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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대성 Jan 09. 2024

5.내 인생의 Fourth Stage

I think I'm 교회rised

내 인생의 4단계 스테이지는 교회란 곳이다.

난 원래 종교와 관련이 많을 팔자였던거 같다.

군대에서 자대배치 받을 때 머리를 빡빡으로 깎았는데 그때  외모가 불교적으로 생겼다고

한동안 불교 관련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모두가 빡빡이 였는데 왜 나만 불교적으로 생겼다는지 당췌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렸을 적 신례원 할머니집 놀러 가면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방이 있었다.

대감님방이라는 곳인데

내 또래 꼬마 사촌들은 거기 들어가면 죽는 줄 알았고 어른들도 꺼름직하게 생각하는 거 같았다.

난 진짜로 대감님방 이라길레 할머니가 따로 외할아버지 말고 다른 대감님을 데리고

사는 방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느 날 심심해서 몰래 함 들어가 봤다.

정갈하게 치워진 깨끗한 방에 

약간은 무섭게 보이는 할아버지와

고깔모자를 쓴 삼신할머니,

역시 무섭게 생긴 장군도 보였고

어린이와 호랑이도 있었다. 

 그림들 가운데는 신당이 있었다.

신당에는 쌀도 있었고 돈도 있었고 

웃기게 과자도 있었다.

조그만 불상들이나 얼룩달룩한 장신구들도 있었다. 그리고 한쪽 바닥에는 장구, 징, 꽹과리 등 악기들이 모아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난 그 방에 혼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살짝 무서운 느낌이 오히려 긴장도 되고 즐길만했다. 하나하나 궁금하고 호기심이 일기도 했으나 뭐 하나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고

왜 그런지 다들 부끄러워하는  

회피하는 분위기였다.


경진이가 늘 생각났다.

그 아이가 나를 보고 웃어주는 게 좋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 느낌과 감정이 좋았던 거 같기도 하다.

5학년부터 반이 갈라진 후 자주 볼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경진이를 생각하며 음악 듣는 게 너무 좋아 혼자 음악 듣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음악을 들으면 경진이와 스펙타클한 장면들이 상상으로 연출이 되었다.

꼭 구체적인 장면들이라기 보단 그 무드가 자연스레 만들어져 나에게는 음악듣는 일이 마약 (당시 일부 애들한테는 마약은 없었고 본드가 유행이었음. 난 본드대신 자신있게 음악을 택했음) 같이 중독성이 강한일이 되어갔다.

영화 포레스트검프에서 포레스트 여자친구 제니Run! Forest, Run!

이라고 외친 이후 포레스트가 마치 뛰는 거에

환장한 놈처럼 뛴 것 같이 

나도 경진이의 미소를 생각하며 

환장한 놈처럼 음악을 들었다.

조용필 음악은 이미 섭렵을 다했고 집에 굴러 다니던  이런저런 허접 음악 듣다 옆집 새댁이 듣던 테이프들까지 들었다.


이프들이 어떤 루트로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유행했던 팝음악들이 수록되어있었는데 

그동안 들어왔던 가요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음악들이었다.

Duran Duran의 New moon on Monday와 킴칸스의 Bette Davis Eyes 그리고 Asia의 Don't Cry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Don't Cry가 가장 좋았다.

힘찬 리듬의 록풍의 팝음악인데

어렵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웠다.

기타 리프와 존웨튼 특유의 목소리가

너무나 잘 어우러졌다.

Don't Cry 말고도 The smile has left your eyes라는 노래도 틈만 나면 들었는데

Don't Cry를 들으면 힘이 솟구치며 기분이 좋아졌고 The smile을 들을땐 경진이가 막 생각나면서 멜랑콜리한 느낌이 나를 위로해 주는듯 했다. 

 마음을 알아주는건 음악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난 음악에 깊이 빠져

들어갔고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을 태세였다.


그런 와중에 꼭 배우고 싶은 게 하나 생겼다.

기타였다.

음악을 듣는 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만약 내가 기타를 치며 조용필 노래 정도가 아니라 Asia의 Don't cry를 부른다면 너무 멋있어서 경진이가 나랑 친구 하자고 할 것이 분명한데

도데체 배울 방법이 없었다.

기타를 살수도 학원을 다닐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왜 못 사고 학원을 못 가는지는 

나의 전편 글들을 참고하면 된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앞집에 뚱땡이 형이랑 멀쑥한 형  형제가 살았는데 그쪽 집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형들에게 접근했다. 

같이 딱지먹기를 하자고도 하고 구슬먹기도 했다.

두 형제의 미심쩍은 협업으로 인해 나는 주로 잃었지만 그렇게 아깝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더 큰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가깝게 되어 자연스럽게

형에게 부탁을 했던 거 같다.

보니까 뚱땡이형이 좀 더 접근성이 쉬어 보여

형에게 기타를 가르쳐달라 했다.

형은 기꺼이 수락했는데 조건이 있다고 했다.

교회를 같이 가자는 거였다.

그 조건이 나에겐 너무나 식은 죽 먹기여서

기꺼이 수락했다.

아뿔싸!

이 협상이 내 인생에 어떤 치명적 영향을 줄지

그때 누가 알았으랴!


교회는 과연 멋진 곳이었다.

외할머니 신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근사했다. 우선 그다지 큰 교회는 아니었지만 내가 보기엔 회 층고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높았고 강대상과 십자가도 품위가 있었다. 장구와 징은 교회의 피아노와 오르간 하고는 쨉이 않됐다. 거기다 형들이 가지고 있는 기타도 다섯 개가 넘는다. 그 기타들로 예배 때마다 다양하게 반주하고 노래를 불렀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결정적으로다 예쁜 누나들과 함께 예배를 본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웃음이 삐죽삐죽 나올 정도로

기쁜 일이었다. 

때는 이때다 하면서 그동안 틈날때마다

조용필 노래로 연습했던 나의 노래 실력을 폼내면서

찬송가를 불렀다.  

주변에서 그런 나를 은근히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특별히 예쁜 누나가 너 노래 잘한다고

예뻐해 주기라도 하면 더 열심히 노래했다.

나는 교회라이즈드 되어갔다.

설교란게 좀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그것만 잘 참으면 나머진 천국이었다.

이 천국이 죽어서도, 믿음으로 구원받았기에, 계속 이어진다니 참말로 감사했다.

그래서 믿고 또 믿었다.

이때가 내가 중 2였다.



https://youtube.com/watch?v=Fxe3czthF50&si=hFnGZmRJBQlVHa3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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