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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빛이 있으라 했고 인간은 그 빛을 멈추게 했다

신비로운 보스-아인슈타인 응측(BEC)

by 누리

모두가 같은 박자에 춤추는 원자들 – BEC 이야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원자들은 마치 사람들이 각자 다른 음악에 맞춰 제멋대로 춤추는 것처럼 움직입니다. 방 안의 공기 분자들은 제각각 속도와 방향으로 날아다니고, 물 속의 분자들도 부딪히며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그런데 만약, 모든 원자가 같은 음악에 맞춰 똑같이 춤추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떨까요? 그것이 바로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체(Bose-Einstein Condensate, BEC) 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우리는 물질을 계속 식히면 언젠가는 꽁꽁 얼어붙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절대영도(–273.15°C)에 가까운 극저온에서는 고전 물리학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세계가 열립니다.


특히 보스 입자(스핀이라는 특성이 정수인 입자) 는 아주 특별한 성질이 있습니다.

이 입자들은 서로 구별되지 않고, 한 상태에 여러 개가 겹쳐질 수 있습니다.


온도를 거의 절대영도까지 내리면, 이 보스 입자들은 하나의 ‘거대한 양자 상태’로 모입니다.

즉, 모든 입자가 하나의 커다란 파동함수처럼 행동하게 되는 것이죠. 마치 수많은 바이올린이 완벽하게 같은 음정을 내며 동시에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떠올리면 됩니다.


실험실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상태

BEC는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들어내기 위해 과학자들은 레이저 냉각과 증발 냉각 같은 기법을 씁니다. 원자를 빛으로 살살 밀어서 속도를 줄이고, 그다음 에너지가 큰 입자들을 골라내 버리면 남은 입자들의 평균 에너지가 점점 낮아집니다. 그렇게 해서 수십 나노켈빈(nK=0.000000001K) 정도까지 식힌 원자 집단은 마침내 BEC 상태가 됩니다.


0 K는 절대영도로 모든 물질의 분자 운동이 이론적으로 완전히 멈추는 우주의 최저 온도로, 0 K = -273.15 °C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처럼 뭔가 신기하게 빛나는 물체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카메라로 찍어보면 원자들이 뚜렷한 ‘파동 패턴’을 형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두가 하나처럼 움직인다”는 증거입니다.


왜 특별할까?

BEC는 단순히 “아주 차가운 물질”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는 우리가 평소 경험하지 못하는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 빛을 거의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실험실에서는 빛의 속도를 시속 17m까지 줄이고, 아예 정지시킨 적도 있습니다.

• 양자 정보 저장 BEC는 빛의 파동 정보를 그대로 저장했다가 다시 꺼낼 수 있습니다.

• 양자 시뮬레이션 복잡한 양자 물리 문제(예: 초전도, 블랙홀 물리학)를 실험실에서 재현할 수 있습니다.


마치 새로운 물질의 세계

BEC를 보면 마치 “우리가 아는 고체·액체·기체·플라즈마”에 더해 새로운 상태의 물질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상태는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없지만, 과학자들은 이 특수한 상태를 이용해 양자 컴퓨터, 양자 통신, 새로운 센서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결국, BEC는 단순한 과학 실험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물질이 얼마나 근본적으로 다르게 동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창과 같습니다.



우리는 빛을 멈출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은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빛을 멈추는 것은 어떻습니까? 단순한 상상 속의 마법 같지만, 놀랍게도 실험실에서 이미 실현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체(Bose-Einstein Condensate, BEC)’가 있습니다.


