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서 멈출 수는 없다
또 다시 수험생
나는 소위 말하는 'P'형 인간이다. 치밀하게 계획을 짜서 진행하기보다 내게 맞고 가야하는 길이라면 1, 2, 3번 리스크만 검토하고 진행한다. 그 이외의 문제는 가면서 해결하자는 주의다. 지금 교도관이라는 환경, 그대로 정년까지 지낼때 갖게되는 장점도 있었지만 단점을 고려할 때 너무 오래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수용자를 통해 얻는 보람 그리고 상대적으로 단순한 업무들의 반복도 있지만 그러기에 교대근무로 망가지는 건강, 무엇보다 안일한 환경 속에서 도태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견디기 어려웠다. 갈팡질팡하던 마음을 잡고 공무원 시험을 다시 보기로 마음 먹었다.
원래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고등학생 시절 공부량이 많았지만 내가 원하는 대학교는 가지 못했다. 소위 말하는 인서울 학교였지만 교정직 공무원은 국가직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커트라인을 형성하고 있어 쉽게 합격했지만 지방직으로 이직을 생각하자 또 다른 벽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생각했던 직렬이 '사서직'이었다. 소수직렬이기 때문에 합격점수가 매우 들쭉날쭉했다. 경기도의 경우는 특히 그러했다. 보통 시마다 1, 2명정도만 뽑기때문에 도박에 가까운 모험이었다. 하지만 그 한, 두명안에 뽑히면 된다고 생각했다. 2015년 합격을 한 이후로 한쪽 구석에 두었던 수험서를 다시 펼쳤다. 버리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규정이나 바뀐 사항이 많았다. 새로 교제를 구입해야 했다. 한가지 위안거리는 수험지식들이 잔상처럼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따로 강의를 들을 필요없이 책으로만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할 곳이 없다
수험생 직장인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교도소 출근시간은 8시였다. 출퇴근 시간만 20분은 걸렸다. 아침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고 시간 단위를 쪼개야했다. 6시전에 일어나 영어 하프모의 고사를 풀고 간단한 국어 공부를 했다. 1시간 남짓한 시간이 지났고 허겁지겁 출근을 하기 일쑤였다. 아침 8시에 출근을 하기 전 배치계장님의 교육 및 공지사항을 전달받고 근무지로 투입되었다. 인원점검 및 그날 이슈를 체크하고 업무가 시작되었다. 교정직 유니폼 안쪽에는 늘 영어단어장과 틈틈이 정리한 요약집이 있었다. 행운이었을까. 단독으로 움직이는 근무가 많아 공부할 시간들이 중간중간 존재했다. 소위 말하는 '물차'를 배달할 때도 수용자의 뒤에서 공부를 했다.(계호 근무의 원칙상 직원은 늘 수용자의 뒤에 있어야 한다). 배식근무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10g의 밥양으로 늘 싸움이 잦은 곳이었지만 공부할 시간은 늘 있었다.
문제는 교도소가 아니라 밖이었다.
갑작스럽게 코로나가 창궐했다. 24시간 이용가능했던 독서실은 시간이 단축되거나 문을 닫았다. 공공도서관도 단축근무를 하거나 열람실 자체를 폐쇄하는 곳이 많았다. 내가 살았던 여주는 독서실이 더욱 부족했다. 정기권을 등록하기 위해서 대기번호도 존재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공부를 시도해봤지만 태생적 의지박약형 인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뿐이었다. 업친데 덮친격으로 공공도서관에서 직장 선배를 마주했다. 당시 승진시험을 위해 많은 선배들이 공공도서관에서 공부를 했지만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는 이직 준비를 광고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이직 준비한다는 소문이 나돌아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문제아로 낙인찍힐 뿐이었다. 그런 생활을 하던 중 결정적 사건이 터진다
교도관은 밤낮도 없을 뿐더러 주말도 불분명하다. 어느 토요일 출근을 했다. 그 날 근무는 '운동근무'였다. 단순하게 수용자 운동을 시켜주는 업무이다. 운동을 원하는 수용자를 확인하고 방별로 돌아가면서 운동을 시키면 그만이다. 좁은 운동장에서 수용자들은 각자의 운동을 한다. 누구는 달리기를 하고 누구는 산책을 그리고 누구는 근력운동을 한다. 자유로우면서 사고가 없이 계호하는 것이 교도관의 임무이다.
당시 비리로 복역중이었던 광역수사대 출신 수용자가 있었다. 광역수사대답게 다부진 몸과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평소에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날도 여느날과 다름없이 운동장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혈기어린 그리고 나이도 어린 수용자와 부딪히고 말았다. 이럴 경우 서로 사과하고 넘어가기 마련이지만 혈기어린 수용자는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기분나쁘게 한마디 뱉었다.
"눈 똑바로 뜨고 다니세요"
광수대 출신 수용자는 처음에 의연하게 대처했다.
"네 죄송합니다."
혈기어린 수용자는 하면 안되는 말을 다시 날렸다.
"죄송하다면 다예요?"
문제는 거기부터였다. 서로 멱살을 잡기 시작하면서 소동이 벌어졌다. 나도 황급하게 말리러 갔다. 주변 수용자들이 말렸지만 광수대 출신 수용자의 힘은 황소같았다. 나도 같이 말려보았지만 이 둘의 눈에는 이미 봬는게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TRS(무전기)로 상황을 전파하고 기동대에 도움을 요청해야하지만 자만했다. 내가 가면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둘의 눈에 나같은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서로 뒤엉켜있는 상황에서 나도 몸으로 뜯어말렸다. 그러던 중 광수대 출신 수용자가 주먹을 휘둘렀다.
퍽
둘 사이에 껴있던 나에게 주먹이 날아왔다. 정통으로 맞아버렸다. 일동 얼음이 되었다. 설마 내가 맞을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직원 폭행을 사건사고 교육을 통해서만 들었지 내가 당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용자들끼리의 싸움은 끝나있었고 나를 때렸던 수용자는 연신 나에게 사과했다. 속으로 화도 났지만 자연스럽게 상황은 끝나있었다. 나만 참으면 끝나는 문제였다. 다행히 나도 크게 다치지 않았고 얼굴만 얼얼했다. 그날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차라리 잘되었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그렇게 더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분을 삭이면서 말이다.
출처: 슬기로운 감빵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