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어진 간호가사 되어가다.
간호학과 3년의 공부, 국가고시를 통해 간호사가 되었다.
간호사가 힘들다고 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나에게는 먼 얘기에 불과했었다. 왜 밥 한 끼 못 먹고 일하는 것일까.
실습하면서 본모습은 그리 바빠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약간 만만하게 보고 병원에 입사하게 되었다.
1순위 OR(수술실)
2순위 병동
3순위 icu(중환자실)
병원의 꽃, 드라마의 단골소재인 수술방에서 일하는 것이 내 1 지망이었다. 실습을 거치면서 오래 고민을 했었다. 나의 적성인 부서는 어디인지.
그러고 생각한 곳이 수술실이었다. 환자와 말을 많이 할 필요 없으며(마취를 하니까) 팀을 이뤄해야 할 일을 하면 되기 때문에 나와는 잘 맞는 부서라고 생각했다. 환자가 자고 있는 게 제일 좋았다. 응급실 실습을 하면서 환자와 보호자 응대를 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 느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보란 듯이 병동에 배정받게 되었다.
처음엔 무덤덤했다. 뭐 병동을 2순위에 썼으니 '그럴만했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서가 혈액암병동이라는 것을 들었을 땐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했더니 '아차'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모든 간호사, 의사가 기피하는 부서. 혈액종양내과.
혈액종양내과. 내 2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는 곳. 그만큼 애정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나는 무너진 나의 인격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람은 극한의 상황일 때 본모습이 드러난다고 했던가....
병동에 인사드리러 간 첫날 내가 들은 첫마디는 "10년 넘게 이곳에 남자는 처음이야!" 그렇다 나는 이 병동의 최초의 남자 간호사였다. 그렇기에 모든 이의 시선은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잘해도 못 해도 입방아에 오르내르기 일쑤였다. 사실 그렇게 개의치는 않아 했다. 내 멘털은 그런 것에 좌지우지되지는 않았다. 내가 잘했으면 뒷얘기가 나오지 않았을 테니. 그러나 남자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내가 간호사와는 맞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참 실수도 많이 했고 보고서도 많이 썼었다. 유난히 꼼꼼하지 못했던 탓에 혼나기도 많이 혼났었다. 그래도 웃으면서 업무를 해왔다. 힘들어 보이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잘못한 거니까 뭐....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 오해하지는 말고 들어요. 여기 계속 다닐 거예요? 여기 계속 다닐 거면 좀 더 꼼꼼히 일할 수 있도록 해요. 나도 잘하는 건 아니지만 좀 심각해요. 그리고 남자라서 다른 동기들에 비해서 덜 혼나는 거 알고 있어요? 다들 좀 불편해하고 있어요"
투약실에서 끌려가 문 닫고 들은 높으신 선배님의 잔소리였다. 혼날만했으니 혼나서 화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뒷 문장은 내 삐뚤어진 심성이 고개를 내미는 계기가 되었다.
'씨발 뭔 개소리야, 내가 여기 오고 싶어서 온 줄 알아? 불편해하면 다른 데로 보내던지!' 실제로 투약실에서 나오면서 한 속마음이었다. 그리고 이게 태움인 건가? 태움에 속하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매일같이 혼나고 그 일이 있은 뒤로 생각했다. 내가 간호사로 살아남기 위해선 내 '일'에 집중해야만 했다. 환자에게 집중하기보다는 일에 집중했다. 주어진 일을 끝내기 위해선 우선은 업무가 먼저였다. 그리고 나는 환자에게 불친절해지기 시작했다.
환자의 요구는 우선순위에서 미루기 시작했다. 내 일이 먼저였다. 그래야 선배한테 혼나지 않을 테니까, 그래야 칼퇴할 테니까. 환자의 한마디는 귀찮은 요구사항으로만 느껴졌고 환자 자리마다 있는 콜벨에 의해 울리는 기계를 부셔서 내 귀에 안 들렸으면 했다. 조금씩 피폐해져 가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인격이 무너져가는 매일매일의 나날이었다.
##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마음이 조급하고 손은 따라오지 못하고 업무는 숙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에 집중하는 것보단 환자에게 집중해야 일이 빨리 끝나고 선배에게 혼나지 않는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환자의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 것이 나에게 더 좋다는 걸 그 당시의 나는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신규 간호사 시절의 내 모습은 정말 불친절 그 자체였다. 담당으로 걸려서는 안 될 그런 간호사말이다. 참 반성 많이 하는 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