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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대성 May 06. 2024

7.그날 아침 논길

롯데 매니아 705

1월 22일 여섯 번째 글 쓴 이후 정확히 100여 일이 지나 끼적거려 본다.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드라마틱한 100일을 보낸 거 같다. 1회 '모던클로이터를 시작하며'의 제목처럼 모던클로이스터 건축 마무리를 짓는 기간이었고 모든 나의 오디오들과 lp들을 옮기고 셋업해야 했으며 비지니스 관련 준비해야 할 것들, 또 이런저런 넘어야 할 산들 수백 개를 이 기간에 넘어야 했다. 거기다 꽃분이 마저 순식간으로다가 위염전이라는 무시무시한 병에 걸렸고 치사율 95%라는 그 병에서 살아나는 서스펜스 가득한 과정까지 덤으로 경험하는 환타스틱한 기간이었다. 소수의  독자들로부터 "왜 웃긴 글 더 않냐?"며 항의를 받기는 했으나 그 정도의 항의로는 다시 글을 쓸 만한 여력이 안 됐다. 허나, 이젠 어느 정도 정리도 됐고 또 써야 할 이유가 있어서리 정신 차리고 기록을 이어갈 생각이다. 자 그럼, 다시 35년 전으로~!


드디어 나를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 줄 오디오를 사러 가는 날이다. 그 주인공은 롯데 파이오니아 705 매니아 컴포넌트 시스템이다. 뭔 이름이 이렇게 기냐 할지 모르지만 모르는 소리 하지 마시라. 원래 좋은 오디오일수록 이름이 긴 법이다. 자세한 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암튼 그걸루다가 결정하기 위해 아마 두 달 넘는 시간 동안 시장조사는 물론 온갖 상상과 지식을 다 동원하여 선택하였다.  거기엔 친절한 여사장님의 미소도 한몫했지만, 그보다는 지금 와서 말하는 건데 중요한 게, 고가도 아닌  70만 원짜리 전축 하나 사는데 인류역사상 나만큼 에너지와 시간, 집중력 등을 발휘해서 준비하고 고민하고 상상하고 다시 고민해서 사는 놈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보통 싸가지 없는것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은데 이를테면 '이런 싸가지 없는 ㅇㅇ!' 이런 말 친숙하지 않은가? 주변에 싸가지 있는 들에 대해서도 자주 말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저자식 저거 싸가지 아주 많은데!'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 김에 저놈 태도 말해본다면, 어떤가? 싸가지가 많이 그것도 아주 많이 보이지 않는가? 땐 몰랐지만, 아니, 오히려 그땐 부끄럽게 생각한 쪽 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이미 그때부터 싹수가 아주 많이, 매우 새파랬다. 


뭐 이런 거다.

우선 온양에 있는 전축이 있는 대리점은 다 방문한다. 쉬운 거 같지만 이게 그냥 방문이 아니다. 고삐리가 학교 끝나고 가방 메고 두리번거리면, 뭐 아시지 않는가? 무시받기 가장 좋은 조건인 거.

무시 이런 거에 쫄리면 싸가지가 없는 것이다. 인켈, 태광, 롯데, 삼성, 금성, 대우, 아남 신기하게도 당시 온양에 대리점이 모두 있었다. 가서 음악 함 들어 보자는 말은 당연히 못 했지만 안 가고 계속 기웃거리고 한 5분 정도 뚫어지게 오디오를 보고 있노라면 함 들려주는 대리점도 있었다. 소리는 못 들어도 오디오 카탈로그는 꼭 챙겨 왔다. 그때 모았던 오디오 카탈로그가 무려 100장이 넘는데 미국 유학 다녀왔더니 전국 버리기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신 우리 아버지가 후딱 버리셨다는...


