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는 잘게 잘라야해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엄마는 시장에서 자두를 한바구니 사오셨다. 자두는 내 주먹만 했다. 너무 크고 빛깔도 진해서 그것이 자두 인지 몰랐다. 그 때 먹던 자두 맛은 지금도 그대로 일까?
수돗가에서 자두를 씻던 엄마는 우리들에게 한 개 씩 나누어 주셨다. 한 입 베어 물으니 과즙은 손목을 통해 흘러내리고 윗도리까지 튀었다.
“너는 칠칠맞게 그것도 제대로 못 먹니”
엄마의 꾸지람을 들었지만 맛은 엄청 맛있었다. 똑같이 먹기 시작 했는데 작은언니는 뚝딱 야무지게 먹었다.
그리고는 무슨 노래자랑에 나가면 일등 상품이 피아노라고 하며 출전해 보고 싶다고 한다. 학교에서 추천도 해주겠다고 했단다. 언니는 초등학생 때부터 합창반을 계속했고 중학생이 되서도 합창반에서 쏠로도 하며 노래를 아주 잘한다.
나는 언니가‘학교에서 추천 받을 정도이면 일등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자두 씨를 굴리면서 발라 먹고 있다가
“와, 우리 집에 피아노가 생기겠다! 꼴깍 ~ 칵”
아뿔싸, 자두 씨가 목으로 넘어 간 것이다.
“칵~악 ”
뱉으려는데 나오지 않는다. 몇 번을 더 해보았지만 숨만 막하는 것 같았다. 언니는 내 등을 탁탁 두드렸고, 엄마의 손가락이 내 입에 들어 왔다. 나는 입아귀가 찢어 지는 것 같고 숨이 막혔다.
“토해, 토해”
엄마의 절규 같은 소리는 들리지만 토해지질 않았다. 급기야 엄마의 손이 다 들어왔고 손가락으로 목구멍을 후비는 것이 느껴졌다. 그럴수록 입아귀와 목구멍은 더 아팠고 숨 쉬기가 힘들어 정신 줄을 놓을 것 같이 아득해졌다. 그렇게 전쟁을 치루고 자두 씨를 빼냈다.
빼낸 자두 씨는 피가 엉겨서 다시 자두가 되었다. 털썩 주저 안으며 엉엉 울었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너무 아픈데 피까지 보았기에 무서웠다.
엄마는 소금물을 타주며 물 양치를 하라 시키고는, 갑자기 북어를 꺼내 방망이로 두들겨 쪽쪽 찢어, 참기름에 달달 볶아 물을 부어 국을 끓이더니, 뜨거운 것을 내게 주면서 뜨거운 것을 먹어야, 상처가 빨리 아무니 다 마시라 하신다.
한 숟갈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번개가 번쩍, 지진이 난 듯 몸이 심하게 진저리를 친다. 따갑고 쓰리고, 아프다. 소금물 양치 할 때도 죽만큼 아팠는데, 이렇게 뜨거운 것을 먹으라니, 죽으라는 것인가 지켜보는 엄마가 무서웠다. 두세 숟갈 먹고는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어 삼키지는 못하고 입에 물고 있다 뱉었다. 그 국물은 피가 섞여 붉었다 또 울었다.
턱이 아파서 입 벌리기 어렵고 목도 붇고, 얼굴이 전체적으로 부었다. 거울을 보면 나 같지 않았다. 그런데도 엄마는 뜨거운 북어 국과 건더기 없는 국, 보리차를 자꾸 마시라고 했다. 그렇게 열흘 정도 지나니 목구멍이 쓰리고 따갑고 아프기 보다는 간지러웠다. 그 후에는 뜨거운 것을 마시면 목구멍이 시원해서 좋았다. 그래서 엄마는 뜨거운 것을 마시라고 했나보다. 그다음은 미음을 먹다가 죽을 먹고 일주일이 지난 다음에 밥을 조금씩 뜨거운 국에 말아서 먹던 여름방학 이였다.
세월이 한 참 지나 엄마 돌아가시기 전, 어느 해 자두를 사가지고 엄마 집에 가서 자두를 작게 잘라 드니며. 그때 사건을 이야기하니 기억난다며, 눈동자가 하얗게 돌아가고 목은 남자 목처럼 뽈록 튀어나와 큰일 났다 싶었단다. 아무 일 아닌 듯 이야기 하시며, 자두를 포크로 찍어 입에 넣고는 어금니가 없어 앞니로 오물오물 잡수셨다.
이글을 쓰면서 생각지 못했던 아픔이 자리한다.
그날 엄마는 손가락을 넣어 토하게 하려다, 졸지에 손을 입안에 쑤셔 넣어야 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입 크기보다 엄마의 주먹이 더 컸기에, 물려서 터지고 피멍이 들었던 엄마의 손이 떠올랐다. 엄마도 많이 아팠을 텐데, 그 손으로 뜨거운 국을 끊여서 먹여야 나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아픔을 참고 최선을 다하셨을 것이다. 그것뿐인가 식구들 밥을 지어 주어야하고 빨래를 했을 엄마, 내가 아픈 것 보다 더 힘들었을 엄마, 약을 바르면 무엇 하리, 금방 손에 물을 묻혀야하는데... 지금처럼 고무장갑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잊을 수 없는 자두 씨 사건이지만, 엄마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좀 미련하고 무식한 행동과 민간요법 이였지만 감사할 따름이다. 살아생전에 못한 말,
‘살려주셔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당신의 셋째 딸 잘 살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자두는 내겐 두려운 과일이 되었다. 해매다 여름이면 들려주는 레퍼토리, 딸은 말한다.“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백번은 들었으니 이젠 그만 하셔요.”그러면서 자기는 어려서 친구 집에 가면 자두를 통째로 먹는 애들이 젤 부러웠다고 한다. 자두를 아이들에게 사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지방으로 여행을 갔을 때, 그 곳 특산물 가을 먹자두가 피부에 좋고 특히 변비에 좋다는 말을 듣고, 한 상자 사다가 변비가 심한 둘째 외손녀 먹이라고 딸에게 전해 주며, 반드시 칼로 썰어서 씨 빼고 주라고 당부한다.
그 때 그 일로 턱관절이 약해 졌는지 질긴 것을 씹으면 턱이 아파서 오징어를 잘 못 씹 는다. 그런데 뜨거운 음식은 이때부터 의도적으로 좋아 진걸까? 뜨거운 국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야 뭘 먹은 느낌이 드는 식습관, 목구멍을 타고 뜨거운 것이 내려갈 때 쾌감이 좋다. 커피도 뜨거운 것이 좋아서 식기 전에 홀짝 마시고 뜨거운 물로 입가심하는 습관이 있다.
편도선염도 자주 붓고 역류 성 식도염, 위염이 있는 터라 뜨거운 것을 먹을 때마다 남편은 걱정한다. 적당히 즐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