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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강 May 25. 2024

고추 사건

 

제가 응급실에 근무할 때입니다. 어느 여름날 오후에 한 어머니가 5살 정도 된 남자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급하게 뛰어왔습니다. 아이를 침대에 올리고 보니 이건 한마디로 가관이었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다 웃음이 터졌고 아이는 아이대로 아프다고 울고. 
 
 상황이 어떤 상황이었느냐면, 더운 여름이라 아이 엄마가 속옷을 입히지 않고 바지만 입혔나 봅니다. 지퍼를 내리다였는지 올리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퍼에 아이 고추의 표피가 끼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웃게 한 것은 엄마의 기술 때문이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바지가 번거로우니 바지를 가위로 잘라 버리고 아이 고추가 끼인 지퍼 부분만 오려 가지고 왔는데. 얼마나 정성스럽게 오렸는지 마치 원을 그린 것처럼 동그랗게 아주아주 동그랗게 오린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웃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아이는 지퍼를 만지지도 못하게 울어댔지만. 제가 자세히 살펴보니 고추가 완전히 끼인 것은 아니고 표피만 끼였는데 엄마가 잡고 빼려고 시도를 했는지 표피가 벗겨지고 피가 나더군요. 이건 아무리 의술이 유능한 의사가 와도 불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딱 3분 만에 해결했습니다. 제 머리가 보통은 아니거든요. 
 
 살펴버니 지퍼가 쇠로 된 것이 아니고 플라스틱으로 된 것이더군요. 어디선가 본 니퍼(nipper)로 지퍼를 누르니 ‘딱’ 하고 부러지면서 아이의 고추는 빠졌지요. 엄마가 빼려고 시도한 부분의 표피는 일부 벗겨서 피가 났지만 일회용 밴드를 붙었더니 딱 맞더군요. 아무튼 아이 엄마는 가면서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갔어요, 진료비 대신. 


  
 그리고 주사실 간호사가 휴가나 병가를 가면 하루나 이틀 정도 근무를 하게 되는데. 엉덩이 주사를 주다 보면 남자 환자 중에 속옷을 입지 않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위생에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또 언젠가부터 내부에 붙이던 속옷 라벨(label)을 입는 사람의 불편을 생각해서 외부에 붙이기 시작했지요.     

 

어느 날 중년 신사분이 주사를 맞으러 오셨는데 그냥 침대에 기대서 살짝만 내리면 된다고 했는데도 기어이 침대에 올라가 속옷을 무릎까지 내리더군요. 한 번도 외부에 붙은 라벨을 본 적이 없었던 저는 기어이 환자에게 한마디 했지요. “환자분 속옷 뒤집어 입으셨네요. 집에 가서 혼나기 전에 바로 입으세요.” 라고. 그 환자 분이 그러시더군요. “선생님은 새로 나온 속옷 아직 안 입으시나 봅니다. 요즘은 다 외부에 라벨을 붙인답니다.” 라고. 괜히 잘난 척하다 창피만 당했지요.      
 

또 정형외과 병동에서 근무할 때입니다. 환자들이 입는 환의라는 것이 예전에는 모두 끈으로 묶는 것인데 앞이 조금 찢어져 있지요. 장 모모라는 장가를 안 간 노총각이었는데, 다리를 다쳐 수술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녔습니다. 하루는 간호사들이 부끄럽다며 얼굴을 붉히고 난리가 났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노팬티인 장 모모 씨가 환자복만 입고 휠체어에 앉았는데 그 터진 부분으로 고추가 살짝살짝 보인 것입니다. 환자는 그것도 모른 채 휠체어를 타고 온 병동을 휘젓고 다니고 있었고. 제가 화장실로 불러서 아주 난리를 쳤지요, 아예 홀딱 벗고 다니라고.      


얼마나 창피했겠습니까. 저 같으면 부끄러워서라도 바로 퇴원 할 텐데, 이 환자 하는 말이 "뭐 그럴 수도 있지요"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저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더 기가 막힌 건 우리 과장님. "야 너는 그거 없느냐. 뭐 그걸 가지고 난리냐.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유구무언, 제가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암튼. 속옷 안 입고 다니는 남자들이 있다는 거, 저는 믿습니다. 그것도 의외로 많다는 것을. 선생님들은 어떠세요?          




사진 : 다음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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