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마켓, 하이라인, 그리고 22번가의 밤
첼시의 가을
맨해튼 서쪽, 허드슨강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자리한 첼시(Chelsea)는 10월이면 자연스레 가을 축제의 중심이 된다. 오래된 브라운스톤 주택과 현대적인 갤러리, 공공미술이 공존하고 거리마다 카페와 서점, 공방이 이어진다.
그 중심에는 첼시마켓(Chelsea Market) 이 있다. 1890년대 비스킷 공장이었던 붉은 벽돌 건물이 지금은 뉴욕을 대표하는 푸드홀과 상점가로 바뀌었다. 천장에는 옛 공장의 철제 배관과 조명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 자체로 공간의 매력이 된다. 공장 건물의 흔적이 공간의 개성으로 남았다.
첼시마켓의 핼러윈(할로윈)
10월의 첼시마켓은 언제나 활기차다. 통로에는 거미줄과 호박이 걸리고, 매장 입구마다 해골 모형과 조명이 달린다.
핼러윈 당일에는 ‘트릭 오어 트리트(Trick or Treat)’ 행사가 열린다. 아이들은 코스튬을 입고 상점 사이를 오가며 인사를 건넨다. 마켓 곳곳의 상점들이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며, 첼시마켓 전체가 가족 나들이 장소로 변한다.
하이라인에서 바라본 도시
첼시마켓 옆으로 나가면 도시 위의 공원 하이라인(High Line) 이 이어진다. 옛 고가철도를 개조해 만든 2.3km 길이의 산책로로, 첼시에서 허드슨야드까지 연결된다.
붉은 벽돌 건물과 유리 빌딩이 나란히 서 있고, 가을이면 나무마다 붉은빛 잎이 물든다. 벤치와 조각 작품 사이로 가을빛이 스며들고, 사람들은 잠시 걸음을 멈춰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공원 끝으로 갈수록 허드슨강이 보인다. 맑은 날이면 뉴저지의 건물과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 붉은 단풍 사이로 흐르는 강바람이 함께 느껴진다.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 속에서도 이곳에서는 시간이 잠시 느려진다.
첼시 22번가, 함께 웃는 핼러윈의 밤
저녁이 되면 첼시의 분위기는 한층 따뜻해진다. 22번가 거리에는 아이와 부모, 이웃이 함께 어우러진 작은 핼러윈 축제가 열린다. 붉은 벽돌 브라운스톤 현관마다 거미줄이 걸리고, 깎은 호박 속의 초가 벽돌 벽을 비춘다. 하얀 천으로 감싼 유령 인형이 그 사이에 서 있다.
현관 앞 계단에는 주민이 사탕과 초콜릿 상자를 들고 앉아, 아이들이 다가오면 웃으며 사탕을 건넨다. 아이들의 “Trick or Treat!” 외침이 골목을 가득 채운다.
루미와 함께한 아이들
올해(2025년) 미국 전역의 핼러윈 트렌드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케데헌)의 주인공 루미(Rumi)가 장식했다. 보라색 머리와 형광 의상, 마이크를 든 모습이 상징적인 캐릭터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만든 작품으로, 세 명의 K-팝 아이돌이 무대 밖에서는 악마를 사냥한다는 설정이다. 한국 도깨비 전설과 팝 스타일이 결합된 독특한 상상력으로 화제가 되었다. 공개 이후 미국 10대들 사이에서 ‘루미 댄스 챌린지’가 유행하며 핼러윈 대표 코스튬으로 떠올랐다.
첼시 거리에서도 루미의 인기를 쉽게 볼 수 있었다. 한 집 벽에는 포스터가 붙고, 현관에는 보라색 가발을 쓴 해골 모형이 무대처럼 꾸며졌다. 아이들 중에는 머리를 보라색으로 염색하거나 반짝이는 장식을 단 아이들이 많았다. 친구들과 팀을 맞춰 입은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보라색 가발을 쓴 아이가 지나가자 주민들이 환호했다. 루미 코스튬을 입은 아이. 올해 가장 인기 있었던 핼러윈 캐릭터이다. 호박 모자를 눌러쓴 아이에게는 웃음과 박수가 이어졌다.
“Trick or Treat”, 나눔의 인사로 이어지다
핼러윈(Halloween)은 본래 고대 켈트족의 ‘사윈(Samhain)’ 축제에서 비롯됐다. 겨울의 시작과 함께 죽은 이의 영혼을 달래고 악령을 쫓던 의식이었다. 이 전통은 세월이 흐르며 이웃과 나눔을 나누는 축제로 변했다.
“Trick or Treat”의 외침은 중세 유럽의 ‘소울링(Souling)’ 풍습에서 유래했다.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고 대신 빵을 나누던 행위가 오늘날의 사탕 나눔으로 이어진 것이다. 밤이 깊어지자 집집마다 조명을 더하고, 아이들은 사탕 바구니를 품에 안은 채 집으로 향한다. 그렇게, 따뜻한 뉴욕의 가을이 첼시의 거리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