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 순간을 - 함께 사는 세상> 공감과 배려
▲ 이른 아침 즐거운 외식 © Kyrene
태생과 환경 그리고 양육방법이 다르게 성장한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선택하는 사회적인 제도가 결혼이다. 보고 싶은 얼굴 매일 볼 수 있어서 행복해야 할 결혼, 막상 같은 공간에서 지내다 보면 참 시시한 일들이 짜증을 유발한다. 각자가 살아온 편안한 습관대로 살아가는데 이를 지켜보는 옆사람은 가끔씩 불편하고 못마땅하다.
왜 저럴까? 아니 저런 모습이? 이렇게 자잘한 불평을 마음 구석에 켜켜이 쌓아놓고 모른 척 지내는 것은 건강한 관계가 아니다. 부부는 상호신뢰와 인격존중을 필수로 하는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의 대상이다. 내 남편이 내 아내가 사회생활 중, 대인관계에서 외모도 능력도 품격도 돋보이는 사람이 되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이 배우자이다.
집안에서 내 눈에 거슬리는 어떤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편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가장 가까운 사람끼리 조정하고 개선해야 할 일들이다. 우리는 일찌감치 서로의 성향을 파악하고 결론을 내렸다. 무슨 일이든 서로에게 솔직할 것, 약속한 대화법을 지킬 것, 그리고 서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으로 정했다.
나는 숫자와 관련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은 모든 자료를 한눈에 파악하기 쉽게 도표와 그래프 등 수치화하는데 탁월하다. 나는 반듯하고 조화롭게 집안 물품들을 정리·정돈·배치하는 감각이 양호한 반면, 금전 관리하는 일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 결과 의식주에 소요되는 모든 물품을 구매하고 그와 관련된 카드 및 은행업무는 철저하게 남편 몫이다. 모든 경제활동에서, 물품을 선정하고 결정하기 전까지만 나와 의견교환을 하고 그 다음 과정에서 나는 완전히 해방이다. 서로가 필요한 것은 합의하에 결정하면 된다.
남편은 미식가이고 식재료 구입에 대단히 전문적이고 까다롭다. 과학도 답게 인체에 중요한 필수영양소를 적절하게 조절해 준다. 나는 일손이 빠르진 않지만 집안 관리와 요리하는 일이 좋다. 이러한 과정에 기계와 도구의 역할이 보태져 많은 도움을 받는다. 이젠 이것도 나이가 드니 점점 게을러지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집안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고 있다. 미리 분리해 놓은 결과물을 아파트 집하장에 내어 놓기만 하면 된다. 이 모든 일은 남편 몫이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집 밖으로 쓰레기를 내어 놓는 일을 내 손으로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자기가 당연히 할 일이라고 말해주는 남편이 고맙다.
집안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남편을 대접하려고 마음을 쓴다. 그런데 이 작은 정성이 밖에 나가면 아주 커다란 보답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경우 뷔페식당을 선호하지 않는다. 밖에서는 편하고 싶기 때문이다. 예외는 있다. 여행 중에 호텔 조식은 피할 수 없는 뷔페식이다. 집밖으로 나서는 순간 나는 완전히 ‘마님’이 되어 대접을 받는다.
안내되는 식탁에 조용히 앉아서 느긋하게 아름다운 창밖 풍경을 감상하기만 하면 된다. 남편의 정성 어린 서빙이 시작되는 것이다. 전채 요리(前菜料理)에서 디저트까지 풀코스로 최고의 음식을 대접해 준다. 플레이팅(Plating)도 예쁘게 잘 차려놓는다. 내 몫과 남편 몫의 음식을 두 번씩 차리는 일을 수차례 반복하면서도 남편은 나를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수행한다.
한 번은, 식사를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는 내게 직원이 다가와 도움이 필요한지를 물었다(음식을 안내하겠다는 의지). 남편이 서빙 중이라고 답하니, 직원이 행복한 웃음을 웃어준다. 이러한 남편의 배려는 어느새 집 밖에서 식사하는 우리의 원칙이 되었다.
사소한 일로 감정을 상하던 일은 각자 잘하는 일을 맡음으로써 해결된다. 내가 원하는 일 말고 가족 구성원 각각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로 가사 분담을 하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내가 잘하는 것을 남들도 잘하는 것은 아니다. 내게 당연한 일이 또 누군가에겐 실행하기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미운 마음으로 바라보면 상대의 숨소리도 듣기 싫다고 한다. 지금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다.
오늘도 무탈하고 건강하게 보낸 하루가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