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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부신세실 Jul 06. 2024

얼음 사 오는 날

추억의 맛 1

 발 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갔다 와야 한다. 엄마가 수박을 사 오시는 날은 아랫동네 상회에 가서 얼음을 사와야 한다. 갈 때는 천천히 가도 올 때는 새끼줄에 묶인 얼음이 조금이라도 덜 녹기 전에 빨리 와야 한다. 숨이 목 까지 차서 헉헉대도 수박화채 먹을 생각을 하면 신이 난다. 

 들고 오는 얼음은 내가 온 길 따라 눈물을 줄줄 흘리며 땅에 줄을 남긴다. 촘촘하게 꼬여있던 새끼줄이 느슨하게 풀어지고 원피스치마 양쪽이 축축하게 젖어오면 우리 집에 도착하게 된다. 

땀에 젖은 원피스를 벗고 등물을 하고 쉰내 나는 머리를 감으면서도 수박화채를 만들 때 쪼개진 얼음 한 조각 입에 넣을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른다. 

 언니들도 있고 동생들도 있는데 심부름은 늘 내가 한다. 큰언니는 제일 크니까 안 시키고 작은 언니에게 시키면 작은언니는 꾀를 내며 내게 미룬다. 동생들은 아직 어리고 얼음을 들고 오기에는 무겁고 거리가 멀어 오는 동안 얼음이 다 녹을 수도 있다. 그래서 순진한 나는 심부름은 마땅히 내가 하는 것으로 알고 순종한다. 


  여름방학이 되면 수박 참외 자두 복숭아를 먹을 수 있다. 요즘처럼 하우스 농사를 짓던 시절이 아니고 제철이 되어야만 여름 과일을 먹을 수 있다. 

또한 동네 가게보다는 시장에 가야만 여러 가지 과일을 살 수 있기에 엄마는 자두나, 복숭아, 참외를 접으로 사서 이웃집과 나누었는데 그럴 때는 우리 집 마당의 평상은 과일 가게처럼 여러 개의 소쿠리에 과일을 담아 놓아서 과일 향기가 좋았다. 

그러나 수박만큼은 한 개 씩 사가지고 오셨다. 머리에 수건으로 만든 똬리를 얹고 그 위에 수박을 이고 양 손에는 김칫거리와 시장 본 보따리를 들고 오셨다. 엄마가 손을 잡지 않고도 수박을 떨어트리지 않게 걷는 것을 보면 신기했다. 그렇게 사온 수박을 먹는 날은 무척 분주해 진다. 

큰 양푼에 물을 받아서 수박을 한 시간 정도 담가 놓고 수박이 시원해 질 때면 영락없이 얼음 심부름을 해야 한다. 동생들은 물에 담가 놓은 수박을 퉁퉁 치며 물놀이를 한다.


 드디어 화채가 만들어지고 있다. 엄마는 쟁반에 수박을 올려놓고 두 쪽으로 쩍 쪼개어 놓으면 할머니와 큰언니는 한 숟가락씩 파서 양푼에 담는다. 

그동안 엄마는 얼음을 쪼갠다. 바늘을 대고 방망이로 치면 얼음이 쪼개졌다. 크게 조각을 내고 다시 작은 조각으로 깨고 있으면 우리들은 날름날름 한 개씩 입에 물고 차가우면 다시 뱉고 또 입에 넣고 호들갑을 떤다. 

엄마는 방망이를 들어 야단을 치듯 한 번 휘두르고는 계속 얼음을 쪼갠다. 한두 개 남은 참외며 복숭아도 깎아서 썰어 놓고 설탕을 넉넉히 넣고 국자로 저어가며 간을 본 후에 대접에 덜어 할머니부터 아버지 순서대로 떠준다. 엄마는 항상 어린 동생들 먼저 떠주고 우리 딸들은 나중에 떠주셨기에 화채양푼을 보며 건더기(과일들)가 줄어들까 맘이 조였다. 

