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구더기와의 만남
대구의 더위는 이미 소문이 난 더위지만 대구교도소의 더위는 정말이지 거의 살인적이다. 당시 나는 미결 사동 독방에 있었는데 누워서 얄 팔을 벌리면 벽이 닿을 정도의 크기니까 짐작이 갈 것이다, 그 크기가.
거기다 방 안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수세식이 아닌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시멘트로 발라져 있고 변이 떨어지는 작은 구멍만 있는 화장실이었는데 구멍을 막지 않으면 냄새가 올라와서 머리가 아파 살 수가 없다. 그래서 각 방마다 하는 임시 처방이 고무장갑에 물을 넣어 부풀린 다음 끝을 잘 묶은 뒤 변이 떨어지는 구멍을 막는 것이었다. 볼 일을 볼 때는 고무장갑을 빼야하고. 고무장갑으로 구멍을 막아도 냄새는 났고 방과 화장실을 분리하는 문이나 다른 장치들은 없었다. 엉덩이 보이는 건 일도 아닌.
그런데 문제는 각 화장실 마다 따로 마련된 정화조를 자주 푸지 않는다는데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사는 방은 사람이 많으니 정화조도 빨리 차서 푸는 횟수가 많지만 독방의 경우 한 사람만 사용하다보니 변이 차는 시간도 더디고 정화조를 푸는 시간도 당연히 늦었다.
어느 날인가 운동을 하고 들어 왔더니 방바닥에 하얀 작은 벌레들이 기어 다녔다. 뭐가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구더기였다. 고무장갑으로 막았어도 콘크리트 갈라진 틈사이로 구더기가 기어 나온 모양이다. 평생 구더기를 본 적도 없었지만 느낌으로 구더기임을 알 수 있었다.
혹시나 싶어 화장실에 가서 막힌 고무장갑을 빼니 구더기들이 바글바글 기어오르고 있었다. 방바닥의 구더기들을 손으로 집어 변기 구멍으로 넣고 올라오는 구더기들을 향해 에프킬라를 뿌렸다. 숨도 못 쉴 정도로 뿌려도 구더기들은 기를 쓰고 올라오고 있었다.
담당 교도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정화조를 한번 퍼 달라고 이야기 했더니 금방 되는 것이 아니라면서 기다려 보란다. 그 날부터 밤에 잠을 못 잤다. 물론 더워서 쉬 잠을 이루지도 못하지만 기어 나오는 구더기 잡느라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처음 발견 했을 때는 기절할 정도로 놀라고, 더럽고, 냄새도 났지만 익숙해지니 더럽지도 징그럽지도 않았고 꼬물거리는 생명력에 놀랄 지경이었다.
하지만 잠든 사이 그것들이 내 몸을 기어 다닐 생각을 하니 도저히 눈 감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마 삼일인가 사일을 뜬 눈으로 보내고 정화조를 펐다. 정화조를 푸고 숫자는 현저하게 줄었지만 여름이 다갈 동안 구더기들은 나와 함께 살았다. 대신 나는 에프킬라 값으로 많은 영치금을 써야 했고 이 방 저 방에서 빌려 쓰기도 했다. 개인이 구매 할 수 있는 양이 있기에 무턱대고 마구잡이로 살 수 있는 상황도 되지 못해 여러 방에서 다른 물건들과 바꿔서 구하기도 했다.
비슷한 일이지만 교도소에서는 갇힌 재소자들보다 더 자유로운 것들이 쥐였다. 재소자들이야 방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나가서도 안 되지만 쥐들은 제 마음대로 다닐 수 있었다. 우리가 방 안에 갇혀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나 하듯 우리가 소리를 지르거나 벽을 두드려도 꼼작도 하지 않는다. 더러는 남은 잔 밥으로 쥐를 사육하는 재소자도 있었다. 쥐뿐만 아니라 잠자리나 여치. 참새와 비둘기 등 온갖 동물들을 잔 밥이나 과자로 키워낸다. 참새는 신기 할 정도로 밥 주는 사람을 기억하고 그 시간에 그 방 창문으로 날아온다.
사진제공 : 다음 이미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