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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정작가 Feb 20. 2024

우리는 왜 자꾸 오판하는가

한 고등학교에서 신규 남교사를 1학년 담임으로 배정하였다. 신규 발령을 받은 교사는 교장과 간담회 할 때 너무 긴장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학급경영 방법과 수업지도 계획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든 업무를 실수 없이 처리하는 완벽주의자 교장에게 신임 교사는 몹시 불안해 보였다. 입학식 날 학생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등교한다. 어떤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신학기가 되면 학부모와 학생들은 담임을 궁금해하며 기대를 한다. 

“안녕하세요. 올해 신규 발령을 받은 과학 교사 김지훈입니다. 첫 학교라 아무것도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지도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담임이 인사를 할 때 학생과 학부모 얼굴은 싸늘했다. 


“고등학교가 얼마나 중요한데 신규교사를 담임으로 배정하냐?”

“학교 관리자들 담임교사 배정을 너무 성의 없게 한 거 아니야?”

“학교 선생님들 담임하기 힘드니까 신규교사한테 미뤘구나”

“신규 선생님인데 대학입시에 관해 알기는 할까?”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첫 수업 시간, 학생들은 배우려는 자세가 아니라 수업을 어떻게 하는지 감시자의 눈빛으로 교사를 보았다. 신규교사는 첫 수업에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실수했다. 학생들은 역시 신규 선생님이라 수업을 못 한다며 하교 후 부모님께 전달했고, 학부모들은 학교로 찾아와 신규교사를 담임으로 배정했다고 항의했다. 교장은 해당 교사를 불러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한 후 수업에 들어가라고 지도했다. 김지훈 선생은 교장에게 죄송하다는 말 이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잘 새겨듣고 수정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학생은 경험이 부족해서 실수한다. 열심히 공부해도 실수로 한 문제씩 틀린다. 신규교사는 처음 수업에 실수하고, 경력이 많은 교사는 자신이 다 알고 있다는 착각으로 실수한다. 학부모도 자녀의 고등학교 입학이 처음이라 걱정이 앞서 차분히 기다려주지 못하고 실수한다. 


그러나 때로는 경험과 사고방식의 경직이 오판을 낳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살아온 배경, 가정, 학력, 직업, 병력 같은 모든 판단 조건을 알 수도 없지만 이런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려면 많이 노력해야 한다. 그때 뇌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니 피곤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림짐작으로 평가한다. 이것이 첫인상이다. 여러 정보가 없더라도 그동안 경험이나 지식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렇듯 시스템 1을 사용하여 판단하는 것을 휴리스틱(heuristics)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휴리스틱이 오판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휴리스틱에 휩쓸려 올바른 판단을 방해받는다.


나는 경력 17년 차 교사다. 보통 학기 초 학생들과 학부모를 만나면 이렇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교직 경력 17년인 미술 교과 담당 정수진입니다. 고등학교 교사 경력 12년 정도, 중학교 교사 경력 5년 정도 됩니다. 저는 학교생활기록부도 매우 잘 쓴다고 자부합니다. 제가 지도한 아이들이 명문대에 많이 진학한 사실이 제 말을 증명해 줍니다. 또 제가 주로 한 업무가 생활지도라서 아이들 학교생활을 전반적으로 잘 지도할 수 있으니 자녀의 고등학교 생활을 믿어주셔도 좋습니다.”


학생과 학부모는 환하게 웃으며 “선생님 올 한 해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대답한다. 이 상황에서 어떤 편견이 있었을까? 물론 신규교사보다 학교생활기록부를 잘 쓰고,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내가 인정받는 이유이기 도하다. 그런데 담임교사에게 과연 대학입시 정보, 수업 지도력, 생활지도 능력만 필요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지훈 선생은 내가 수년간 조금씩 잃어버리고 있는 ‘열정’이 가득한 교사다. 신규교사의 열정은 아무도 따라 할 수 없을 만큼 뜨겁다. 김지훈 선생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교무실에서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열정이 가득하여 학생들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고 항상 담임을 맡은 반 교실에 머문다. 쉬는 시간에 학생들과 어울려 이야기하고, 학생 식당에서 아이들과 같이 밥을 먹는다. 가끔 점심시간에는 남학생들과 축구를 하며 친분을 쌓았다. 