  우리 집은 대식구였기에 양을 부풀리기 위해 주로 화채를 해먹었다. 그 때마다 얼음을 사오는 일은 내 당번 이었다. 

우리가 배불리 화채를 먹고 있을 때 할머니께서 자다 오줌 싼다고 화채 물을 적당히 먹으라고 하시지만 달달하고 빨간 수박 물을 어찌 남길 수 있을까 큰 양푼에 까만 수박씨만 한 움큼 남기고는 배를 두드린다.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수박씨를 화단에 심으면 수박나무가 될 것 같아 채송화 꽃 옆에 흙을 파고 수박씨 몇 개를 심는다.

동생들은 반쪽의 수박 껍질을 머리에 대보고 탈을 만들어 볼 샘으로 눈 부분을 파내려고 꼬챙이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마루 밑을 뒤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친절을 베푼다고 과도로 파내다가 손을 베여 피가 나면 할머니는 입으로 피를 빨아주고 아까징끼(빨간약)를 호호 불며 바르고 헝겊으로 싸매주셨다. 덕분에 엄마에게 호되게 야단맞는 것은 내 몫이었다.

  여름 해는 길어서 저녁을 먹고 나도 훤했다. 평상에 둘러 앉아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을 시간이다. 할머니가 담배를 한 모금 피우고 계시면 엄마는 저녁 전에 먹었던 화채 한 그릇을 할머니께 드린다. 언제나 그랬듯이 엄마는 후식을 할머니나 아버지만 드렸다. 

할머니는 수박을 숟가락으로 잘게 쪼개서 동생들 입에 내 입에 순서대로 넣어 주셨다. 숟갈 하나가 형제들의 입속을 드나들어 충치 균이 옮겨지는 위생 걱정보다는 한 번 이라도 내가 수박을 더 먹는 것이 중요하다. 할머니는 겨우 한 조각 정도의 수박과 화채 물을 마시고는 그릇을 물리신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듣고 또 들어 내용을 다 알고 있어도 재미있다. 모기가 물은 곳을 긁어가며 할머니가 부쳐주는 부채질에 잠이 솔솔 올 때쯤이면 아득히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

 “방에 들어가서 자라...”


 어른들이 요즘 과일이 옛 맛이 아니라고 할 때, '맛이 다 같지 예전 맛이 어디 있어' 속으로 반박을 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맛도 맛이지만 추억의 맛이라는 것을, 내가 할머니 되어보니 알 것 같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다 모여서 수박화채를 만들어 먹는다면 옛날 그 맛이 날까? 형제들은 모여질지 모르지만 옛날의 그런 정서적 여유가 없다.

 얼마 전에 올 들어 처음 수박을 사다 먹었다. 어느 쪽은 달고 어느 쪽은 싱겁다. 하우스에서 강제로 익히면서 단맛을 주사로 투여시킨다고 하던데 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고 어려서 먹던 그런 맛이 아니다. 

수박 한 통 사면 두식구가 일주일을 먹게 되고 그나마 툭하면 냉장고에서도 곯아 버리기 일쑤인데, 남편이 수박을 좋아하니 안 사 먹을 수도 없고. 언젠가는 먹다 남은 것으로 잼을 만든 적도 있었다. 

수박을 사면 크게 자른 것과 작게 깍두기처럼 자른 것을 소분해서 통에 담아둔다. 행여 내가 챙겨주지 못해도 남편이 쉽게 꺼내 먹을 수 있게 해두지만, 지금도 냉장고에는 며칠 된 수박이 나를 먹어 달라고 외치고 있다.

남편은 입이 짧아 작은 조각 서 너 개 만 먹고 찬 것을 싫어하는 나 역시 많이 먹지 않는다. 그래서 수박을 살 때는 같은 값을 주고도 작은 것을 고르게 된다. 올 해는 몇 통의 수박이면 여름을 날까? 

수박 한통을 게 눈 감추듯 먹던 초등학교 어린 시절을 그리며 피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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