난 오디오가 참 멋있었다. 큰 등치에 여러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컴포넌트의 불빛들이 아른 아른 거리고 거기에 근사한 음악들이 입체적인 소리를 만들어 주는데 어찌 안 멋있을 수 있으랴? 불빛들이 현란하고 희한할수록 나의 가슴은 더욱 쿵쾅 거렸고 막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디오는 역시 소리지'하면서 마침 음질 절대주의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던 롯데 매니아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당시 그 유명한 미국 J*L사의 스피커와 맞짱을 떴는데 이겼다는 롯데파이오니아 측 주장이 날 강하게 움직였다. 듣기로 J*L이면 세계 최고 스피커여서 웬만한 국산 스피커에 무조건 열 배 이상 좋은 소리가 난다는데 롯데 매니아 스피커가 그 J*L 스피커를 그것도 아주 큰 점수 차이로 이겼다니 어찌 신뢰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고민이 생겼다. 당연히 대리점 사장님 말씀대로 음질이야 J*L사를 이긴 롯데 매니아가 최고겠지만 거기엔 현란한 불빛들이 없었다. 왜냐하면 70만 원에 사려면 딱 스피커, 앰프, 덱크, 튜너, 턴테이블만 포함이다. 웅장하게 보이려면 십오만 원짜리 이열 장식장은 반드시 사야 했으며 거기에 현란함은 물론 신기한 불빛을 보여주는 그것도 타원형의 여러 색들이 음악에 맞추어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리버브 앰프, 저음부터 고음까지 무려 10단으로 조정해서 자기가 원하는 소리를 만들 수 있는 이퀄라이져, 잡음도 전혀 없으며 클래식 음악에 너무나 적합한 cd플레이어, 가끔 내 기타를 크게 울려줄 마이크 앰프 등은 결코 허락이 안 되는 작금의 현실이 너무나가슴이 아팠다.


오디오를 사러 가는 그 아침길 기억이 생생하다.

며칠 '아들과 함께 얘기하는 시간이 참 행복해'라고 말씀하신 그 어머니가 35년 전에 나를 데리고  나름 꽃단장을 하시고 걷던 그 논길이 되시겠다. 그거 아시나? 나의 초등학교부터 대학 졸업할 때 까지도 졸업식에 단 한 번도 부모님이 오시지 않았다. 내가 오지 마라 했다. 그러니 학교에 함께 간다던가 비 오는 날 우산이나 도시락 갖다 주는일 같은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디오를 사러 가는 그날만큼은

엄마와 함께 갔다.

그래서, 그날의 오묘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무슨 말을 나누며 갔겠는가? 조용히 서로 아무 말 없이 그 늦여름 논길을 사뿐사뿐 걸어갔다.


대리점에 도착했고 친절한 미소의 여사장님은 물론 선하게 생긴 남편 사장님까지 요구르트를 하나씩 건네며 우리를 환대해 주었다. 난 슬며시 엄마한테 이거다 라며 자랑스럽고도 위풍당당한 롯데 매니아 705세트를 가리켰다. 거기엔 다행히 70만 원 세트만 달랑 멋없게 디스플 돼있지 않고 140만 상당의 풀세트로 화려하고도 영롱하게 셋업이 되어 있었다. 나의 눈은 초롱초롱 빛나는 정도를 넘어서 눈물만 안 흘렀지 이건 정말이지 그 간절함이 진짜로 절절했는데 그게 엄마한테 전달이 된 느낌이었다. 엄마는 별말 없이 '이거로 살게요. 오늘 갖다 주시는 거죠?' 간단하고도 참 쿨했다. 시골장에서 배추 몇 포기를 사더라도 단 100원이라도 깎아야 직성이 풀리는 엄만데 말이다.


집으로 돌아왔고 얼마 안 있다 배달 트럭이 집으로 도착했다. 그 선하게 생긴 남편 사장님이 직접 오셨는데 트럭 가득히 싣고 오셨다. 이때부터 내 가슴은 쿵쾅쿵쾅 거려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디 마땅히 갈 때도 없어서 괜히 화장실에 들어가서 그 흥분감과 초조함을 달랬다.

지금도 그때의 흥분감이 그대로 전달될 정도니 어느 정도였는지 다들 짐작되실 듯싶다.


너무 좋았다. 그 어떤 날이 이날만큼 좋았었단 말인가? 모든 것이 셋업이 되고 7단이나 되는 컴포넌트를 일일이 켜면 영롱한 불빛들이 폼을 내며 나의 가슴을 뛰게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장국영의 천녀유혼 주제가가 들어있는 LP를 얹고 소리를 듣는다. 아싸라비야! 장국영이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왕조현이 흰옷을 입고 막 하늘을 날아다닌다. 아름답다.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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