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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룡 Sep 28. 2024

무서운 게 딱 좋아!

- 2024 07 19 살바도르 클럽 남량 특집

무서운 게 딱 좋아!


             새벽 효에 고요할 정. 효정은 집에 온지 일주일 차 되었다. 키는 발꼬락을 쭉 피면 간당간당하게 50.1cm. 몸무게는 2.9kg. 평균치보다 살짝 작은 아이라 별절차 없이 퇴원을 마치고 후곡의 한 아파트에 입성했다. 일 미터 남짓한 높이의 플라스틱 유아용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것이 그녀의 생업이었다. 아직은 점점이 쌀벌레가 죽어있는 천장만 보이지만 삼 개월 후면 좌우로 고개를 까딱이기 시작할 것이고 효정의 세상은 그것만으로도 족히 세 배는 확장될 것이었다. 언젠가 글을 읽게 되고, 또 그때까지 한문이 유효하다면 자신의 머리 맡에 붙은 글귀도 이해하게 되리라.


             曉靜. 부적 같이 노란 한지에 획 하나하나 공들여 적힌 문구는 다름 아닌 그녀의 이름이었다. 기섭은 이영과의 신혼집에서 가훈을 적은 이래 처음 붓을 잡았다. 십칠 년 사이에 먹을 가는 팔은 힘에 부쳤고, 손끝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44세 기섭과 38세의 이영은 노산이었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지만 인류의 체력은 정직하게도 이십년 전의 사십대의 지금의 그들 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그들은 이렇게 아이를 늦게 나을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계획되지 않은 축복도 아니었다. 기섭은 칠남 이녀 이영은 사남 삼녀의 대가족에서 끼여 자랐다. 둘다 막내 축에 들었기에 불편한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늘 외동은 자식교육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던 터였고, 본인들처럼 많이는 아니더라도 둘셋 정도는 기르자고 연애할 적부터 입을 맞추었던 것이다.


             두려움. 원초적인 두려움만이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때는 바야흐로 십육 년전, 준용이 탄현에 강림하던 날이다. 굳셀 준에 용 룡. 그는 이름대로 실로 비상했다. 여섯 명의 형누나 집에서 총 일곱 명의 조카를 돌봤던 기섭은 첫 아이가 두렵지 않았다. 여섯달은 밤잠을 설치지만 통상적으로 예상 가능한 범주를 넘어서지 않았으며 GP 출신의 스물여덟 청년에게 교대근무와 철야는 익숙했다. 이영의 어깨를 토닥이며 준용이 핀란드산 원목침대 - 곧 다음 아이의 것이 될 - 에서 잠들기를 기다렸다. 눈꺼풀이 감기기 시작한 아이는 뉘어주면 곧 쌔근거리기 십상이었다. 이제 두세 시간씩 교대로 눈을 붙이면 내일 출근에 지장이 가진 않으리라. "곧 저 검지 손끝만한 입주름에 힘이 풀리고 침이 몽글밸거야. 울어재낄 땐 악마 같아도 잘 땐 얼마나 귀여운지." 그러나 준용은 그날 밤 두 시간 이상 귀엽지 않았다.


             준용은 지독하게 기운 넘치는 아이였고 잠시라도 부모와 떨어지면 악마로 돌변했다. 유모차에 태워 복도를 오가면 조용해졌지만, 들어서 침대로만 옮기면 그는 지옥을 탄현으로 불러왔다. 기섭은 현관에서 유모차에 기대 잠드는 날이 많았다. 이영은 한달 차에 지병이 도져 병원에 입원했다. 그들의 수많은 형제자매가 아니었다면 탄현은 준용을 견디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준용이 네 살이 되어 안정기에 들었을 때에도 기섭과 미영은 차일피일 둘째 계획을 미루게 되었다. 심지어 기섭은 콘돔을 빼고 하려는 순간 고막이 악마의 울음소리로 찢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이 부부가 준용의 공포를 이겨내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십육 년이었다.


             둘째까지 생각해 큰 맘 먹고 구매했던 프리미엄 침대는 탄현에서 후곡으로 넘어오며 처분했다. 그들은 다리 밑에서 바퀴가 나오는 모델을 싸게 당근으로 구했다. 44세의 기섭은 현관에서 자기엔 허리가 아팠다. 자신 때문에 부모가 이렇게 치를 떠는 것을 아는지 준용은 효정이 생긴 이후 부쩍 어른스러워졌다. 이영의 숙면을 위해 10시 이후엔 발걸음을 조심했으며, 자신도 수험생활을 시작하기 전엔 육아를 적극적으로 도울 것을 공표했다. 그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밤잠이 없었으며 그런 쌩쌩한 체력은 또다른 악마를 상대하는데 큰 전력이 될 터였다. 기섭은 그런 아들이 대견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효정을 볼 때마다 준용의 갓난아기 시절이 떠올라 그를 마냥 이뻐할 수는 없었다. "너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 동생은 아빠, 엄마가 볼 테니까 웬만해선 거실로 나오지 마."


             이영은 비타민 계의 에르메스, 오쏘뮬을 한 캡 들이켰다. 또다시 기섭 혼자 전장에 보내지 않으리라. 양가의 어머니 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셨고, 주변 친척들과는 떨어져 살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그 둘만의 싸움이었다. 다행히도 효정은 오늘까지 별탈 없이, 갓난아기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뉘일 때마다 칼같이 잠에 들었다. 게다가 한 번 누웠다하면 네다섯 시간은 내리 곯아떨어지니 기섭은 딸이 천치는 아닐까 걱정했다. 혼념의 붓글씨가 정녕 효력이 있었던 것일까? 이영이 찾아간 무당의 굿이 효험이 있었던 것인가? 부부는 예상보다 수월한 일주일을 보냈고 오늘까지 효정이 잘 잠에 든다면 간단히 축하파티를 즐길 생각이었다. 둘은 웅크려 앉아 작은 울타리 너머로 효정의 눈꺼풀이 닫히길 그리고 침방울이 새어나오길 기다렸다. 모스카토 한 병을 시원하게 칠링해두었고 오늘을 위해 두바이 초콜릿도 샀다. 이대로 그녀가 잠에 들기만 한다면... 이영은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하나님, 부처님, 장군님 누구든 좋으니 이 귀여운 아기가 당분간 계속 귀여울 수 있기를. 기섭은 근 이주일간 신경이 곤두서 음주는 생각도 못했기에 모스카토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귀에 종소리가 들렸다. 아멘. 드디어 우리 가정에도 천사가 깃드는구나. 실제로 어깨에 따스한 손길이 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빠! 이 밤 중에 둘이 뭐하는 거예요? 저도 같이 기도할까요?"


             준용의 미처 변성기를 끝내지 못한, 걸걸하면서도 쇳소리 낀 기도문은 여린 카스트라토의 음성이 천사를 부른 것과 달리 악마를 불러내기에 충분했다. 기섭과 이영은 처음 준용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것만이 살인을 면할 수 있는 길이었기에. 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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