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의 정도
문득 안부가 궁금한 분들이 있다. 그분들의 성함도 모르고 주 3회를 만나 가볍게 인사만 나눈 정도이다.
A님은 차분하고 얌전해 보이는 성격에 등이 약간 굽었고, B님은 활달하고 자기주장 강한 성격에 피부도 하얗고 자그마하다.
그 날은 수영장 끝나고 마트에 다녀올 계획으로 차를 가지고 갔다. 아쿠아 강습이 끝나고 주차장에서 나오는데, A님이 입구에서 나오고 계셨다. 차창을 열고 어디로 가시는지 같은 방향이면 태워 드린다고 하니 방향은 같지만 운동 삼아 걸어가신다며 극구 사양하신다. 성격이 너무 깔끔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차를 한 쪽으로 살살 저속운전을 했다.
그 후로 수영장에서 자주 뵈었다. 수영장 풀 안에서도 나와 같은 라인에서 운동하고 샤워도 거의 같은 자리에서 하시는 분이였는데 미처 몰랐던 것이다.
허리와 다리가 아파 서서 샤워하기가 힘들어서 앉아서 하시는데 샤워기 수도꼭지도 손이 닿기에는 높아서 내가 옆자리에서 할 때는 물을 틀고 잠그는 것을 도와드리고 등도 밀어 드리면 미안해 하시면서도 무척 고마워하신다.
B님은 운동 시간에 나왔던 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하는데 다른 분들도 따라 떼창을 한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소리가 울려서 시끄럽기는 하지만 어르신들이 즐거워하니 들을 만하다. 내가 샴푸세제를 미처 준비하지 못해서 B님에게 얻어 쓰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감사로 등을 밀어 드렸다. 그 후에도 남의 손이 가야 시원하다며 종종 등을 밀어 달라고 하시고 그럴 때마다 흔쾌히 밀어드리면 내 등도 밀어 주고 하는 관계가 되었다.
어느 날 A님 옆에서 샤워를 하며 수도꼭지를 조정해 주고 등을 밀어드리는데 A님이 B님의 이야기를 하신다. 같은 동네에 살고 노인정도 같은 곳을 다니고 수영장에도 오시는 좋은 사이었다고 하신다.
그런데 B님이 자기가 하지도 않은 말을 퍼뜨리고 있다고 하시며. 혹시 B님이 자기에 대해 뭐라 말하면 믿지 말라고 하신다. 수영장에서 두 분이 이야기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서로 친한 사이인지 몰랐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지난 강습 날 탈의실에서 B님과 나는 옷장이 나란히 옆이었다. 옷을 입기 전 B님의 등에 바디로션을 발라드리는데 B님이 내게 말을 건네신다.
"A노인네 오늘 안 나왔나? 안 보이네 "
하며 그 노인네는 자기가 한 말을 안했다고 시침이 뗀다며 좋지 않게 이야기 하시기에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두 분이 서로 이해하시고 화해하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고 보니 A님도 B님도, 내가 자주 등을 밀어 드리는 분이다. 아마도 내가 편해 보여서 일까? 아니면 내가 정말 어르신들에게 대하는 태도가 친절해 보여서일까? 두 분의 말씀에 부담스러웠지만 누구의 말도 못들은 척 함구하고 두 분을 편하게 대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두 분은 서로 서먹한 표정으로 지나치는 모습을 몇 차례 보았다.
그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맘이 석연치 않았다. 한편으로 나의 오지랖이 꿈틀대고 있었다. 어찌 할까 두 분과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들어 드릴까하는 생각이 생겨서 수영장 갈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에이, 눈 딱 감자.' 두 분의 문제에 어설프게 개입하면 더 악화되어 상처 받으실 수 있으니 말이다.
나이 들수록 내 주장만을 내세우는 경우가 있다. 나도 가끔 그렇다.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닌 것을 그 당시에는 파르르 화를 내고 돌아서서 후회하고. 아마 그 분들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그래서 제삼자를 통해 자기의 입장을 표명해서 화해하고 싶어서 내개 그렇게 이야기 하셨을까?
'도움을 드릴 것 그랬나?' 마음이 쓰인다.
주 3회 수영장에서 뵙는 분들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까지 유지하는 것이 현명한지. 대인 관계에서 ‘적당히’ 가 참으로 어렵다. 특히나 연세 드신 분들은 행여 젊은이들이 노인이라고 상대를 안 해주나 하는 오해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조심스럽다.
이후 나는 개인사정으로 몇 달을 수영장에 못나가 되었고 이어서 코로나가 발생하여 수영장을 닫는 바람에 그분들의 소식을 알 수 없다. 건강히 잘 계시는지요. 화해는 하셨는지요? 뵙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