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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종 Jan 22. 2024

부자가 되고 싶어요 5

원주민의 편견

 할아버지는 대전에서 작은 사업을 하셨다. 제주도가 본가셨지만 고향을 떠나 사업을 하다보니 대전까지 오셨다고 한다. 아버지 또한 같은 계열의 사업을 하셨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의 모습은 늘 바쁘셨다. 사업수완이 좋으셔서 사업은 커졌고 집을 넓혀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부동산 자체에 큰 관심이 없으셨다. 이사갈 무렵은 94년. 당시 서울 및 수도권은 88올림픽과 1기 신도시가 맞물려 수많은 신도시와 아파트들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1기 신도시는 분당, 평촌, 산본, 일산, 중동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대전의 둔산동도 그에 해당한다.대전에도 개발붐이 불었다. 너도나도 어느 아파트에 청약을 넣어야할지 고민했다. 법원, 검찰, 시청, 공원, 학교 등 좋은 인프라를 갖추고 그에 새 아파트까지 들어선다고 하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파트 가격은 그렇지 못했다. 한 번에 많은 물량이 쏟아지자 아파트 가격은 고전할 수 밖에 없었다. 둔산동 크로바 아파트를 고민하던 아버지는 사업체와 최대한 가까이 살기 위해 둔산동이 아닌 월평동에 상가주택을 건축하셨다. 아버지는 아파트가 답답하다고 하셨다. 학원인프라 또한 필요없다고 하셨다. 공부는 늘 혼자하는 거라는 아버지의 지조(?)가 있었기 때문이다.(아버지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나는 둔산동과 멀어졌고 교육과는 거리를 둔 곳에서 학창생활을 시작했다.


 대전이요? 집값 안올라요


 2018년 당시 대전의 집값은 1차 상승이 있었다. 2016년에 집을 매수했던 투자자들이 수익을 실현하고 나오고있던 시기였다. 많은 내적 갈등을 했다. 대전은 아직 가능성이 많은 곳이었지만 괜히 내가 들어가면 올라갔던 집값이 떨어질까 무서웠다. 그리고 나에게는 가슴 속 깊이 새겨진 편견이 있었다. 대전은 집값이 안 오른다는 사실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그 전까지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90년대까지 둔산 신도시의 개발이 마무리되면서 세종 신도시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개발되는 곳은 세종시만이 아니었다. 세종시의 관문이 되는 반석지구, 도안지구의 개발은 대전 사람들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주변 친구들 중에도 신도시를 찾아 이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투자할 수 있는 아파트는 많지 않았다. 둔산의 구축이 가격대가 맞았다. 소위 말하는 대장아파트는 넘볼 수 없었지만 외곽지의 소형들은 기회를 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노릴 수 있다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분위기는 상승장이었고 매도자들의 콧대는 높았다. 부동산을 방문하면 사장님들의 반응은 반반으로 갈렸다. 하지만 여전히 회의적인 분들이 더 많았다.


"대전은 집값 안올라요. 헛고생말고 가세요."

"지금 투자자들이 먹고 나가는 중이에요. 신중하게 판단하세요."


 이런 조언들이 대부분이었다.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부동산에 맞는 조건을 던져놓았다. 마음 속으로 조마조마했지만 그런 심경도 사치였다.


 그렇게 여주의 한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리고 낯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조건에 맞는 집이 나왔는데 계약하겠냐고 물어보는 전화였다.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상황을 물었다. 집상태, 현재 전세계약자의 계약기간, 잔금기간 등 나에게 무리가 되는 부분은 없었다. 곧바로 대전으로 향했다. 단지와 인프라를 볼 필요는 없었다. 나의 학창시절은 보낸 곳이니 머릿 속에 지도가 그려져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용기인지 아니면 만용인지 내 입에서 한 마디 튀어나왔다.


"계약할게요. 계좌주세요"


 내 뱉은 말을 담을 수 없었다. 내 한 마디에 부동산 사장님은 분주하게 움직이셨고 돌이키기에 계좌는 너무 빨리 나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매도자도 투자자였다. 실거주가 아니었기 때문에 계약은 일사천리였다. 크게 하자가 있던 집도 아니었고 부동산 사장님도 꽤나 경험이 많은 분이었다. 잡음하나 없이 깔끔하게 계약이 끝났다. 연봉의 10배가 되는 집을 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게 맞나 싶었지만 이미 저지른 일. 어쩔 수 없었고 또 다른 일을 준비하는 것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 그렇게 마치고 가던 날 다른 동네를 가서 어떤 물건이 좋은지 살펴보고 돌아갔다.


 사람들은 자기 고향을 낮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굉장히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전 사람들이 그렇게 집에 관심을 많이 가질지도 집값에 그렇게 폭등할 줄도 몰랐다. 집값이 올라갈 수록 나의 관심도 올라갔다. 다른 지역도 궁금했고 임장가는 횟수는 더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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