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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부신세실 Jun 20. 2024

오지랖 좀  말려줘

나눔의 추억 정리

  아쿠아로빅 강습에 그 형님이 계속 결석이다. 샤워 할 때 옆자리에서 가끔씩 서로 등을  닦아주는 정도의 친분이지만 연배가 있어 보여 내가 형님이라고 부르는데 보이지 않으니 궁금했다. 누구에게 물어 볼 수도 없고, 그 날도 아쿠아 강습이 끝나고 샤워를 마치고 탈의실에 나왔는데 반갑게도 그 형님이 샤워용품 바구니를 들고 들어오신다. 오늘도 바빠서 샤워만 하고 가려고 오셨단다.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하면서, 무심코 샤워 바구니에 덮인 수건이 눈에 들어 왔다.

“형님 저거 수건 맞아요,”물으니 

“응, 집에 수건이 없어”하신다. 

탈색된 누런색이 낡아서 얇아 보이고 세탁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에고 수건이 없어서 저런 수건을 쓰시나’ 

차마 입 밖으로 말은 못하고 수건을 한참을 쳐다봤다. 

“형님 우리 집에 수건 많은데 몇 장 갖다 드려도 될까요?”하니

“많으면 한 장 갖다 주면 좋지”하시며 샤워장으로 들어 가셨다. 

“다음에 뵈요.” 

나도 할 것을 마치고 집에 와서 수건 모아두는 박스를 꺼내 수건을 들추니 막상 드릴만한 것이 없다. 수건에 인쇄된 문구가 오래전의 추억이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들이다. 괜히 수건을 준다고 했나 하는 후회가 약간 생겼다.   

그래도 내가 먼저 드린다 했으니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건 5장을 골라, 쇼핑백에 담아 수요일 강습 때 가져가기 위해 미리 수영가방에 넣어 두었다. 

그런데 수요일 강습에 형님은 또 결석, 이름도 모르니 안내실에 맞길 수도 없고 그냥 도로 가져왔다. 수건 5장과 젖은 수영용품이 들은 가방이 무거웠다. 그 형님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대답을 했는데, 내가 또 오지랖 질을 한 것 같아 은근히 심사가 났나 집에  걸어오는 길이 멀게 느겨졌다.

다행히 금요일에 오셨다. 수건을 건네니  

"수건이 톡톡하고 크고 비싸 보인다"며 한 장을 펼쳐들고 아이처럼

“나, 수건 5장이나 선물 받았어요.”

큰소리로 말한다. 목소리가 특이해서 탈의실에 있던 회원들이 쳐다본다. 형님 곁에 있던 분이 잘 아시는지 

“대박이 엄마가 수건 살 돈이 없어”

하며 형님의 어깨를 툭 친다. 대박이가 누구냐고 하니 강아지 이름이라고 하신다. 

그날 아쿠아가 끝나고 그 형님과 처음으로 대화를 했다. 강아지 산책 친구들과 함께 수영장에 오게 되었고, 

요즘은 독일에서 공부하던 손녀가 와서 수영장에 못 나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준 수건을 펼치면서 

“자기는 사회 활동을 많이 하는가봐.” 

하며 수건에 인쇄된 문구를 낱낱이 살펴본다. 좋은 수건을 주어서 정말 고맙다며 

“복 많이 받을 거야”하시며 

"언제 파전에 막걸리 한잔 하자"고 하신다. 

"저 술 못해요"

"그럼 파전만 먹으면 되잖아. 파전 맛있게 하는 집 있어."

 이렇게 작은 나눔이 기쁨 줄 수 있어 행복하다. 

며칠 후 형님은 파전을 먹으러 가자고 했지만 죄송하게도 내가 시간이 없어 못갔다.


내 집에는 아직도 수건이 많다. 시부모님 돌아가시고 집 정리를 힐 때 수건이 많아서 열 댓 장 정도를 성당에 걸레로 사용하라고 갖다 놓았다. 나머지는 우리 집에 가지고 와서 사용하다보니 내가 받아 온 수건들은 추억이 있어 챙겨 놓았던 것이다.

  나는 작은 것에도 의미 부여를 하며 기억하고 간직하는 습관이 있다. 물건에 집착하는 것은 아닌데 오래도록 보관하다가 결국은 싹 정리를 하게 되는 미련을 떤다. 책과 스카프, 장식용 소품들을 정리하여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때도 구구절절이 추억을 이야기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멋쩍은 일도 있었다. 나누는 것으로 만족하자 하면서도 내 기억이, 추억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아 한동안 허전하다. 수건의 문구를 보면서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시절이 그리워지니 나도 이제 나이 먹은 것이 실감난다. 내어 주고 비우고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살아야한다는 삶의 지혜를 다시 한 번 깨달으며 또 나의 소장품들을  필요한 임자를 찾아 줄 수 있을까 궁리 중이다. 소환되었던 옛 추억들을 정리하고 내 것을 내어주는 기쁨으로 기억의 빈자리와 마음을 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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