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수용동
교도관으로 재직하다보면 뉴스에서 봤던 유명인(?)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처음 입직했을 당시 근무지는 서울구치소였다. 당시 최순실 사건으로 떠들썩하던 때였다. 관련자들을 직접보기도 하고 짧게나마 관리도 했었다. 소위 말하는 범털들이었다. 그런 큰 사건으로 들어오게 된 수용자들은 교도소내에서도 집중관리의 대상이 된다. 물론 서울구치소에서는 일상이었지만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CCTV로 24시간을 집중관리하고 보안과 뿐 아니라 구치소장까지 신경을 쓴다. 일선 직원 입장에서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범털들뿐 아니라 유명 연예인 그리고 관련자, 정치인, 각종 장관과 국회의원들 심지어 내가 다녔던 대학교 교수님도 계셨다. 일부러 모른척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말을 걸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오히려 피해다녔다. 지인을 만나는 경우는 나 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족 직원이 들어와 이슈가 되기도 했고 고향 친구들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곳에서 배운 게 하나 있다. 나는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교도소이다.
대부분의 수용자들은 평범하게 생활한다. 동네에서 지나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 나름의 질서가 있고 규칙이 있다. 물론 항상 지켜지지 않지만 크게 보자면 그냥 평범한 사회와 다를바 없다.
'가끔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말끔한 무기수가 있었다. 무기수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린 나이. 호감형 얼굴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수용자들 사이에서도 리더십이 있어 모범적으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항상 밝게 인사했으며 직원들에게도 깎듯했다. 언제나 "부장님, 부장님!"하며 친근하게 대했다. 하지만 죄목은 친근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무기수의 죄목은 '살인'이다. 반대로 살인을 했다고 무기수가 되지는 않는다. 죄질과 살인 방법 등 다양한 항목을 고려해 무기수라는 형량이 확정된다. 사건 내용과 무기수를 보면서 매칭이 되지 않았다. 잔혹한 방법 그리고 의도적 살인, 말끔한 동네청년.
교도관 생활을 하려면 반 사이코패스가 되어야하는걸까. 한 명 한 명에게 감정이입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수용자를 관리한다. 적게는 몇 명, 많으면 몇 백명 단위는 수용자를 관리하다보면 그런 감정들은 홀연히 사라진다. 눈 앞에 보이는 현상과 상황만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대부분의 교도관들은 알고 있다. 언제터질지 모르는 뇌관들이라는 사실을. 사건 내용과 죄목 그리고 수용자 기록을 보면 대강의 성격과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머피의 법칙처럼 뇌관들이 한 가지 경우에 모일 때 사건이 터진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뇌의 한 구석, 가석방을 받기 위해 모범적인 척하는 무기수일 수 있다는 가정은 늘 존재했다.
대놓고 막장으로 사는 사형수도 존재한다. 그들의 손과 발에는 늘 보호장비(수갑)가 채워져있다. 더이상 희망이 없기에 온갖 난동과 못된 짓을 한다. 독방에서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던지는 것은 예사, 직원폭행도 서슴지 않는다. 다행히(?) 내가 담당하는 수용동에 그런 사형수는 없었지만 복도에서 마주하기라도 전혀 달갑지 않게 느껴진다.
평화로운 수용동은 오늘도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는 평화이다. 사건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니까.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