이렇게 아이들과 친밀관계를 형성한 이후 학생들은 교사의 실수를 탓하지 않았다. 실수를 안 한 것은 아니다. 학생을 향한 열정과 사랑으로 작은 실수는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관계가 된 것이다. 또 김지훈 선생 반 교실에서는 학교 폭력도 없었다. 교사가 항상 교실에서 함께 있으니 학생들이 선생님 앞에서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경력 17년 차인 나도 실수한다. 그러나 난 순발력으로 실수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스스로 수습한다. 신규교사는 경험과 순발력은 부족하지만, 학생을 향한 열정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규교사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김지훈 선생을 담임교사에 배정한 이유는 학교 졸업생이기 때문이다. 모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어 돌아온 훌륭한 사례이기에 본보기로 충분했다. 교사 경험이 없다는 단점을 도우려고 짝꿍은 경력 많은 교사로 배치하였다. 모르는 것은 짝꿍에게 질문하며 첫 담임 임무를 훌륭하게 해냈다. 학기 초 학생과 학부모의 신중하지 못한 편견과 민원이 없었다면 아름다운 첫 교직 생활로 기억되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여교사다. 키는 160센티미터도 안 된다. 작은 키에 살이 찌면 마치 동글동글 굴러가는 감자처럼 될 것 같아서 체중 관리를 열심히 한다. 덕분에 내 체구는 더 작다. 요즘 키가 큰 남자 고등학생은 180센티미터가 넘고 체격도 크다. 최근 5년간은 계속 생활지도 업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7, 8년 전만 해도 키도 작은 여선생이 아이들 생활지도나 제대로 할까 하는 편견으로 해당 업무를 주지 않았다. 


학교에서 학교 폭력과 생활지도 담당 업무는 교사들이 기피하는 업무라 나 또한 아쉬운 부분은 없었다. 다만 내가 힘들어서 거절하는 것과 성별과 겉모습으로 제외당한 경우는 다르다. 나는 키가 작은 여교사는 남학생 생활지도를 못 한다는 편견을 깨버리고 싶었다. 학생들 생활지도가 쉽지는 않다. 가끔은 키 큰 남학생들이랑 의견 차이로 인해 둘 다 서서 대화하면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학생들은 나를 아래로 흘겨보며 “제가 안 그랬는데요?”라고 말하면, 나는 위를 올려보며 “이런 증거가 있는데, 확실한 말이니?”라고 되묻지만, 내가 학생들 기에 눌리는 것 같은 느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후 나는 학생 생활지도를 할 때는 복도에서 서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교무실 또는 상담실에서 학생들과 마주 앉아 내 의자의 높이를 살짝 높여 눈높이를 비슷하게 맞춘 다음 대화로 풀어간다. 


가끔 예의 없게 말하는 학생들과 단호한 대화가 필요하면 학생은 의자에 앉아 있고, 나는 일어선다. 눈높이의 차이만 변화되었을 뿐인데 생활지도의 효과는 매우 달랐다. 또 예의 없는 행동, 친구를 괴롭히는 행위, 학업 분위기를 방해하는 행위 등 잘못된 행동들은 매우 많지만, 학생들은 저마다 이유가 있다. 선생님이 싫어 예의 없이 행동한 이유, 친구가 싫은 이유,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은 수백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물론 이유가 있다고 잘못된 행동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학교에서 누군가 한 명은 자신의 행동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만 해도 학생들의 분노는 줄어든다.


“아.  친구가 뚱뚱하다고 놀려서, 너무 화가 나서 의자를 던졌구나.”

“나 같아도 너무 화나서 의자를 던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 같아.”

“그런데 의자를 던지는 방법 말고 다른 문제해결 방법은 없었을까?”


나는 이렇게 학생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대화를 시도하고 학생 스스로 잘못을 느끼도록 유도한다. 때때로 아이가 너무 많이 화가 나 있거나, 대화를 시도하면서 내가 화가 날 때는 잠시 대화를 멈추고, 곧 수업 시작이니까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점심시간에 다시 이야기하자며 잠시 대화를 멈춘다. 몇 시간 후 아이는 자신의 행동을 다시 생각해 보고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차분히 생각해 보니 저도 문제를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그런 말을 들었을 때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한 감정이야.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너에게 달려있으니, 이제 조금만 더 성숙한 방법으로 해결하는 멋있는 사람이 되어 보자!” 


이후 놀린 친구와 의자를 던진 친구 모두 사과하여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릴 뻔한 사고는 원만히 해결되었다. 이 사례에서 문제해결 방법을 살펴보자. 키가 작은 여교사는 생활지도를 못 한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리더들이 이런 편견에 사로잡혀 있으면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이런 편견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신중한 관찰력과 통찰력은 필수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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