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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미 immi Jan 11. 2024

엄마의 재능

원조 키덜트 X 61년생 우리 엄마

엄마에게는 나 혼자 보기 아까운 재능들이 많다.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은 엄마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나는 성인이 된 후, 회사에서나마 침착한 사람인 냥 행동하지만 천성은 그냥 비글이다.

그런 내가 그나마 중화될 수 있던 건(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엄마 덕이다.


뼛속까지 교양 있는 우리 엄마가 좋다. 그런 엄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느낀다.

TV에 나오는 청담동 댁같이 교양 있는 시늉이 아니라 진짜로 소양을 갖춘 엄마를 만난 것에 감사하다.


초딩 때 내가 기관총처럼 말을 빨리 할 때면 온화한 웃음과 함께 "천천히 얘기하세요"라고 하던 엄마.

성격 급한 아빠가 1초라도 아끼겠다며 골목길 운전을 시전 할 때면 엄마의 한 마디 "군자대로행이요"

얼음 공주



엄마에게는 크게 다섯 가지의 재능이 있다.


첫 번째로는 미적 감각이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엄마가 그린 감과 꽈리 그림(수묵 채색화)이 걸려있었다. 그 색감과 분위기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엄마가 스케치북에 그려줬던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 캐릭터들도 생생하다. 아마도 파스텔 그림이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사를 여러 번 다니면서 창고에 있다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한다 ㅠㅠ 엄마의 작품을 소중하게 지켜주지 못한 게 가장 슬픈 부분)


내가 마케터로 일했을 때 포토그래퍼 실장님과 디자이너와 자주 협업했다. 5성급 호텔 특성상 완성도 높은 비주얼 에셋을 필요로 하기에 어떤 소품을 효과적으로 사용할지 어떻게 배치할지 등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그 모습이 엄마가 집에서 늘 하시던 것과 같았다.


엄마에게는 우리 세대에 일컫는 직업인 포토그래퍼, VMD,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만 아직 주어지지 않았뿐, 내가 봤을 땐 엄마표 연출과 사진 작업물이 더 고퀄인 경우도 많다.


두 번째로는 엄마만의 예술 감성이다.

엄마는 운전할 때에도 라디오 주파수 93.1(클래식 채널)을 듣는다. 엄마 친구분 중에는 "우리 나이에 이런 음악 들으면 죽어.."라고 조심스러운 경고를 하는 분도 계셨다고 한다. ㅎㅎ 참고로 그 친구분의 음악 취향은 임영웅과 같은 신나는 음악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에도 클래식 CD와 카세트 세트가 집에 많았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바흐도 알고 캐논도 아는, 클래식 음악과 서먹하지 않은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엄마는 LP도 좋아해서 자주 들으시고, 여행을 가셔도 미술 용품이나 일러스트레이션 포스터를 나랑 내 동생에게 기념품으로 사다주신다.


세 번째로는 예쁜 것을 선별하는 큐레이팅 스킬과 아기자기함이다.

엄마는 콜렉터다. 특히 디테일과 스토리텔링에 강한 수집가다. 레고, 플레이모빌, 디즈니, 스타벅스 MD, 바비 인형과 같은 키덜트 소품과 빌레로이 앤 보흐, 쯔비벨무스터, 로열 코펜하겐 그릇 브랜드와 같은 리빙/인테리어 분야가 엄마의 전문 분야다.


하나씩 모은 것들을 여러 브랜드 믹스 매치해서 스토리가 있는 사진들도 자주 찍으시는데, 가족들끼리만 보기가 아깝다. 엄마가 직접 수입 물품 소싱을 해도 반응이 매우 좋을 것 같다.


네 번째로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다.

엄마는 원조 키덜트다. 동화 같은 걸 좋아한다. 이건 우리 이모들도 마찬가지다. 빌레로이보흐 키즈 라인을 보면 그림들이 엄청 귀여운데, 세 자매가 이곳 키즈 커틀러리와 그릇 세트를 본인 용으로 구매한 건 안 비밀이다.


엄마는 '우리 자매들은 어딘가 조금 모자란가 봐 호호호'하고 얘기하지만, 나는 그런 순수함을 많이 간직하며 사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점점 느끼기에 응원하고 싶다. 물론 나에게도 그런 DNA가 많이 남아있다. 아.. 레고에서 엄마한테 아이디어 의뢰를 받으면 정말 대박이 날 텐데.

레고.. 보고 있나요?
엄마가 여행갈 때 꼭 챙겨가는 레고 피규어 아이들. 여행지마다 멤버들과 소품은 매번 업데이트 된다.


다섯 번째로는 엉뚱함과 유머다.

"어그 신은 내 발.. 잘 나오려나?.." (엄마 마음속)

조용히 말을 해도 웃긴 사람. 의도치 않아도 어딘가 웃기신 분.


이 사진은 엄마한테 어그 신발을 선물해 드렸는데 잘 받았다고 하며 보내주신 사진이다. 앉아서 발을 들고 사진을 하도 찍었더니 허벅지랑 배가 땅긴다고 하신다 ㅎㅎ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최대한 따뜻해 보이는 연출을 위해 니트 양말을 급히 신고 크리스마스트리 앞으로 간다. 발 사이즈에 딱 맞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바로 신어 본다. 발을 든 채로 버둥버둥.. 조금은 힘들지만 이겨내야 한다. 가로 X 세로 여러 컷을 찍어본다.


나는 엄마가 너무 웃기다. 올해 가족 달력을 제작했는데 이 사진은 12월 표지에 넣었다.




이 글을 봐주신 모든 분께서 힘찬 새해를 맞이하시길 바라며, 청룡의 행운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엄마가 꾸미고 찍은 스벅 청룡 X 플레이모빌 바리스타

사진 (C) 2023. Susan 작가. All rights reserved.

글 (C) 2023. 임미 immi.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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