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의 <춤>처럼 속세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다 함께 손잡고 행복하게..
20년 만에 고등학교 동기 모임에 초대받았다. 우리 사회의 척추 역할을 하는 40대 중반이라 그런지 직장에서 간호부장, 5급 공무원, 중소기업 임원진 등 각자의 삶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 친구들이 입고 온 의상은 화려했다. 유명 백화점에서 구매한 고가의 옷에 굵직한 금귀걸이와 금목걸이, 손가락에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풋풋한 추억 이야기는 없다. 전교에서 상위권 성적을 받은 자녀 이야기와 승진한 남편 이야기, 시댁에서 차를 바꿔준 이야기만 오갈 뿐이다. 많은 대화가 오갔지만 부도내고 도망간 시아버지, 늦은 밤 돈 벌어야 한다고 일하러 나가셨다가 머리를 다쳐 지금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시어머니 이야기는 꺼낼 수 없었다. 사실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 함께한 소중했던 추억을 그리지 못한 아쉬움과 그들의 대화 앞에서 작아진 내 모습이 초라했을 뿐이다. 몇 달이 지난 후 전화 한 통이 왔다.
“수진아, 사실 우리 작은아이는 공부를 못해서 걱정이야. 서울에 있는 대학을 보내고 싶은데 성적 때문에 힘들어. 그래서 미술을 시키고 싶은데,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너 미술선생이니까 잘 알잖아”
‘공부를 못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지 못하는 아이가 미대에 진학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까? 왜 우리 삶은 허영심에 가득 차 있고, 나는 왜 그런 이야기에 작아질까.’ 깊이 고민했던 날이었다.
앙리 마티스의 명작 <춤Ⅱ>은 춤을 추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고민거리고 가득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현실의 관계가 불완전하고 껄끄러우며 그런 관계가 일상적이라고 인정한다.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거절과 굴욕에 유쾌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알려준다. 그의 그림은 단순히 춤을 추는 장면이 아니다. 그림 속 인물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원을 그리는 모습은 개인과 집단 간의 연대와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간관계의 유대감과 협력의 중요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엘리트적 관점으로 성공한 삶도 중요하지만, 앙리 마티스의 그림처럼 세상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서로 손잡고 원을 그리며 함께하는 삶을 살 수는 없을까? 빛의 삼원색은 빨강, 초록, 파랑이다. 마티스는 삼원색을 통해 세상의 빛이 되려면 함께하는 삶에서 가장 기본은 인간다움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하다.
세상에 예쁜 것만 있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미술 작품에 감동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런 작품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마티스처럼 누군가는 야수라고 비웃어도 관습과 속세의 허물을 벗어 버리고, 밝고 생동감 넘치게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가끔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마음을 움직여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