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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순례 Feb 18. 2024

근심혔당게

노인 케어를 하면서 나를 바라본다.

방문 수발을 받는 팔십 대 노인은 기초 생활 수급권자로 오만가지 병을 짊어지고 힘겹게 산다.

 낮에도 들어가려면 깜깜한 숲 속 같은 어두운 방이다. 깊은 계단을 한없이 내려가야 할머니를 만날 수 있다. 아마도 창고로 쓰던 공간을 개조하여 세를 놓은 듯하다. 벽도 천정도 모두가 하얀 페인트칠에 구석구석 곰팡이가 끼어 있다. 여름에는 냄새에 민감한 사람은 견디기 힘들 정도다. 늙고 병든 노인이 살기에는 매우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이다. 찾아오는 이는 유일하게 요양보호사뿐이어서 할머니는 방문할 때마다 반갑게 맞아 준다. 숨이 차서 무릎 세우고 앉아만 계시던 몸은 힘이 솟는다. 외출했다 돌아온 엄마에게 하듯이 우편물도 내놓고 전화 온 얘기며, 잠자는 약을 복용했는데도 잠들지 못했다는 등등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그런데 오늘은 어째 시무룩하니 기분이 좋지가 않으시다.

"텔레비전도 잘 못 보는데 뭐......”

할머니가 안경집에서 시선을 거둬들이며 시무룩하게 말을 흘린다.

“몸이 많이 안 좋으세요? 어어?! 기분이 안 좋으신 거 보니 무슨 일 있으신감네에!"

평소 같지 않게 우울한 할머니의 안색을 살피며 묻자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할머니는 푸념을 한다.

“그려……. 인자 증말 다 살었능게벼……."

요양보호사는 눈꺼풀이 늘어지고 검버섯이 뒤덮인 할머니의 주름투성이 얼굴을 바라보며 또 조심스럽게 묻는다.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할머니는 말없이 방바닥에 놓인 안경집만 바라본다.

“그렇당게 텔레비전도 잘 못 봐.”
“왜요?”
"눈알맹이가 꾹꾹 찌르는 거 같혀서."
"그래서 불도 안 켜신 거였어요?"
"이잉! 앵경을 쓰므는 쪼오께 낫는디……."
"안경 쓰시면 되잖아요."
"모 쓴당게, 알맹이가 빠져서."
"어디 봐요."

안경집을 열어보니 안경알 한 쪽이 빠져 고민됐던 모양이다. 냉큼 알맹이를 끼워 할머니 앞에 내밀었다. 금세 할머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오메에!~ 워터케 꼈댜아! 참말로 재주 조으네, 그거 가꼬 월매나 근심혔다고!"

감탄하시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런 내 모습에 기가 막힌 지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눈초리가 남은 애탔구먼 웃는다고 타박하는 거 같다.

"참말로 근심혔당게에!"

또다시 강조하신다. 두 번씩이나 반복하시니 천진난만한 아기 같다. 요양보호사는 할머니를 와락 끌어안는다. 뜨겁게 속울음이 터져 나온다. 한참을 안고 등을 토닥이는데, 별안간~! "억지로라도 주거쓰믄 조커서" 하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린다.

"왜 또요!~."

두 손을 꼬옥 쥐고 눈을 맞춘다. 깊이 팬 주름진 얼굴이 유난히도 근심스러워 보인다. 아랫니 몇 개 남은 합죽한 입으로 하소연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메카럽시 포깍질(딸꾹질)이 나오고, 머리도 터져 뽀개질 것처럼 아프고, 엊그지는 깍 맥혀서 물 한모굼도 안 넘어가드랑게."
"그랬어요! 얼마나 놀래셨을까!"
"놀래기는, 눈을 뒤집어 까고 참었드니 그 지사 내려가드랑게"
"어머 그랬어요? 크을날 뻔 했네요"
"그뿐여? 똥도 당최 나와얄 말이제. 하도 안 나와 갖고 꼬챙이로 파냈당게"

할머니는 연이어 안 할 말까지 했다는 자괴감 때문인지 쑥스럽게 한마디 덧붙인다.

“집이나 허닝게 이런 소리도 허네, 참말로 집이 땀시 사는 겨어.”

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처럼 어깨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어머니는 여생을 딸네 집에서 보냈다. “너 아니었으면 벌써 죽었다."라는 소리를 하곤 했다. 고부간의 갈등으로 아들네에서는 죽기보다 싫었던 것일까. 할머니를 보면서 어머니 생각이 났다. 노인 케어를 하면서 나를 바라본다. 자식 없는 내 아들 부부를 생각한다. 살아온 날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까지…….

할머니를 보고 온 날 밤은 당최 잠이 오지 않는다.



몌별

지은이: 양순례


노인이 궁시렁거린다


'정 없는 거 같으니라고

시간만 툭 던져놓고

사라지면 그만인가'


그의 묘비명처럼

엄벙덤벙하는 사이

떠나가 버린다


'아이고 갈 테면 가라지 뭐

달아나기 바쁜 무상의 환幻인 걸

언제는 붙잡았나 뭐?

아직도 못다 핀 꽃이 있어

아쉬울 따름이지 뭐'


처진 눈에 회한이 드나든다

남몰래 풀어 보는 봇짐

검불만 한가득 쌓였구나


내 그럴 줄 알았다고

또 새 달력

놓고 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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