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응원을 보냅니다

SNS의 역설

by 나디아

나는 sns를 하지 않지만

(아 블로그도 sns라면 쩝. sns의 필요 이상의 용이한 접근성. 알고리즘에 놀라 식겁하여 뛰쳐? 나온 적이 많다. 그 사이드 효과가 저도 모르게 멀고 깊게 파도칠 거라는 걸 알기에 내 사는 방식과 맞지 않는다라고 구구절절 말할 필요도 없는데 참.)

인스타그램 계정은 가지고 있다. 덕질 중인 스포츠 선수 정보에 너무 목마르다는 이유로 매일 들여다보며 개죽이 표정을 짓는 이 이율배반적 모습이라니. 그로 인해 추억이 소환되고 울고 웃는 감정의 깊은 소용돌이를 겪고(?) 또 누리고 있다니. sns의 역설



애초에 빠순이 기질을 타고난 것이다.

나란 사람은 무언가에 빠지거나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간 무난했던 캐릭터를 확 뒤엎어 버리니 다중캐릭터야 뭐야.

고2 학창 시절, 낯설고 어수선했던 신학기, 영어시간

안경을 쓴 마른 체형의 남자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섰다. 수업은 아주 고요(?) 하게 진행하셨고 어느 날은 기타를 가지고 들어오시더니 수업이 끝날 무렵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셨다.

낮고 쓸쓸한 김광석 노래가 참 잘 어울렸던 선생님, 바로 나가 김광석 음반을 사고 노래에 젖고 그날 이후 난 선생님에게 빠져도 너무 빠졌다. 매일매일 편지를 써서 이른 아침 교무실 책상에 올려놓고(부끄러워서 늘 익명으로 썼다) 일기장엔 빼곡히 선생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좀 더 묘사하자면 선생님은 그냥 속세랑은 거리가 먼 시인 같았고 어린 왕자 같았고 시를 노래하는 무명가수 같았다.

수업 시간에 십 대 여고생의 캐주얼한 코드를 확 휘어잡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1학년 담임이었던 선생님, 그 반은 중앙현관 청소 담당이었다.

우리 교실은 5층. 우리 반은 매달 청소구역 당번을 돌렸는데 교실 바닥, 복도, 창문 닦기 등등

나는 청소시간이면 창가에 올라 중앙현관에 나와 청소지도 중이던 선생님을 발견하는 게 낙이었다. 그러므로 난 계속 창문 닦기 당번 이어야 했던 것.

그래서 나만이 창문 청소를 빤짝이게 아주 잘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착하고 이쁜 것들 흔쾌히 내 마음을 이해해 주었다.

그러다 난 고3이 되었고 급작스러운 선생님의 전근 소식을 들었다.

참 웃기지 사랑을 이어온 연인도 아니고 나의 사랑은 일방적이었고 내가 선생님과 친분을 나누며 정을 쌓은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그 '사람'을 보는 게 좋았고, 그 아름다운 사람이 내 가까이 존재한다는 것이 좋았고 그래서 매일매일 학교 가는 것이 행복했던 것뿐인데.

이별이란다. 이 단순무지한 열일곱 십대소녀에게 너무한 거 아니야.

갑자기 내 삶이 모두 잿빛으로 변하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울었던지 집에서는 내게 무슨 큰일이 생긴 줄 알고 엄마 아빠는 몇 날 며칠을 전전긍긍하셨다.

후에 어느 학교로 전근을 가셨는지 알아냈고 그 후에도 난 계속 선생님께 편지를 보냈다. 이때쯤 편지 발신란에 내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어느 푸르른 봄날이었다. 1,2교시 공강이었던 화요일 아침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전화가 울렸다. 거기 OO네 집인가요. 네 전데요~

후훗~ 나 OOO 일세

얼........음

선생님이었다.

몇 년 동안 끊임없이 잊지 않고 편지를 보내오는 내가 고맙고 궁금해서 내 모교 그러니까 선생님이 근무했었던 학교에 문의를 해서 졸업앨범에 있는 집 번호를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 시절엔 그랬다. 그래도 되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 그 시절로 기억한다.

선생님은 시인으로 등단을 하셨고 그 시상식(?)을 내게 알리시며 나를 초대하셨다.

모두 오래된 기억이다.

빛바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시간이 흘렀지만 난 또렷이 기억한다. 기타를 메고 교실에 들어서던 선생님의 모습, 눈빛, 노래 부르던 깊고 그윽했던 목소리, 걸음걸이 그 모두를.

기억이란 어찌도 이렇게 선명한 조각으로 남는단말인가.

이토록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앞뒤 없이 십 대의 에너지를 온통 쏟았던 그 시절.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다. 그저 누군가를 향한 무모하리만치 열정적인 마음, 그 사람이 너무 아름답고 멋진 대상이라는 것에 매료되었던 것.

그러나 난 선생님이 초대한 그 자리에 고심 끝에 가지 않았고 성인이 된 나는 더 이상 선생님께 편지 한 줄 쓰지 않고 내 삶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너무 흔한 말 아니던가.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두어야 가장 좋은 것이리라.



그렇게 요즘 더욱 덕질을 위해 sns 어플을 누르는 게 습관이 되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원치도 않았던(?) 누군가의 sns를 들여다보다 멈칫.

'이건 남자 이름으로 흔하지 않은데 말이야.' 피드를 넘겨 넘겨.. 넘겨보니 맞았다.

그 시절 나의 선생님.

이제 추억으로 박제되어 오랜 시간 동안 잊혀있던 선생님.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암 투병 중이셨고 씩씩하게 잘 이겨내고 계셨다.

여전히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셨다. 그 옛날 젊은 시절 동지들과 모여 가끔 술 한 잔을 기울이셨고

제자들은 여전히 찾아오고 있었고, 여전히 시를 쓰고 노래하는 아름다운 한량(?) 같은 모습이셨다.

난 습관처럼 가끔 선생님의 sns를 들여다본다.

오늘도 담담하게 병마를 이겨내고 계시겠지? 조용히 선생님의 안녕을 빌면서.

선생님~ 저예요.라고 댓글 인사 한 줄 달 마음 없지만 아마도 이렇게 오래 선생님을 가끔 지켜보고 마음으로 응원할 것이다.

터질 것 같았던 그 시절 십 대를 지나 나이를 적잖게(?) 먹어보니 그렇더라. 우물 바닥이 드러날 만큼의 사랑과 열정을 모두 아낌없이, 후회 없이 쏟아내었더니, 그러고 나니 놓아지더라.

지금은 그저 그 동화 같은 아름다운 십 대, 그 봄날의 한 페이지로 남겨두게 되더라.

무모하리 만치 당신을 쫓아다니던 한 여자애를 선생님이 기억해 주지 않아도 좋다.

선생님 머리가 히끗해지셨더군요. 그리고 많이 야위셨어요.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 있을 제가 빌겠습니다.




방콕 랑수언로드 어느 카페. 수년 전 고등학교 찐 동창들과 여행 중. 이 친구들이다. 눈물 콧물 쏟으며 선생님을 쫓아다니던 나를 쫓아다녀준 그 시절의 친구들. 함께 늙어가고 있는.

(이렇게 나의 글들은 모두 여행의 어느 순간과 짧지만 강렬하게 연결되어 있구나)





#여고시절

#동창

#영어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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