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나를 위한 음운이 남지 않았을 때
나도 언젠가 기록이란 걸 꿈꾸지 못하는 나이가 되겠지. 한숨을 들이쉬고 한숨을 뱉는 것만으로도 지쳐, 있는 그대로 삶을 바라보는 때가 올 테야. 그제야 비로소 어떤 의미도 붙이지 않고 발음하는 법을 알게 되겠지. 내가 너를 이쁘다 하는 것은 단순히 너를 부를 음소가 그 외에는 없어서이고, 내가 주호라 불리는 것도 나를 위해 남은 음운이 그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우리 둘의 사이를 사랑이라 하는 이유가 더 적합한 음절을 찾기 귀찮기 때문이 될 때가 분명 찾아올 거야. 그때를 상상하는 것은 젊음을 사랑하는데 무척 도움이 되지. 가만 보면 미덥잖은 게 탱탱한 피부거든. 어떤 미사여구를 붙이더라도 어린 건 단순히 불붙지 않은 장작더미야.
머리가 나빠지는 것의 장점에 대해 생각해 봤어. 보면 볼수록 키가 자라는 것과 유사하더군. 이전을 상상할 수 없고 - 키가 작은 사람은 깔창이라도 끼지만, 곰곰이 따져 볼수록 개인에겐 만족만 있다는 것을 - 키가 덜 컸으면 후회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지. 또 나이가 든다고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야, 노력해서 얻어내야 할 성취지. 영양가 있는 식단을 먹고, 제때 잠을 자는 청소년들만 자신의 키를 온전히 얻듯이 꾸준히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잠을 설친 청년들만 좋은 영감이 될 수 있어. 80년을 또렷하게 살아온 할아버지-그는 얼마나 예민할지!-가 어떻게 아이들을 귀여워할 수 있겠어. 팔십 년의 세월 중 반절은 까먹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반절은 기억하지 못할 깜빡이는 영감만이 아이들에게 멍청한 사랑을 줄 수 있지. 아이들도 이사금의-그들의 꽉 찬 이빨만큼이나-명징한 조언보단 잇몸만 남은 할아범의 오물오물한 말을 더 사랑할 걸 - 놀릴 생각만 가득한 이 못난 천사들 같으니.
그래 정했어. 그때가 되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만한 문장을 뱉고 신나서 춤을 추다 자리에 앉으면 까먹는 거야. 구시렁대며 다시 산책을 나가고 곧 신이 나서 춤을 추며 들어오고. 그렇게 무엇도 적지 못한 채 4시간 정도 춤을 추고 나면, 힘이 드니까 같이 파스타를 해 먹자. 그것도 이탈리아 정통 방식대로! 판체타를 잘게 썰고, 위에 페코리노 로마노를 잔뜩. 페코리노 로마노를 갈아 넣고 위에 판체타를 잔뜩. 매주 토요일마다 먹으면서도 매번 ‘이런 까르보나라는 처음이야’ 놀라는 거지. 그런 까먹음들마저도 웃을 수 있는 영감이 될 거야. 번뜩이고 새로워서 영감들이 대우받는 것은 아니니까. 웃음은 호흡의 가쁜 상실이고, 다음 웃음이 될 호흡은 그 결손 덕에 생기니까. 나는 늙을 필요가 있어, 다음 청춘들을 위하여. 시간이 흐르고 멍청해질수록 나는 더욱 이 선택을 사랑할 수 있게 되겠지! 점점 더 가파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