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 순간을 - 함께 사는 세상> 공감과 배려
▲ 차량 추돌 장면 © https://www.xn-lg3b8cu4q69at5z5uk.com
사람이 살아가면서 원치 않는 일을 겪는 경우가 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남의 일 같던 일이 내게도 일어난다. 그 옛날 무심히 넘겼던 사소한 말 한마디가 새로운 의미를 담아 떠오르기도 한다.
어느 날 아침, 늘 다니던 출근길 중 하나의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안전 제일주의의 소심한 운전자로서 모든 교통법규는 배운 대로 잘 지키는 사람이다. 조용히 파란 신호를 기다리며 멈춰 있는 내 차를 누군가 뒤에서 강하게 들이받는다. 정지하고 있는 차가 뒤차에 받힐 확률이 얼마나 될까, 순간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차간거리를 잘 지킨 덕분에 나는 다행히 앞차와의 충돌은 피하게 되었다.
바쁜 아침 출근길에 무방비로 당한 교통사고 현장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누가 봐도 나는 완전한 피해자이며 아무런 책임이 없는 사람이다.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차량은 자그마한 트럭이다.
트럭을 본 순간 나는 참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다. 저 사람은 작은 트럭 운전자로서 일터로 가는 중이다. 사고를 냈으니 한동안 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장으로부터 질책을 받을 것이다.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 오지랖이 산 넘고 바다를 건너는 중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내 짐작과는 달리 그 사람은 차를 여러 대 소유한 운수업자일수도 있고 큰 업체의 사장일 수도 있는데 반대의 입장 만 떠올랐다. 그 사이 나는 이미 안전벨트를 풀고 운전석에서 내리고 있었다. 내 차를 받은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는 다가오는 젊은 여성을 보자 사과대신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괜찮으세요?" 나의 첫마디에 그는 오히려 당황한 듯했다. 앞 뒤 차량운전자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3중 추돌의 주범인 세 번째 차량은 슬쩍 자리를 떠나 사라지고 말았다. 그 자리에는 부서진 범퍼 조각만 남아있었다.
운전경력이 짧은데다가 처음 겪는 일에 당황한 나는 해야 할 일은 정작 떠오르지 않았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주택이 있는 선배가 생각나 전화로 조언을 구했더니 가까운 곳이라 금방 나와주었고 교통경찰도 합류했다. 곧이어 보험회사 직원도 도착했다. 사후처리는 경찰과 보험사직원에 맡기고, 선배친구가 소장으로 재직하는 인근 파출소로 자리를 옮겼다.
상황을 전해 들은 소장님이 웃으며 한 말씀하신다. “경찰 생활하며 수많은 사건 사고와 사람을 만났지만 이런 사람 처음 봅니다.” “무슨 뜻인지 …?”
피해자가 운전석을 이탈해서 가해자의 안전상태를 확인하는 사람 처음 본다는 것이다. 나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경찰신고가 우선이고 곧 보험사에 연락해서 관계자들의 확인을 위해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잘못하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고, 피해자가 오히려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고 한다.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도로의 무법자들은 보복운전을 하며 흉기를 휘두르고, 보험사기를 위해 위장사고도 조직적으로 저지른다고 한다. 그 당시엔 그런 험악한 경우가 흔하지 않았으니 소장님의 한 마디가 심각하게 와닿지 않았다. 오늘날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자칫 봉변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한다.
돌아보면, 예나 지금이나 곤경에 처할 때마다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들이 항상 곁을 지켜주었다. 마음의 빚으로 남지 않도록 나누는 삶을 살기 위해 내 나름대로 마음쓰고 있다. 앞으로 사는 동안에도 받는 것보다 줄 수 있는 일이 더 많고 맘껏 베풀 수 있기를 소망한다. 문득 떠오른 추억 한 자락이 오늘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