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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rene Jun 10. 2024

[가치관과 삶] 창밖의 이야기

<우리 이렇게 삽시다 - 공감과 배려의 삶>

  강변 숲길  © Kyrene






아파트살이의 장점 중 나는 창 밖의 풍경을 첫째로 꼽는다. 

창 밖으로 강물이 흐르고 강변 산책로가 보인다. 강 건너에는 오밀조밀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도 앉아 있다. 산은 그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하늘은 그 위에서 다양한 얼굴로 이 모든 것을 지켜봐 준다.


▲  강 건너 마을 풍경  © Kyrene


창 아래의 모습도 다채롭다. 아담한 단독주택들이 각자의 농지 위에 여유롭게 자리하고 있다. 집집마다 빨간 자동차, 하얀 자동차, 회색 자동차가 마당 한쪽을 차지하고 경운기와 트랙터는 주인장의 든든한 일손이 되고 있다. 텃밭 수준을 넘어선 꽤 넓은 밭은 봄이 오기 전에는 마른 잡초만 듬성듬성 남아있던 볼 품 없는 모습이었다. 


▲  빗속에서 밭갈이하는 농부  © Kyrene


날이 풀리고 밭고랑 사이에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자 농부들의 일손이 바빠진다. 밭을 갈아엎으니 물기를 촉촉이 머금은 속살들이 산뜻하게 드러난다. 이른 아침부터 혼자서 혹은 둘이서 때로는 강아지도 함께 부지런히 농경지를 오가며 밭이랑을 만들고 비료를 뿌리며 작물을 심는다.


강변 산책로에 꽃이 피고 지고 초록이 무성함에 따라 창 밖 아랫동네의 모습도 달라진다. 하룻밤 사이에 밭이랑에 검은 비닐이 덮이고 지지대가 줄지어 세워져 있다. 내내 비어있던 아래쪽 땅은 어느새 물이 가득 채워지고 무언가 빼곡히 파란 싹이 자라고 있다. 그 위쪽 밭에는 초록잎이 무성해져 밭이랑을 덮어버린 지 오래다. 무슨 작물인지 어떤 꽃이 피어날지 어떤 열매가 맺힐지 궁금함을 안고 매일 창 밖을 내다본다.


▲  모내기를 마친 논  © Kyrene


그런데, 한 텃밭에 눈길이 머문다. 주변의 농지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한 채 변화가 없다. 무슨 일일까, 아픈 손가락처럼 아침에 제일 먼저 살펴보게 된다. 주인장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혹시 몸이 불편한가, 별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공연한 걱정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  해 질 녘 강물의 윤슬  © Kyrene


창 밖의 밤 풍경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 건너 마을에 집집마다 불이 밝혀지고 창 아래 주택 창문도 환하게 빛난다. 하루의 일과를 모두 마치고 한 자리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거나 TV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 밤이 깊어지고 밝은 불빛이 사라지면 그제사 까만 밤하늘이 열린다. 침대에 누워 바라보는 하늘에 보름달이 밝게 인사를 한다. 매일매일 조금씩 표정을 달리하는 달님과도 작별을 하면 창 밖 풍경도 깊은 어둠에 잠긴다. 


▲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  © https://www.washingtonpost.com


내가 창틀 크기만큼 바라보는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다. 하지만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이 일상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통곡하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고 삶의 터전을 버린 채 당장 오늘을 살아내기 버거운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을 뉴스 속에서 수시로 만난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인지 쉼 없이 일어나는 전쟁 때문이다. 


정착할 곳 없는 저 사람들에게 그들의 일상을 돌려주고 싶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흘려보내도 좋은 이 시간이 그들에게도 흘러들어 평범한 나날을 보내면 좋겠다.


▲  평온한 들판의 농작물  © Kyrene


강 건너 마을도 아랫동네도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이 내일도 변함없이 빛나는 아침햇살처럼 무탈하고 행복하기를,  그리고 먼 나라의 그들에게도 이 작은 평화가 함께하기를 두 손 모아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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