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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rene Aug 26. 2024

HAM을 아시나요?

<삶의 한 순간을 - 함께 사는 세상> 가치관과 삶

▲  아마추어무선(HAM) 이동국  © https://stealthgti.com






요즘은 인터넷 없이 하루를 보내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다.

개인생활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 인터넷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개입된 시기는 2004년 6월경부터이다. 1994년 6월 한국 PC 통신(하이텔)의 코넷(KORNET)이 WWW기반 인터넷 상용 접속 서비스를 시작한 후, 1998년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도입되고, 2002년 초고속 인터넷 가입 가구가 1000만 돌파 후 2004년 6월에는 3000만 명을 넘어섰다(출처: http://contents.history.go.kr).


지금은 인터넷 전화를 통해 지구촌 대부분의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영상통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불과 15년 전만 해도 국제전화 통화료가 만만치 않아 타국에 가족이 있는 경우, ‘전화비 올라간다, 빨리 끊어라!’ ‘아, 진짜, 나 좀 바꿔주지!’ 이런 대화가 TV드라마 속에 등장하곤 했다. 얼굴은 보지 못하지만 목소리라도 좀 더 듣고 싶어서 가족 서열대로 애타게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리던 풍경이다.


▲  Tablet PC 영상통화  © https://www.amazon.com


이런 아쉬움을 해결해 주던 아주 인기 높은 존재가 있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혜택이 주어지는 기기는 아니다. 아마추어무선(Amateur Radio, HAM, 햄)을 하려면,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에서 ‘무선종사자 기술자격증’을 획득해야 한다. 무전기 등 무선 설비를 갖추고, 중앙전파관리소에서 무선국 개설허가를 받은 후 이용 가능한 독특한 취미이자 통신수단 역할을 하는 것이다.


통신장비가 설치된 고정된 무선국이나 차량 등에 설치된 이동국에서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만 즐길 수 있는 조금은 까다로운 취미활동이다. 무선 장비를 갖춘 가족 또는 친구끼리 햄(HAM)을 통해 맘껏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뿌듯했던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이 컸다. 


옛날 옛날 국제펜팔을 하면서 외국친구를 사귀고 외국어 공부를 하는 것이 유행이던 때도 있었다. HAM 역시 동지의식이 있어서, 호출부호(Call Sign)로 국적·나이·성별·직업을 불문하고 허용 범위 내에서 상당한 유대감을 갖고 대화를 나누곤 했다.


▲  아마추어무선(HAM) 무선국  © Emil Neuerer, DJ4PI


그 시절, 나는 어느 도시 번화가를 걷고 있었다.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독특한 거리풍경을 즐기던 중 흥미로운 가게 앞에 멈춰 섰다.  구매의사가 생겨 가방을 열고 지갑을 찾으니 없다. ‘이럴 리가,’ 하면서 구석구석 뒤지는데 가방 안쪽에서 밖이 내다보인다. 질기디 질긴 가죽가방이 세로로 길게 찢어져 있고 지갑이 사리진 것이다. 외국여행 중에도 겪어보지 않은 최초의 소매치기 경험이다. 집에 돌아갈 교통비도 없어 도보여행으로 귀가했다.


주민등록증과 신용카드 분실신고 등 관련업무를 처리하고 황당하긴 했지만 다친 곳 없으니 다행이라 생각하며 잊어버렸다. 며칠 후 인근 파출소에 전화가 걸려와 내 신분을 확인한다. 신분이 확인되자 파출소에 나와서 지갑을 찾아가라고 한다. 지갑 분실장소는 시내인데 지갑이 동네 파출소에 와 있는 것이다. 나에게로 돌아온 지갑에는 주민등록증, 신용카드, 사진 등이 모두 그대로 있고 현금만 사라진 상태였다. 분실 신고하고 관련업무 정리하느라 공들인 일이 몽땅 헛일이 되었다.  


내게 지갑을 건네주던 경찰 공무원이 재미있는 얘기를 해준다. 지갑이 이렇게 얌전히 파출소에 전해지는 일도 처음이고, 내용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일도 처음이라는 것이다. 분실물을 습득한 경우가 아니고 소매치기당한 것이어서 이상했다는 것이다. 


곁에 있던 경찰동료가 한마디 거들어준다. 아마도, 그 소매치기가 겁을 먹은 듯하다고. HAM 자격증이 여권처럼 두툼한 데다, 사진과 고유번호 등 낯선 글자가 적혀 있고 ‘무선종사자 기술자격증’이라는 타이틀로 인해, 국가정보 관계자쯤으로 오해를 한 결과로 보인다고 한다.


인터넷의 출현으로 그 인기와 활용도가 시들시들 숨어버린 HAM, 서류가방 속에 잠자고 있는 자격증을 보며 문득 떠오른 옛 추억의 한 장면이다. 사람도 물건도 사회현상도, 한 시절이 지나고 그 쓰임이 다 하면 기억 저편 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 정해진 이치이다.


다만, 사라지지 말아야 할 소중한 가치는 지켜지면 좋겠다. 사회공동체가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중심가치는 무엇이 되어야 할지 생각이 멀리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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