절대영도 가까이, 양자의 바다로

BEC는 극저온 상태에서 원자들이 하나의 거대한 양자 상태로 응축되는 현상입니다. 보통 원자들은 각자 다른 에너지와 움직임을 가지고 있지만, 절대영도에 가까운 온도로 식히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모든 원자가 하나의 파동함수로 겹쳐지며 마치 ‘하나의 초거대 원자’처럼 행동합니다. 이 상태는 자연계에서 쉽게 볼 수 없으며, 실험실의 레이저 냉각과 증발 냉각 기술을 통해서만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빛이 멈추는 순간

1999년, 하버드 대학의 레네 하우(Lene Hau) 교수팀은 나트륨 원자의 BEC에서 빛의 속도를 초속 17m(약 60km/h)까지 줄였습니다. 이후 실험에서는 더 나아가 빛을 완전히 멈추고 그 정보를 원자 집단 내부에 저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빛을 ‘막는 것’이 아닙니다. 빛의 파동이 가진 위상과 진폭, 즉 정보 자체를 원자 집단이 흡수하고, 다시 방출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현상은 전기장 유도 투명성(Electromagnetically Induced Transparency, EIT)이라는 양자 광학 기술 덕분입니다. EIT를 이용하면 원래는 불투명한 원자 구름이 특정한 주파수의 빛에 대해 ‘투명’해집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빛은 강한 분산 환경에 들어가 군속도(group velocity)가 거의 0이 됩니다. 결국 빛은 멈춘 것처럼 보이고, 정보는 원자 집단 내부의 스핀 상태로 변환됩니다.


불투명 물질과는 다른, 진짜 ‘멈춤

일반적인 불투명 물질(예: 나무나 금속)에서 빛은 산란되거나 흡수되어 전달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빛의 정보는 소멸합니다. 반면 BEC에서의 ‘빛 정지’는 정보 보존 상태입니다. 원자 집단이 빛의 파동함수를 그대로 기억하고, 나중에 다시 꺼내어 원래 빛으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빛의 기억을 ‘저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양자 컴퓨터와 우주를 향한 가능성

빛을 멈추고 저장하는 기술은 단순한 과학 쇼가 아닙니다. 이 방식은 양자 메모리의 핵심 후보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양자 컴퓨터나 양자 인터넷을 만들기 위해서는 양자 상태(큐빗)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BEC는 이런 목적에 적합한 특성을 제공합니다.

또한 일부 이론은 우주 암흑물질이 BEC 상태의 특수한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을 가능성도 제기합니다. 만약 우주 자체가 일부 영역에서 BEC 상태라면,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하는 ‘빛의 경계’를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신의 손처럼

빛은 인류가 이해하는 물리 세계의 속도 한계였습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빛의 속도를 늦추고, 심지어 멈추게 함으로써 자연의 근본 법칙에 직접 손을 대는 듯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신의 손’이 우주의 가장 빠른 존재를 잡아 멈춘 것처럼 보입니다.


빛을 멈추는 실험은 아직 실험실의 작은 공간에서만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계는 진짜 한계입니까? 그리고 이 과학은 단순히 빛을 멈추는 데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는 빛과 정보, 그리고 우주 자체를 다시 정의할지도 모릅니다.


신은 빛이 있으라 했고 과학자는 그 빛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태초에 신은 “빛이 있으라” 하였고, 우주는 빛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 빛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의 경계를 넘어, 시간과 공간의 척도를 정하는 궁극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빛보다 빠른 것은 없고, 그 누구도 그 빛을 멈출 수 없다고 우리는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그 믿음에 도전했습니다.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체(BEC)라는 극저온의 신비한 상태는 빛을 마침내 붙잡았습니다.

빛은 그 안에서 속도를 잃고, 심지어 완전히 멈추어 섰습니다.

우리는 그 순간, 자연의 근본 질서를 잠시 거스른 듯한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과학자가 빛을 멈췄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적 성공이 아닙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자연의 법칙이 새로운 가능성 앞에서 다시 쓰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빛을 멈춘 과학자의 손은 마치 신의 손끝에 닿으려는 인간의 지적 도전처럼 보입니다.


빛을 멈추는 과학은 아직 실험실이라는 작은 무대에 머물러 있지만, 그 가능성은 상상을 넘어섭니다.

양자 컴퓨터, 양자 통신, 새로운 우주 탐사 기술… 그 모든 것이 빛을 다루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어쩌면 먼 훗날, 인류는 이 기술을 통해 또 다른 ‘빛이 있으라’는 선언을 할지도 모릅니다.


신이 빛을 만들었고, 과학은 그 빛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이는 신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신이 만든 법칙을 이해하고 더 깊이 탐구하는 여정입니다.

그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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