쾌했다. (중략) 이 물건들 위에 햇빛이 빛나는 광경은 볼만했고, 자유로운 바람이 그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도 들을 만했다. 아무리 익숙한 물건도 집 밖에서 보면 안에 있을 때보다 훨씬 흥미로워 보인다. ". (174면)
작년 가을에 여동생 따라 글림핑장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나야 워낙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이라 캠핑이라는 것에 흥미가 없지만 막내아들의 경험을 위해 기꺼이 시장을 보고 짐을 싸는 수고를 했다.
전원생활을 꿈꾸지만 짐을 바리바리 싸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자고 또 짐을 바리바리 싸서 집으로 돌아오는 건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도 좋았다. 모닥불도 좋고 밤하늘도 좋고, 자연의 푸르름도 좋았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다음날 오전 시간에 돗자리를 펼치고 나무 그늘에서 여동생과 배 깔고 책을 읽었던 경험이다.
책이 빛났다.
흰 종이와 검은 텍스트 위에 나뭇잎 사이로 뚫고 들어온 햇살이 일렁일렁 물결쳤다.
너무 아름다워서 넋이 나갔다.
소로가 말하는 그 느낌, 물건들도 밖으로 나온 것에 기뻐하는 듯한 느낌, 안으로 다시 끌려 들어가기 싫어하는 듯한 느낌, 그것들을 한없이 바라보고 싶은 나의 평온하고 노곤한 느낌.
그런 느낌을 받은 지 너무 오래되었다.
오늘은 오전 아르바이트가 없어서 글쓰기 숙제를 마무리하고 오후 출근만 하면 된다.
책이랑 펜 들고 꽃이 피기 시작한 우리 동네를 오랜만에 산책해 볼까?
햇살 좋은 곳에서 나만의 밑줄을 그으며 봄을 오롯이 느껴보고 싶다.
어쩌지... 벌써 집시의 봇짐을 맨 내 마음이 운동화를 신었다.
<100만 번 산 고양이>, <아저씨 우산>을 쓴 그림책 작가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를 읽는다.
당당하고 시크하고 가끔은 제멋대로 사는 것 같은 이 할머니가 좋다.
하지만 아쉽게 2010년에 72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를 어제에 이어 읽는다.
총 여덟장인 한 편의 에세이 글인데 왜 이틀에 나눠 읽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나는 어제 고백했듯이 이 에세이를 교과서처럼 읽고 있어서 그렇다.
"에세이 교과서"
나도 나름 MBTI의 성격유형검사에서 "감성"보다 "이성"이 좀 더 높게 나오는 일명 "T"인 사람이다.
분명 냉소적이고 이성적이고 염세주의적인 사고가 있지만 그녀처럼 솔직하게 글로는 못쓴다.
왜냐... 나는 나의 다정하고 감성적인 면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에 분명히 있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냉소적인 마음들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는 어렵다.
소심해서다.
일기에서 조차 남 욕을 못하는 사람.
착한 게 아니고 걱정 많은 걱정인형 같은 사람이라서 그렇다.
그런 내가 그녀처럼 당당하게 "나는 그런 사람이다"라고 솔직해질 수 있을까?
사실 브런치스토리 작가신청할 때는 나의 치부와 과거를 정말 솔직하게 썼는데 그게 통해서 첫 번에 작가승인이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지금 발행하는 글들은 그때의 내 소개와 조금 다른 결이다.
한 번 정제해서 글을 쓴다.
쑥스럽고 창피하고 이래도 될까 싶어서 내 안에서 나오는 단어하나 문장하나에 겁을 낸다.
극소심한 혈액형 A인 나는 소문자 a의 마음으로 글을 쓴다.
그래서 김미옥 작가의 <미오기전>이나 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 같은 글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해방감을 느낀다.
나도 마음이 더 단단해지면 이런 솔직함이 나올까?
사노 요코는 이 글에서 “치매”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푼다.
먹기 싫은 양배추를 다른 야채와 섞어 먹는다.
그 이야기 속에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인생에 싫고 힘든 게 있을 때 외면하지 말고 그 안에 다른 여러 채소와 과일을 섞어 먹듯, 그 힘듦을 좋아하는 것들로 중화시켜서 꼭꼭 씹어 삼켜보라고.
귤착즙기 에피소드는 그녀가 정말 “치매”일까라는 걱정과 함께 늘 우리 주위에 있지만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우리와 나의 무심함을 들춰낸다.
그녀는 깜빡해서 잃어버린 장갑도 새로 사야 하고 이미 있는 귤착즙기를 깜빡 잊고 친구한테 또 선물 받아 울며 전화를 한다. 그녀 말대로 치매는 돈이 든다.
에세이 한 편에서 여러 에피소드를 끌어와 “치매”에 대한 이야기를 냉소적이지만 재미있게 풀어간다. 하지만 그 냉소적 위트 속에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진심을 담아낸다.
그래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 같다.
나 역시 이 책을 매우 사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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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참고> 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 마음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