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뭐길래. 입시 포비아 있는 사람이 전하는 지극히 사적인 생각
제2의 대치동, 중계동 은행사거리를 아시나요?
나는 20여 년 전 이곳에서 외고 입시를 준비했다.
은사(은행사거리 지역을 줄여 불이는 노원러의 단어)는 요즘에도 가끔 가곤 하는데, 다음은 주변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스벅은 물론이고 커피빈, 체인점이 아닌 카페, 심지어 맥도날드 좌석까지도 예외 없다.
학원 환승(1번 학원에서 2번 학원으로 가는 사이)을 도와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학부모
귀빈처럼 잠시 방문해서 비싼 스무디를 먹고 다음 학원으로 바삐 가는 학생들(자녀)
과외받는 학생들과 선생님들
자녀 성적 때문에 화가 난 엄마들과 풀 죽은 얼굴로 영혼 나간 아이들
내가 혼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 피곤해지는 것 같은 마음에 은사에서는 카페 가는 걸 피하는 편이다.
학원가 입시, 20년 전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작년 초 은사에 위치한 한 작은 영어 입시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려다 초반에 하차한 적이 있다.
시연 강연으로 독해(Reading) 파트를 진행했다. 내가 진행한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독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 글의 메시지(주제와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에 1) 먼저 큰 관점에서 전체 글의 해석을 선행한 뒤 2)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와 학생들의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없는지 파악하고, 중요한 표현이나 어휘 등이 있다면 살펴보면서 좁혀 나가는 방식이었다.
원장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다.
**씨는 해외파여서 그런지.. 좀 더 문법에 대해 처음부터 자세히 쪼개서 설명해 줬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한 문장 한 문장을 바로 해석하고, 이 문장은 5 형식이고~ 목적격 보어가~ 수식어가~ 관용사가~ 이렇게 문법을 세분화해서 구체적으로요.
해당 가이드는 충격적일 만큼 성문영어법 그대로였다. 이후 말하기 시간에도 동일한 수업 방식을 요청받았다.
물론 학원마다 편차는 있을 것이고, 대형 학원들은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려 2024년에 성문영어에 적힌 대로 영어 교육을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 안타까웠다.
가장 예쁠 나이에 심각한 표정으로 우울감에 젖어있는 학생들의 얼굴이 슬펐다. 그리고 이렇게 영어를 배워서 해외로 취업을 하거나 어학연수를 나간 뒤 외국 친구들을 사귀었을 때 어떤 한계를 겪고 무시를 당할지, 진짜 영어로 현지에서 먹히는 경쟁력 있는 영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지 너무나도 명확하게 그려졌다.
해외에서 통용되는 진짜 영어(혹은 새로 배운 외국어) 잘하는 방법
네덜란드에 있을 때 현지 친구들(모국어가 영어는 아니지만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하는 더치인들)에게 영어를 어떻게 그렇게 하나같이 능숙하게 구사하는지 물어보았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영어를 필수 과정으로 배운다고 답했지만 그 부분은 우리나라도 같기에 패스. 그렇다면 다른 팁은 어떤 게 있을까?
현지 친구가 들려준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잘하게 된 배경을 소개한다.
1. 아주 어렸을 때(아직 말 못 하는 단계)부터 엄마가 만화 tv 프로그램을 영어로 계속 틀어놓았다고 했다.
2. 조금 더 커서는 프렌즈 같은 미드 등 본인이 좋아하는 영미권 드라마를 즐겨 봤다고 했다.
(이는 BTS RM이 소개했던 영어 잘하는 방법과도 동일해서 놀랐다.)
3. 그리고 성인이 돼서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듀오링고(언어 앱)가 돈 적게 들이면서도 가장 효과적으로 일상 영어 실력을 늘리는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본인은 스페인 어학연수 갔을 때 듀오링고 덕을 많이 봤다고도 덧붙였다.
4. 새로운 언어 배우는 것을 시작할 때는, 성인이더라도 어린이 /키즈 책부터 마스터할 것
5. 원어민 이메일 표현 중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저장해 놓고 > 외우고 > 내 것으로 만들어 활용하기
종합해 보면 핵심은 '일상생활에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많이 노출시키고, 흥미를 유지=즐거운 일로 인식되도록 하는 것'이다. 즉, 가장 좋은 방법은 어렸을 때부터 "즐기듯이"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고, 피해야 하는 것은 "질리게 하는 것"이다. 흥미를 잃은 것에 대한 후폭풍은 생각보다 크다.
영어, 입시 보다 훨~~~ 씬 중요한 것, 그러나 누구도 잘 알려주지 않는 것
나는 외국어 고등학교 & 인서울 대학교 졸업, 대기업 입사 후 10년 근속, 그리고 MBA 취득까지 우리나라에서 소위 말하는 정식 코스를 밟아왔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진짜 나의 인생 찾기는 퇴사와 석사 졸업 그 이후부터 시작되었고, 나는 아직도 그 여정에 있다.
그 정식 코스라는 것을 밟기까지 "이것들을 왜 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인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고, 나는 어떤 사람이며, 비전과 가치관은 무엇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를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를 가야 한다고 하니 앞만 보고 달렸고, 왜 쌓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스펙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대기업에 들어가 10년을 일하며 건강과 워라밸을 서서히 잃고 나니(물론 그만큼 커리어 상에서 배운 것은 많지만) "이제부터가 실전이다, 더 늦기 전에 '나'라는 존재를 찾고, 단단히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다.
만약 내가 이렇게 중요한 자기 탐구의 시간을 학창 시절부터 가졌라면 얼마나 큰 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 있었을지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드는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생활력이 좋아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생활력은 독립성을 포함한다. 그럼 생활력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나올까? 나는 "무언가를 스스로를 할 기회를 얻었을 때"라고 생각한다. 실수를 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깨달을 수 있고, 반성을 하며 개선점을 찾을 수 있다. 부모가 a-z까지 평생을 다 해줄 수 없듯이 혼자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호캉스 조식 뷔페를 먹다 마주한 옆 테이블 풍경이다. 아들은 자리에 앉아있고 부모가 뷔페 메뉴를 떠서 갖다 주었다. 아들 편하라는 것도 있지만 부모가 원하는 영양소로 컨트롤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주 대화는 영어 레벨 테스트에 관한 것이었다. 오전 9시에 말이다. 이러한 방향이야 말로 아이에게 독립적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하고, 영어/입시에 질리게 하는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은 감사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이가 사회에 처음 나와서 너무나도 세상물정 모를 때 그리고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이리저리 치일 때는 그것이 핸디캡(장애)으로 작용한다.
나는 독립 운동가도 아니고 아직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은 아니지만, 아직 흙놀이를 해야 할 어린아이들이 그리고 해맑은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일명 수험생들)이 좋은 대학 가는 것, 즉 입시에만 목메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평생 어떤 길을 걸을 것인지 고민해 보고" "진짜 영어"를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내가 어떤 부분에 있어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기도 한다.
+ 다음 편에서는 요즘 현지인 MZ들이 쓰는 진짜 영어 표현 10가지를 주제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