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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rene Jun 24. 2024

[공감과 배려] 아름다운 뒷모습, 그리운 얼굴들-II

<우리 이렇게 삽시다 - 공감과 배려의 삶>

▲  랑젤리니의 해양 기념물, 천사상  © Kyrene






유럽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북유럽 덴마크는 어둠이 너무 일찍 찾아와 오늘 일정을 서둘러 시작한다. 오덴세(Odense)에 있는 안데르센 하우스(H. C. Andersens House)를 방문하기 위해 오덴세 피스케토브 1 주차장 (Parkering Fisketorvet 1, Odense)으로 향한다. 오덴세의 거리는 고풍스럽고 붉은 벽돌의 건물들도 옛스런 정취를 풍긴다. 이 박물관은 2021년  정원과 지하 전시 공간을 갖춘 현대식 건축물로 재 탄생하였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은 '인어공주', '미운 오리새끼'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 작가이며 1805년 이곳 오덴세에서 태어났다. 


2023년 여행계획을 세우며 구글 맵으로 확인한 이곳은 기차선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이 지나 도착한 오늘의 현장은 많이 다른 모습이다. 사거리에 멈춰서 내비의 안내 대로 좌회전을 기다리는데 지나가는 차량도 없고 교통신호는 물론 별다른 안내표지가 보이지 않는다. 


▲  오덴세 남부의 사거리에서 좌회전 대기 중  © Kyrene


사방을 살핀 후 박물관 근처 주차장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는데, 갑자기 차량 뒤에서 빵 빵 빵! 다급하고 요란한 경적소리에 깜짝 놀란 것이 유럽에서는 상대 차를 향해 경적을 울려대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경적소리에 놀라 좌회전을 해서 몇 미터 지나 차량을 세우고 뒤를 돌아보니, 흰색 SUV가 우리 차 왼쪽에   바짝 대고 정차하며 창문을 내린 후 앞으로 가면 위험하니 빨리 차를 돌려 좌회전하라고 급히 알려준다.


▲  좌회전 후 정차 중   © Kyrene


분명히 차량진입 금지 표지나 별다른 교통통제 시설(철도 건널목 안내, 차단기 등)도 없었으나, 일단 안내대로 차를 돌려 좌회전을 시도한다. 바로 앞으로 자전거 몇 대가 지나가고, 길 가던 검은색 롱코트 차림의 한 남성이 멈춰 서더니 좌회전하라는 ‘수신호’를 보낸다.


▲  ‘수신호’를 하는 고마운 한 남성  © Kyrene


좌회전을 하고 100여 미터 지나서 도로 우측에 차를 세운다. 위험에 처한 낯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위험도 무릅쓰고 경적을 울리며 안내까지 해주는 행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쁜 아침시간에 큰 도움을 준 운전자에게 머리 숙여 감사를 하고 앞서 가는 차를 향해 비상등을 켜 다시 한번 인사를 한 뒤 오덴세를 빠져나온다.


▲  위험에서 우리를 구해준 운전자 차량  © Kyrene


귀국 후 사진을 다시 살펴보니 좌회전으로 진입한 도로는 유럽의 골목길에서 볼 수 있는 중세풍의 돌길은 아니고,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포장도 아닌, 붉은색 타일 또는 벽돌이 온통 깔려있다. 차선이나 보행로 등 별다른 표시는 없으나 지면과 동일한 높이의 평평한 왕복 철로가 보인다. 작년에 지도로 확인했던 철도 공사는 끝나고, 그곳에 있던 차도가 없어진 것이다. 물론 근처 은행건물(아르베이데르네스 랜드뱅크, Arbejdernes Landsbank)에 있는 주차장 진입도 불가능한 상태이다. 만약 그 시간에 기차가 달려왔으면 어찌 되었을까, 우리는 그날 잊을 수 없는 커다란 도움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급변한 도로상황이 이상해서 다시 구글 위성지도와 스트리트 맵으로 확인해 보니, 좌회전했던 1개 블록 정도에 차량 통행용 지하차도가 설치되고 지상은 도심기찻길로 변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도 여전히, 구글 맵의 사거리는 공사가 끝나서 차량이 통행 중이고,  박물관 근처는 공사 중이다. 수 십 년 전 구글 맵의 출시 때부터  혁신성과 정확성에 경탄하며 자주 이용해 왔는데, 지금은 제 때에 지도 업그레이드가 어려운 듯하다. 


▲  구글 맵 스트리트 뷰  © https://www.google.com/maps/2024. 06. 21.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뉘하운(Nyhavn) 주변을 한 바퀴 돌아 티볼리(Tivoli) 정원으로 방향을 돌려 신호대기 중이다. 맨 앞에 서 있는 우리 차에 갑자기 기마경찰이 다가오더니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대기하라는 ‘수신호’를 한다. 내가 승마할 때 타던 말에 비해 훨씬 높은 키의 말을 탄 기골이 장대한 기마경찰이 바로 차 앞에 서있다. 곧바로  줄지어 나타나는 기마대가 또각또각 경쾌한 말발굽소리와 함께 덴마크 국기를 들고, 맨 앞과 끝에는 기마경찰이 교통을 통제하며 마지막에 검은색 관용차 한대와 함께 행진을 이어가는 것이다. 일정에 없는 특별한 이벤트를 목전에서 마주하는 것은 여행자의 행운이다. 곤경과 행운을 동시에 경험한다.


▲  덴마크 기마대 시가행진  © Kyrene


곤경에 처한 사람을 그냥 지나친다고 해서 비난할 일도 아닌데, 나는 이번 짧지 않은 유럽여행에서 고마운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낯선 곳에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베풀어 준 놀라운 사랑을 마음 깊이 간직하며,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삶이 되기를 변함없이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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