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부신세실 Jul 16. 2024

엄마는 요술 손

추억의 맛2

  본격적인 여름이다. 아파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어려서 마당 있던 집에 살던 기억이 가끔씩 생각난다.

수돗가에 포도나무가 한 그루 있어 가지들이 뻗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작은 꽃밭에는 채송화, 깨꽃, 백일홍, 분꽃,  과꽃, 칸나, 해바라기가, 저마다 색을 자랑하며 피어있고 화장실 뒤쪽에 작은 닭장에 몇 마리의 닭을 키우던 서울  산동네에서 처음으로 수도를 끌어들여 수돗물이 나오는 우리 집.

그 동네는 집안에 우물이 있는 서 너 집과 공동 우물이 두 군데가 있는 낮은 산이 삼태기처럼 둘러있는 30여 채의 집에 세입자가 더 많이 살고 있는 달동네이다. 여승 절이 있어 절 동네라고도 부른다.

그런 동네에 아랫동네에서 부터 수도 배관을 따서 끌어 올리는 대공사를 개인 돈을 들여서 시공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동네잔치가 벌어진 것이다.

지대가 높아 수압이 낮으니 물이 시원하게 나올 리 없지만 그래도 예를 갖춘다고 북어 한 마리를 수도꼭지에 걸고 막걸리 한잔을 따라 놓고는 할머니가 깊은 목례를 하니 통장과 반장이 목례를 하며 손을 비비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미신행위라며 입을 삐죽댔다.

그런 예식이 끝나고 할머니는 수도꼭지를 틀어서 주전자에 물을 받아 모인 동네 분 들에게 한 대접 따라 주며마셔보라 하셨다. 

누구는 시원하다 하고, 누구는 소독내가 나는 것 같다며, 우물 물이 더 시원하다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도 마셔 보라고 물을 따라 주었다. 

나도 마셔보았지만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그냥 물맛이다.

아이들은 수도꼭지를 틀었다 잠갔다 하며 물놀이 아닌 물놀이를 하는 동안 엄마와 복순엄마, 큰언니는 국수를 삼고 호박야채 부침개를 하고 수박을 쪼갰다., 부엌의 그릇들이 모두 마당으로 나온 것 같다. 그릇 젓가락이 부족해 끝에 방에 사는 복순이네 것 까지 들고 나왔다.

부침개는 부엌 아궁이와 밖에 화덕 두 군데에서 붙여도 금방 없어진다.

‘다 우리 집 것인데 우리는 나중에 먹으라고 하니 심술이 나고 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동네 어른들이 너무 양심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 자매들은 엄마의 엄한 지시가 있어서 먹고 싶어도 참고 있던 중이기에 더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

한 시간 정도 먹거리 잔치가 끝나고 설거지 거리가 수돗가 큰 다라이에 쌓였다.

엄마는 또 우리들에게 일거리를 주신다. 설거지를 하란다. 우리 집 마당에서 딴 자연 수세미로 설거지를 하며 호박 야채부침개를 하는 엄마를 살짝 원망해 본다.

‘ 계모야. 어떻게 자기 자식들은 나중에 먹으라하고 일만 시킬까?’

그 순간은 몰랐다. 우리 집에 수도설치를 한다고 구경 온 동네 사람들이 손님이라는 것을 그래서 먼저 대접해야 하다는 것을, 설거지가 다 끝나고 우리 식구들만 있을 때 뜨끈한 잔치 국수에 푸짐한 호박 부침개를 먹으며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초등학교 4학년인 나는 배려라는 것을 알았다.

원래 잔치 국수를 잘 먹지 않았던 나는 그날 먹은 국수국물을 잊을 수 없다. 초여름이라 더운데도 뜨거운 국물이 그렇게 시원하고 맛있는 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

칼국수나 수제비를 좋아 했던 내가 잔치국수를 먹는 것 보며 할머니가 엉덩이를 톡톡해 주시며 국물을 더 주셨다.

요즘은 각종 조미료, 다시다로 편리하게 사용 할 수 있고 일회용 다식육수가 시판되어 즉석으로 국물을 만들 수 있지만 그때에는 큰 솥에 북어대가리와 멸치 다시마를 자루에 넣고 끓였다. 비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는 묘한 냄새 싫었다, 그러나 잔치 국수에 담겨진 국물은 비리지도 않고 맛있었다. 

지금도 나는 재래식으로 음식을 만드는 편이다. 조미료는 절대 쓰지 않으니 감칠맛은 없지만 담백한 맛이 오히려 입에 맞고 길들여졌다.

딸이 하는 말 “ 엄마가 담근 김치는 익어서 셔지면 맛있어요. 라면 먹을 때 먹기 딱 좋아요. 이름에 ‘신’ 자가 있으니 ‘신 김치’ 장사 해보시죠.”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내 음식 맛은 밍밍하다.

예전에 어려서 먹던 맛을 낼 수 없으니 안타깝다. 맛 집의 잔치국수라고 먹어보면 입에서  당기는데 시간이 지나 갈증을 느끼는 것은 조미료가 많이 들어있다는 나의 몸 신호이다.

엄마 살아생전에 국수 삼는 법이랑 국물 내는 레시피를 배워 둘 걸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때 먹었던 호박야채 부침개도 꿀맛이었다.

부침가루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순 밀가루만 사용했을 텐데, 기름에 튀기면 상다리도 맛있다고 하는데 유튜브 요리에도 보면 여러 가지를 혼합한 부침개를 하니 당연히 맛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때는 호박, 양파, 깻잎, 당근, 풋고추 정도의 야채를 고명으로 넣고 부쳤던 것 같다.  

엄마는 부침개 반죽을 할 때도 큰 양푼에 밀가루를 넣고 물을 부어가며 농도를 맞춰 손으로 저으며 반죽을 하고 소금에 잠깐 절였던 야채들을 넣어 하얀 손으로 몇 번 휘휘 젖고 양푼 가장자리를 흩으면 반죽은 끝났다. 

예쁘게 한 국자 씩 뜨는 것도 아니고 대접으로 떠서 적당히 프라이팬에 붙고 대접 밑바닥으로 빙 한 바퀴 돌리면 반죽이 퍼지면서 동그랗게 되었다. 엄마의 손은 요술쟁이 같았다. 

프라이팬 가장자리로 기름이 짜글짜글 소리를 내고 반죽이 투명해지면서 호박채가 파랗게 색이 변하면 뒤집어서 다시 노릇노릇하게 익혔다. 뜨거워서 호호 불면서 부침개를 게눈 감추듯 먹었다.

그 시절에는 먹을 것이 흔치 않아서 일까? 엄마 손맛이 좋아서 일까? 지금은 그 때 먹던 맛이 아니다. 그래도 오늘 같이 비오는 날 나는 또 부침개를 해본다. 옛 맛은 아니더라도 추억을 그리며 부침개를 뒤집는다. 

작가의 이전글 얼음 사 오는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