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츠월드, 돌담 너머의 영국 시간

버튼온더워터에서 바이버리까지

러니미드를 떠나 템스 강 서쪽으로 향하니, 잔잔한 구릉과 황금빛 석조 집들이 이어졌다. 마치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옛 영국 속으로 들어온 듯, 길을 걷는 내내 과거 속에 머무는 기분이었다. 그곳이 바로 코츠월드(Cotswolds)였다.

브로드웨이(Broadway)

18세기 산업혁명 이후에도 이곳은 변화의 중심에서 비껴 있었다. 그 덕분에 코츠월드 스톤(Cotswold stone)으로 지어진 황금빛 석조 집들이 중세의 모습 그대로 남아, 마을은 오래전 시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캐슬 쿰(Castle Combe), 코츠월드는 Gloucestershire, Oxfordshire, Wiltshire, Worcestershire, Warwickshire 다섯주

다섯 개 주로 이어진 구릉과 돌담 마을은 1972년 특별자연미관(Area of Outstanding Natural Beauty)으로 지정되었다. 영국인들이 이곳을 오래도록 ‘영국의 마음(Heart of England)’이라 불러온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엽서 속 풍경이 연속해서 펼쳐졌다.

치핑캠든(Chipping Campden)

I dearly love a walk.
I think it is the greatest refreshment.
나는 걷는 걸 무척 좋아해요. 가장 큰 위안이지요.
- 제인 오스틴, <Pride and Prejudice>

소박한 전원 마을의 일상을 섬세하게 그린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1817) 역시 걷기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I am very fond of walking(나는 걷기를 무척 좋아한다)”라고 적기도 했다. 그녀에게 걷기는 이야기가 싹트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오만과 편견> 은 허트퍼드셔(Hertfordshire)의 시골 마을과 더비셔(Derbyshire)의 대저택을 무대로 펼쳐지지만, 그 속에는 영국 전원 지역 특유의 언덕과 목초지, 돌담 풍경이 섬세하게 담겨 있어 코츠월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코츠월드의 마을을 거닐 때마다 <오만과 편견> 속 엘리자베스 베넷이 지금도 골목 어딘가에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나 역시 그녀처럼 오래된 시간 속을 하루 종일 걸으며, 그 길 위에서 나의 이야기가 피어나기를 바랐다.

Bourton-on-the-water

양모의 왕국

코츠월드(Cotswolds)의 이름은 고대 영어 cot(양우리)와 wold(구릉)에서 비롯되었는데, 말 그대로 오랫동안 ‘양이 풀을 뜯는 언덕’이었다.

England was built on the back of sheep.
영국은 양의 등 위에 세워졌다.

중세와 근세 초기에 영국은 양모(wool) 수출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특히 코츠월드에서 길러진 양모는 유럽 전역에서 최고급으로 인정받았다. 지금도 언덕마다 풀을 뜯는 양 떼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전원의 마을들

버튼온더워터(Bourton-on-the-Water)

버튼온더워터에서 이틀을 묵었다. 창밖으로는 언덕과 양 떼가 어우러진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숙소를 나서면 얕고 잔잔한 윈드러시 강(River Windrush) 위로 여섯 개의 낮은 돌다리가 이어진다. 그 모습에 잠시 베네치아의 운하가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이곳은 오래전부터 ‘영국의 베니스(Venice of England)’라 불려왔다. 강가 티룸에서 풍겨 나오는 차향이 마을을 은은하게 채웠다.

버튼온더워터(Bourton-on-the-Wa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