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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카 Oct 27. 2024

육체와 영혼을 뚫고 지나가는

TURQUOISEDEATH, <Kaleidoscope>를 듣고

TURQUOISEDEATH, <Kaleidoscope> / 2024.10.11


    TURQUOISEDEATH가 작년 보여준 <Se Bueno>는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그는 자신이 주력으로 밀고 나가던 Atmospheric Drum and Bass에 Shoegaze, Dream Pop, Post-Rock, Indietronica 등의 장르를 결합하였으며 또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를 통해 자신이 인디의 다음 황태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렸다. 이후 약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발매된 그의 4번째 정규 앨범 <Kaleidoscope>에서 그는 여전히 야심 차지만, 자신의 시작이었던 DnB 씬으로 돌아가며 말 그대로 압도적인 음악들을 쏟아붓는다.


    <Kaleidoscope>에 필자가 가졌던 기대는 유독 컸다. 필자는 그가 <Se Bueno>에서 보여주었던 모든 창의성을 그대로 옮겨 새로운 맛의 DnB를 만들어내주기를 간절히 바랐으며, 처음부터 TURQUOISEDEATH가 이에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었다. <Kaleidoscope>는 역시나 예상대로다. 분명 전작과는 어느 정도 다른 결의 작품이지만, Trance와 Breakcore의 요소를 적절히 섞어내 기꺼이 탐닉할 수 있는 거대한 사운드스케이프를 제공한다. 본작의 리듬 구조는 눈에 띄게 복잡하고, 강한 브레이크 비트와 고속의 샘플이 합쳐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Kaleidoscope>는 중간권의 숨 막히는 기류와 태풍의 눈 속의 아찔함, 또 Chillwave 스타일을 유지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최면적인 "Entrance"이후 나오는 "Limbo"는 앨범의 하이라이트이자 톤 세터를 담당하는 트랙이다. 본 트랙의 드럼 사운드는 굉장히 오묘한데, 우선 기본적으로 강렬하지만 동시에 혼란스럽고 어두우며, 심지어는 환각적이기까지 하다. 낮은 신디사이저와 화사한 멜로디의 키보드의 조화는 말 그대로 초현실적인 세계를 눈앞에 옮겨다 놓은 듯하며, 모든 악기가 밀도 높은 생태계 속에서 균형 있고 신중하게 배치되어 있다. vmrrobotic과 함께한 "Glimmer"는 점진적으로 압축되는 비트와 또 계속해서 질량과 속도가 증가하는 드럼이 눈에 띄는 환상적인 트랙이다. 부드러운 피아노 코드에 혼잡한 믹스가 추가되어 드라마틱한 전개를 보여준다.


    "Hold Tight"와 "Lullaby"는 꿈결과도 같은 트랙이다. 전자의 경우 편안한 마법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다 마지막에 조화롭고 놀라운 색소폰 사운드가 흘러나오는데, 이는 과잉에 가까워졌던 앨범의 완급 조절을 훌륭히 해내고 분위기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Lullaby"는 생동감이 넘친다. 장엄한 오르간 사운드로 시작해 다양하고 영적인 사운드가 흘러나오며, 글리치 비트가 합세하여 아름다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트랙 "Underneath"에서 TURQUOISEDEATH는 10분에 걸쳐 극적인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청자를 자신만의 깊은 세계관 속으로 초대한다. 그는 본 트랙에서 지난 40분간 제공했던 체험을 다시 한번 짤막하게 요약하며, 자신의 모든 능력을 최대한 결집시켜 대서사시 같은 작품을 완성시킨다. 앞선 트랙들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들이 복잡하게 전달되는데, 이 역시 그가 계획한 것일 것이다. "Underneath"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이미 그만의 세계 속에 들어가 있게 된다.


    <Kaleidoscope>는 섬세하고, 압도적이며, 그저 낭비되는 순간 없이 야심 차게 흘러가는 작품이다. TURQUOISEDEATH는 또 한 번 새로운 사운드를 추구하고 성장을 꾀했으며, 이러한 모든 시도들은 <Kaleidoscope>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본작이 자신의 방점이자 완벽한 서사를 갖춘 작품이 되기를 원했고, 이에 50분간 홀로 앨범을 이끌어가며 자신에게 돌아오는 하이프가 거품이 아님을 입증하였다. 언더그라운드 DnB 씬에서 TURQUOISEDEATH는 단단히 입지를 갖추었으며, 어쩌면 장르의 앞날도 그에게 어느 정도는 달려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나갈 것이며, DnB 장르에 계속해서 다른 서브 장르를 조합하며 새롭고 신선한 음악을 들려줄 것이다. <Kaleidoscope>에는 그의 미래와 현재가 모두 담겨있으며, 그의 이정표로 기억될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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