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맛3
내 나이 스물 중반, 결혼 후 시댁에 합가해 살면서 임신으로 입덧이 너무 심해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니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조간신문에 전국 주부 백일장이 경복궁에서 열린다는 기사를 보고 참가해 보고 싶어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놓았다.
잠은 왜 이리 쏟아지는지 종일 잠만 자고 싶은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기에 주부 백일장이라는 기사를 보고 무료한 일상의 돌파구가 생긴 듯 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적당히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서 친정으로 갔다.
다행이 친정은 옆 동네이다. 지금처럼 전화가 있던 시절이 아니라 행여 엄마가 안계시면 어쩌나 걱정을 하며 부지런히 걸어갔다.
대문을 들어서는 나를 보고 엄마는 반기시며 놀라셨다. 연락도 없이 와서는 뜬금없이 도시락을 부탁 하고 오늘의 일정을 이야기하니, 엄마는 잘 먹지 못하는 임산부가 괜찮겠느냐며 많이 걱정을 하신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멀미를 참느라고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시청에서 내려 경복궁까지 걸어가면서 어지럽긴 했지만, 시집살이가 그리 힘들지도 않은데 스스로 버겁게 생활하는 미련한 시간에서 벋어나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목적지에 도착해 본부석에 가서 접수를 하고 원고지와 필기구를 받아들고 그늘진 적당한 곳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다. 어떤 시제가 나올까? 시를 쓸까? 수필을 쓸까? 원고지 작성법을 생각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안내 방송이 나온다.
“ 금일의 시제는 ‘물’입니다.”
“ 제출 시간은 00시까지입니다.”
“ 시간을 엄수 해주시기 바랍니다.”
“ 징 소리와 동시에 시작 해주시기 바랍니다.”
연습지에 시제를 썼다. 두 가지를 말해준 것 같은데 한가지에만 꽂혔다.
‘물’에 대해 시를 쓸까, 수필을 쓸까 잠시 고민을 했다.
그냥 긁적이던 글 솜씨로는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선 짧은 시를 써보자 ’
어느 그릇에 담겨도 불평을 하지 않는 물, / 자기의 색도 없는...
이렇게 시로 써보려고 하는데 막혔다. 그래서 수필로 써 보자 생각하고. 목욕탕에 대형 고무 다라이를 놓고 수도꼭지를 조금만 열어 물이 졸졸 나오는 것을 받아쓰는 알뜰한 시어머니의 생활을 쓰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엄마가 오실 시간도 되어가고 약속한 장소로 이동도 해야 하기에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처음에 예쁘게 쓰던 글씨가 손이 흔들리면서 춤을 춘다. 마감 10분전에 겨우 마무리를 하고 제출했다.
물 자체에 대한 글 보다는 시어머니의 지나친 알뜰함에 대한 불만을 쓴 것 같다.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자유로운 점심시간이다. 일찍이 제출한 사람들은 벌써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엄마와 약속장소로 가고 있는데 보자기에 싼 도시락과 돗자리를 들고 오시던 엄마가 먼저 나를 알아보았다.
그 때는 손전화가 있는 것도 아닌데 용케도 잘 찾아오시다가 적당한 곳에서 만나게 되어 다행이었다.
가까운 그늘을 찾아 돗자리를 깔았다.
보자기를 펼치니 알미늄 노란 삼단 찬합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뚜껑 덥힌 제일 위 삼층 찬합에는 설탕이 뿌려진 토마토가 싱싱하고 달달한 냄새로 나의 입덧이 싹 사라지고 침샘을 자극했다. 이층 찬합에는 마늘종 볶음, 콩 볶음자반, 계란말이, 새우볶음, 오이 도라지무침이 군침을 돌게 한다. 마지막 일층 찬합은 완두콩 밥에 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밥알이 투명했다.
임신 5개월로 접어드는 시기 이지만 좀처럼 입에 맞는 식사를 못했는데 오늘은 여러 가지로 힘들어서일까 밥이 꿀맛이다. 내가 좋아하는 밑반찬들로 구성된 도시락, 색깔도 예뻐 눈과 입이 호강했다.
연초록의 마늘종은 초파일 즈음, 엄마의 생신 때 잠깐 나오는 찬거리이기에 항상 이맘때면 친정에서는 많이 해먹는다. 이시기가 지나 마늘종이 쇠지면 삭혀 고추장이나 간장에 장아찌를 담근다. 그것 또한 질리지 않는 밑반찬이다.
그 시절 엄마는 반찬으로 마늘종 볶음을 자주 해주셨다. 콩자반도 간장에 조리기 보다는 볶아서 딱딱한 식감을 양념간장으로 버무려 간이 베게해서 해주시면 씹을수록 고소함이 별미였다.
오십년이 가까워 오는 지난 세월 속에서 엄마와 나들이에서 먹어본 도시락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봄 철 막바지에 나오는 마늘종 볶음을 할 때마다 47년차 주부는 엄마의 맛을 내보려 하지만 잘 안 된다. 따라 할 수 엄마의 손맛은 머릿속에서만 맴돈다.
얼마 전에 콩을 볶고 양념장을 만들어 버무린 색다른 콩 볶음자반을 해보았지만 남편은 별로라고 한다. 그래서 나만의 반찬으로 엄마를 떠올리면서 꼭꼭 씹으며 추억을 먹었다.
학교 다닐 때 나는 도시락을 별로 싸가지고 다니지 않았기에 주부 백일장 행사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오신 고마움이 잊혀 지지 않는다. 엄마와의 추억을 사진으로 찍어두지 못한 것이 아쉽다.
더욱이 입덧이 심할 때 먹었던 엄마 표 도시락이었기에 지금까지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그 때를 기억하면 시로 써본다.
오월의 추억
달달하고 맵싸한 초록색 대궁 / 엄마의 생일, 초파일 때 쯤 / 짧게 선보이는 찬거리
펼쳐진 보자기 / 삼단 둥근 찬합에는 / 흰밥에 연두색 콩콩 뛰고
초록대궁엔 새우가 톡톡 / 토마토는 눈의 촉으로 침샘 자극한다
오월 글 행사 있던 날 / 엄마와 먹던 도시락 / 젓가락 붓질로 입 호강이다
어머니의 손맛 마늘종 볶음 / 반평생 지나도 / 오월 이맘때 추억의 맛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