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시의 낭만에 대하여
시칠리아 반달살기라면 그런 여행길. 카타니아에서 에트나 화산을 찍고 다시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 반쯤 지났으려나. 회색빛 하늘은 하늘빛이 흥건해진 보송한 구름으로 가득했다. 나에게 선물이 찾아온 것이다. 마음을 비우면 담을 수 있는 것이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잔뜩 설레고 긴장도 되곤 했다. 그래서 시칠리아 여행이 어땠냐고?
나에겐 늘 대도시 여행만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일부러 유명한 데만 찾아서 가는 일종의 보여주기 충의 삶에 충실했다. 난 왜? 남들의 부러움을 사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여행이 지속될수록 물질적 풍요로움보다 정신적 공허함에 포커스를 두기 시작했다. 여행지를 둘러싼 자연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워킹홀리데이에서 열심히 일해 피렌체 여행을 갔었다. 그곳에서 프라다 가방과 지갑, 미우미우 제품을 구입했는데, 빨간색 미우미우 반지갑을 애지중지했다.
“시칠리아 여행 전 마드리드에서 그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떤 여행을 하고 있을까?”
시간이 흘러 깨닫는 진리야 말로 변화와 성장의 거름임을,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 느꼈던 짜릿함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해 마음껏 소리칠 수 있는 자유 같은 거였다. 바닷속 물고기가 유영하듯 두 발로 땅을 밟고 당당히 일어선 것이다.
시칠리아 소도시 '라구사'는 보통 당일치기 여행지로 떠난다. 하지만 여행이 쌓일수록 오래 머무는데 익숙해져 버려 무려 이박삼일동안 있었다.
라구사는 크게 두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라구사 수페리오레(Ragusa Superiore)'라는 어퍼 타운(Upper Town)과, '라구사 이블라(Ragusa Ibla)'라는 아래에 위치한 올드타운을 말한다.
숙소는 라구사 이블라에 위치해 있어 도보 여행을 가능토록 했다.
1693년 대지진으로 인해 도시를 재건했고, 그 결과 서로 다르지만 상호 연결된 두 개의 도심이 공존하게 되었다. 어퍼 타운인 '라구사 수페리오레'는 넓은 도로와 광장 등 현대적이고, 아래쪽 마을인 '라구사 이블라'는 좁은 거리, 유서 깊은 교회, 그림 같은 광장 등 중세와 바로크 양식의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이블라 지역은 시칠리아 남동부 도시들처럼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바로크 시대 때 교회의 특징은 화려하다는 점과 더불어 이을 위해 부자나 종교 단체의 후원을 받았는데 이는 단순한 헌신 혹은 지위 과시, 종교적 의무를 이행하려고 했던 것으로 사료된다.
완전히 짐을 풀고 나서 어두워진 골목길을 걸었다. 시칠리아에서 가장 저렴한 도시 중 하나에 속하는 라구사는 황금빛 불빛으로 알 수 있듯 따뜻하고 온화한 가을밤을 닮아 있다.
조용한 길목에서 명상 중인 고양이 한 마리를 조우한 뒤로 얼굴에 미소로 가득했다. 그 미소는 사방으로 번졌으며 마치 왈츠를 틀고 우아한 몸짓을 하는 발레리나를 연상케 했다. 온 세상의 어둠과는 상반되는 감정을 노래했다.
어둠과 별이 사랑해서 만들어진 감청색 하늘아래 돌로 만들어진 길을 걸으며 꿈이라고 생각했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데렐라가 라구사 이블라의 중심 '산 조르지오 대성당'을 떠나고 있었으니, 동화라고 외칠 수밖에!
나는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를, <라구사 이블라>라고 칭한다.
<That's a Moro>는 숙소의 호스트가 강력 추천해 준 레스토랑이다. 이 나간 도자기가 맛집을 증명해주고 있는 게 아닌가.
여행과 사랑은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황홀한 음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두겠다. 매운탕 맛이 나는 해물 파스타에 빠져 복스럽던가 게걸스럽던가 했을 것이다.
'일출(Sunrise)'보다 '월출(Moonrise)'에 가까운 우리. 낭만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 어둠이 내려 보이지 않던 불씨를 키우면서 따스한 달빛 아래서 춤을 췄다. 가장 뜨거운 순간이 파노라마 영화처럼 지나갔다. 감독과 주인공이 되어 끝없는 영화 한 편을 찍는 와중에 서로 눈을 맞추며 반짝이는 눈동자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