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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부신세실 Jun 16. 2024

기대에 부푼 여행

엇나간 나의 각본

 딸네와 괌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바라던 손녀와 할아버지의 수영 실력을 볼 수 있게 되어 기대된다. 저녁 비행기로 4시간 이상 구름 위를 날아 새벽에 괌에 도착했다. 

커넥팅룸으로 나란히 방을 쓰고, 중간에 문이 있어 아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으니 편리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5시간 정도 잠을 자고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호텔 바로 앞에는 드넓은 바다가, 실외 풀장이 서너 군데, 카누 타는 곳은 물길이 굽이굽이 조성되어 있어 보기만 해도 신났다. 손녀들은 빨리 물놀이를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래시가드를 입은 두 손녀와, 검정색 래시가드에 하얀 속살이 눈부시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쓴 멋진 할아버지 가 손녀들과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풀장은 깊이 30센티부터 70센티 1미터 이상의 수위로 각자의 체향에 맞는 풀에서 물놀이를 하게 되어 있다. 드디어 중간 정도 깊이의 풀장에 큰 손녀가 입수 했다. 

풀장에는 놀이 기구가 많았다. 둥둥 떠 있는 거북이, 악어, 하마, 물뱀, 그리고 그물로 된 대형 튜브가 3개, 징검다리. 농구대. 네트 골대까지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물속에 들어간 손녀에게 수영을 해 보라고 했더니 고개를 살살 흔들며 놀이 기구 쪽으로 가버린다. ‘수영은 언제 보여줄 건데’ 조금 맘이 상했지만 작은 손녀를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라 참았다. 


  이번 여행에서 할아버지와 큰손녀, 나와 작은 손녀를 짝으로 묶었다. 손녀들이 선택한 짝궁이라서 작은 손녀와 꼭 같이 있어야 한다. 저녁 때 까지 여러 풀장을 순례했지만 수영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놀이 기구가 많아 아이들이 즐기고 있으니 손녀도 풍덩대며 노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신나고  바쁜 일정의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한 밤 중에 딸이 건너와서 큰애가 열이 심하단다. 비상약을 먹고 자는데 열이 영 안 떨어진다며 알려준다. 

어쩌나 해외여행 와서 아프면 병원 가기도 어렵고 약을 쉽게 살 수도 없는데, 일단 물수건을 이마에 올려놓고 지켜보겠다고 한다. 

아침이 되어도 큰손녀는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온 몸이 불덩이. 혹시 코로나 걸린 것 아닌지 많이 걱정 된다. 

가져온 비상약을 시간에 맞춰 먹여도 별 차도가 없으니 딸은 맘이 급해져 가이드에게 도움 전화를 하고 사위와 약을 사러 간다며 아이들을 부탁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작은 손녀는 물놀이 나가자고 하는데 짝궁을 바꾸어서 할아버지와 나가고 나는 큰손녀 간호를 했다. 

현지에서 구입한 약을 먹고 열이 조금 떨어지기는 했는데 아이는 속이 아프단다. 종일 먹지도 못하고 약만 먹으니 속이 멀쩡할 턱이 없다. 나는 ‘잘 이겨내고 신나게 물놀이 하러 가자’고 기도를 하면서 물수건을 갈아준다. 

그렇게 하루를 아프고 나서 다음날 컵라면이 먹고 싶다 해서 할아버지가 사다주니 맛있게 먹고 기운이 나는지 물놀이를 가면서 오늘은 카누를 타 봐야 한단다. 

‘수영은 언제 할 거냐고’ 나는 또 재촉을 하고 싶지만 어제 하루 못 놀았으니 제 맘대로 하도록 했다. 대신 남편에게 수영을 해보라고 하니 수경을 안 써서 곤란하단다. 

내가 기대하는 각본에서 모두 엇나가고 있다. 그래 둘이 수영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고 기대일 뿐, 당사자들은 전혀 생각이 없는데, 괜한 욕심을 부린 것 같아서 접기로 했다.  

나도 카약이나 타야겠다며 배에 올라 노를 젓는데 영 앞으로 나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뱅뱅 돈다. 먼저 출발한 큰손녀와 할아버지는 한 바퀴 돌고 또 다시 출발 하려다가 내 모습을 보고는 남편이

"노를 물 바닥 찍어서 방향 전환을 한 다음에 저어 보라"고 한다.

그런데 반대 방향으로 배가 가는 것이다. 혼자 배를 타고 나갔던 딸이 들어오면서

" 엄마는 여태 출발을 못했어요? 아무 방향이라도 노를 저어서 가보세요" 한다. 

그렇게 배를 혼자 타면서 쉽지 않아 차라리 타지 말걸 하는 후회도 했지만 한 번 물살을 탄 배는 노를 젓는 대로 잘 나가서 무사히 반 바퀴를 돌고 왔다. 

‘뭐든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수영실력을 보고 싶은 것도 카약을 혼자 타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다음 날은 돌핀투어와 스노쿨링을 하러 바다로 나가는 날이다. 

'수영은 영 물 건너 간 건가?' 나는 왜 이리 집착하는 걸까? 

손녀가 다니는 수영장에서 보내준 동영상, 강사의 말로는 진도가 빠르고 잘 한다고 했으니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데. 할아버지의 수영 실력도 보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가족 모두가 구명조끼를 입고 스노쿨링하는 것을 보니 대견해 보였다.

그런데 웬일, 바다에서 돌아와 다시 풀장에 왔을 때 수영을 하겠단다. 자유형, 배형, 평형을 자유롭게 한다. 할아버지도 따라 해보라고 하니 마지못해 자유형으로 팔을 몇 번 저으며 나가더니 벌떡 일어선다. 그러더니 배형을 하다가 또 일어선다. 

“왜 일어서?.” 

“응 수경이 없어서 안 되겠어. 그리고 뭔가 신경 쓰여” 

“왜요” 

“할머니, 실내 수영장에서 할 때와 느낌이 달라.” 

“뭐가 달라?” 

“그냥 이상해” 

“맨발로 다니다가 물속에 들어오거나 아쿠아신을 신고 다니다가 그냥 물에 들어오니 입에 물이 닿는 것이 찝찝해.”남편이 한마디 한다.

할아버지나 손녀나 깔끔한 성격이 물속에서도 그대로 들어난다. 손녀가 하는 말 

“실내 수영장에서는 출발선 도착선을 지켜서 순서대로 하는데, 여기서는 수영을 하다가도 벌떡 일어나 놀기도 하고 또 다시 수영을 해서 신경 쓰여”한다.

“ 그렇구나. 할머니가 보기에도  팔을 젓다가 다른 사람에게 부딪칠까 걱정했어.”
  아무튼 신경이 쓰여서 차분히 수영하기가 편치 않은가 보다. 

‘그럼, 갖추어진 곳에서는 잘 할 수 있다는 건가’

그만큼이라도 수영하는 것을 보았으니 여행의 대가는 얻은 것으로 해야겠다. 언제 기회를 봐서 실내 수영장에서 제대로 하는 수영을 볼 날을 또 만들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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